클래식 장편소설 트리플 콘체르토 5화 서른번째 생일 1

by 권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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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0일 밤 11시 30분.

공연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온 지 한 시간이 지났다. 로사는 하얏트 해운대 스위트 룸의 킹사이즈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오른쪽 눈에는 아직 인조 속눈썹이 남아 있었고, 클렌징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

창문 너머로는 검은 바다와 광안대교의 형형 색색의 불빛이 맞부딪히고 있었고, 방 안은 조용했다. 마리는 호텔에 들어오자 마자 클렌징과 샤워를 마치더니 바로 거실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있는 자기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예니는 스위트 룸에 침실이 두개 뿐이라 복도 건너편에 있는 주니어 스위트 룸을 사용하고 있었다. 침실이 세 개인 스위트 룸이 없는 경우가 많아 투어 때면 늘 쌍둥이가 스위트, 예니가 주니어 스위트 이런 식으로 사용해 왔다.

공연의 여운? 그런 것은 남아 있지도 않았다. 슈베르트 트리오 1번과 2번, 차이코프스키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과 드보르작 ‘둠키’를 교대로 돌려가며 연주한 게 올해로 벌써 스무 번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니 지난 13년간 이 곡들을 몇 번이나 연주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

마리와 예니는 아렌스키, 드뷔시, 라벨,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까지 레파토리를 넓히기 원했지만 로사가 반대하여 14년째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드보르작, 차이코프스키만 돌리고 또 돌렸다. 슈만과 브람스도 로사가 거부해서 레파토리에보태지 않았다.

서울, 고양, 대구, 부산으로 이어지는 한국 투어가 마무리 되는 날이었지만 샴페인도 자축도 없었다. 마리도 예니도 얼굴에는 쏟아지는 피로 뿐. 말들은 안했지만 13일 오사카, 16일 도쿄 공연만 마치면 3월 북미 4월, 5월 유럽, 아시아, 6월 한국, 일본으로 이어지는 무지막지한 일정이 끝나는구나 하는 생각만 가득해 보였다.

조용했고, 지루했다. 마리는 이미 잠들었는지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6월 21일에 온 세계에 중계할 거창한 서른번째 생일 이벤트와 두 달 간의 특별한 여행을 위해 이 무지막지한 투어 일정을 박았던 것인데 어쩐지 그 마저도 별로 기다려지지 않았다.

로사는 웃음인지 한숨인지 알 수 없는 숨을 내쉬며 스마트 폰을 들어 올렸다. For Fun이라는 카테고리를 열자 틴더, 글램, 힌지, 레이아, 리그 같은 데이팅 앱들이 마치 꽃밭처럼 활짝 펼쳐졌다.

며칠 전 서울. 유노이아 뷰티 뮤지엄에서 있었던 일이 자꾸 생각났다.

그때 예니의 6개월간의 케이팝 외도의 진실을 듣고 로사는 “아빠, 아빠 때문이었다고?” 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그 미안한 마음이 들키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렇다고 마리처럼 예니 손을 잡고 눈물 흘리고 그런 일은 절대 할 수 없었다.

그저 익숙한 버릇처럼, 손이 먼저 핸드폰을 들고 틴더 앱을 열었다.

로사의 프로필은 단출했다. 닉 네임 따위 없이 당당하게 자신을 다 드러냈다.

이름: 로사 디누

직업: 바이올리니스트

직장: 트리오 디누

자기소개: 클래식이 전부는 아니야.

이미 열려 있는 채팅창만 일곱 개. 로사는 모든 창에 같은 문장을 붙여 넣었다.

-오늘 원나잇 할 사람 필요함.

첫 번째 반응이 떴다.

-이거 로사 디누 사칭 계정이죠? 신고할게요.

로사는 가차 없이 채팅방을 삭제했다.

두 번째 반응.

-진짜 로사면 인증해 보시죠?

웃기고 있네. 로사는 이것도 삭제했다.

세 번째 반응.

-거짓말도 좀 현실적으로 하시죠. 미친

채팅방이 사라졌다. 그쪽이 먼저 삭제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열 번째 채팅방에 가서야 로사의 눈길을 잡는 반응이 왔다.

아도니스 24: 당장이라고? 어디로 갈까, 당신이 있는 곳? 아니면, 내가 있는 곳? 좌표를 정해 주시죠?

로사는 반사적으로 타이핑했다.

-한 시간 뒤 JW 매리어트 서울에서 다시 연락 바람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아도니스 24: 이미 센트럴 시티에 있음. 기다리고 있을테니 당신이 원하는 시간에 연락 주기 바람

로사는 자신이 진짜인지, 왜 이런 메시지를 보냈는지 묻지 않아서 좋았다. 바로 이 때 “걸렸다.”라고 말하고 바로 자리를 뛰쳐나왔다.

택시를 타고 숙소인 JW 매리어트 호텔의 방에 도착한 로사는 틴더 채팅방을 열고 아도니스24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JW Marriott Seoul. 2705호. 프론트에 이야기 해.

로사는 욕실로 가서 머리를 다시 손보고 메이크업을 리터치 했다. 그러다 문득 거울 속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이렇게 나한테 벌 주는 거 보다 차라리 예니한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어때?’

하지만 거울속의 자신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인터폰이 울렸다.

“로사 디누님, 방문객 도착했습니다. 아도니스24 라고 하면 아실 거라고.”

“올려 보내주세요.”

10분쯤 지났을까, 벨이 울렸다. 로사는 문을 열었다.

생각보다 단정한 30대 초반의 남성이 나타났다. 깔끔한 셔츠에 다크 네이비 재킷. 보풀이 하나도 없는 슬랙스. 그리고 꽤나 정중한 눈빛. 프로필 사진보다 나이 들어 보였지만 어쨌든 하룻밤 상대로는 손색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들어와요.”

아도니스 24가 들어오고 문이 닫히자, 로사는 뒷말 없이 바로 창가 소파에 몸을 던지고 옷을 하나하나 벗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도니스 24는 눈을 어디 둘지 몰라 하며 거실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진짜 로사 디누네요?”

로사가 말 없이 손가락으로 벽에 걸린 액자를 가리켰다. 이 방에서 묵고 간 셀럽들의 사진들이 걸려있는 가운데 트리오 디누의 사진도 당당하게 걸려 있었다.

그제서야 남자가 씨익 웃었다.

“믿기지 않네요. 닉 네임인 줄 알았는데.”

로사는 말없이 일어나 위스키 한 잔을 건넸다. 그러고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더 이상 묻지 마요.”

그리고 바로 행위가 시작되었다.

남자는 로사의 기대 이상으로 섬세했다. 서투르지도 않았고, 조급하지도 않았다. 로사는 기대보다 훨씬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시간이 지나기가 무섭게 로사는 마치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까 까지만 해도 제법 괜찮게 보였던 남자가 혐오스러워졌다.

이때 남자가 침대 가장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아침에 커피라도.”

그 얼굴에서 어떤 행운에 대한 기대감 비슷한 것을 느낀 로사는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아뇨. 미안해요. 약속대로 해요.”

“알겠어요. 그럼 나 먼저 일어날게요.”

로사는 이불을 잡아 당겨 몸을 덮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찰칵 하고 도어락이 닫히는 소리가 날 때 까지 돌아보지 않았다.

남자가 사라진 호텔 방이 다시 회색으로 물들었다.

‘글램이 물은 더 나았으려나?’

머릿속을 잠시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하지만 글램은 시간이 걸린다. 대화를 맞추고, 취향을 가늠하고, 마치 국룰처럼 첫 만남은 식사, 빨라도 둘째 만남은 되어야 잠자리 가능성 타진이다. 로사는 이 바쁜 일정 중에 그럴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다.

반면 틴더는 단타다. 구조가 그렇고, 애초에 여기 들어오는 놈들 자체가 그랬다. 그래서 매번 끝나고 나면 점점 더 허무해졌지만, 그 허무를 채우기 위해 또 딴 놈을 찾았다.

하지만 로사는 모든 데이팅 앱 프로필에 일부러 ‘로사 디누’라고 써 넣었던 동력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위대한 디누.’

어머니가 그토록 강조하던 그 이름.

어머니는 영국으로 귀화하면서 딸들의 이름마저 권로사, 권마리에서 로사 디누, 마리 디누로 바꾸었다. 아버지 권정우의 예명이었던 디누가 성이 되고 가문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 이름은 스텔라 디누가 아니라 최유선 그대로 두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틈만 나면 말했다. 위대한 디누의 이름. 로사와 마리 몸에 흐르는 위대한 디누의 피. 디누의 유산을 진정으로 계승해야 하는 사람은 제자인 최수민도 김소영도 아닌 디누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로사와 마리라야 한다는 것.

그래서 더럽히고 싶었다. 그렇게 존귀하고 고결하다는 이름을 가장 천한 곳에 던지고 싶었다. 디누에게서 물려받은, 디누의 유전자가 절반 박혀 있는 이 몸뚱이를 아무 남자에게나 던져 쾌락의 도구로 쓰고 싶었다. 애초에 바람둥이로 유명했던 아버지 아닌가? 그러니 그것도 계승이라면 계승이다. 그럼 유전자의 나머지 절반은? 그건 최유선의 유전자? 더더욱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예니를 보며, 그 반항마저 허무해졌다. 예니의 케이팝 외도가 철없이 물욕에 넘어간 것이라 여겼을 때는 괜찮았다. 그런데 그것이 돈이 아니라, 디누라는 이름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예니도 디누라는 이름에서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디누라는 족쇄를 벗기 위한 몸짓이었다. 마리는 디누처럼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했고, 로사는 디누를 욕보이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예니는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로사는 데이팅 앱 프로필에 굳이 ‘로사 디누’라고 적는 일이우습고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대구에서도 부산에서도 틴더를 찾지 않았다. 채팅방도 모두 지웠다.

그리고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로사는 여러 데이팅 앱들 중 가장 익숙한 아이콘을 눌렀다.

레이아(Raya). 사회경제적 지위가 어느 정도 이상인 사람들 만 받는 이른바 셀럽 데이팅 앱.

지난 겨울 도쿄에서 연결된 레오 쿠조가 아직 온라인 상태였다. 쿠조는 로사와 동갑으로 크리스티 도쿄 지점에서 일하고 있는 스페셜리스트다. 일본인 치고 보기 드물게 영어가 능숙하고 키도 제법 커서 일본인 남성 평균보다 더 큰 로사와 어울려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로사가 일본에 투어를 갈 때, 혹은 쿠조가 런던에 있는 크리스티 본사에 올 때 종종 만나곤 했다.

로사는 조용히 메시지를 보냈다.

-방금 부산에서 콘서트 말아버렸음. 3일 뒤 오사카. 그리고 도쿄. 내 생일 주간도 다가옴. 부산은 끔찍하게 지루함. 오사카도 비슷할 것. 도쿄가 날 구해주길. 나, 마리, 너, 같이 저녁 할까? 생각해 봐

보낸 지 30초쯤 지났을까. 레오가 텍스트를 입력하고 있는 중임을 알리는 이라는 작은 회색 텍스트가 깜빡였다. 이윽고 레오의 답장이 왔다..

-좋아. 문제 없음. 다음 중 골라. 칸다 시장에서 끝내주는 스시를 먹는다. 최근에 내가 개척한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좋은 개별실에서 저녁을 함께 한다. 아오야마에 있는 전통 요정에서 친밀한 시간을 보낸다. 네 선택은?

로사는 이불을 턱까지 끌어당기며 손가락을 다시 움직였다.

-프렌치 레스토랑이 맘에 든다. 마리가 번잡한 분위기를 싫어하니까. 아, 그리고 쓰리섬은 꿈도 꾸지마. 변태야. ㅋㅋ

답장이 왔다.

-와, 설마? 나 잠깐 설렜어. 나, 너, 마리가 같이. ㅋㅋ 아이고. 그냥 밥만 먹고 마리 먼저 재우자고.

그 답장에 로사는 소리 없이 웃었다. 이 남자는 정말이지, 경계를 넘지 않으면서도 긴장을 놓게 만들 줄 알았다.

손가락을 뻗어, 침대 옆 와인잔을 찾았지만 없었다. 대신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타이핑을 시작했다.

-너도 마리 알겠지만 완전 카톨릭 그 자체라. 예쁜 대화 나누며 식사하고 디저트 먹고 9시면 사라질 거야. 너랑 나는? 완벽한 밤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지

역시 답장이 바로 날아왔다.

-이해 함. 식사는 성녀와 하고 밤은 탕녀와 함께. 방금 레스토랑과 호텔 예약함. 나 방탕하게 입고 가야 해?

로사는 살짝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었다. 지루한 밤도, 공연의 피로도 잠시 잊혔다.

-난 백리스 실크 드레스와 빨간 입술로 갈 것임. 내가 민망하지 않게 맞춰 봐. 아 그리고 내 구두보다 비싼 와인 코티지로 준비해 둬.

- 딜. 도쿄에서 보자고 버쓰데이 걸. 도쿄에서 파티가 시작된다고 생각해도 될 것임.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 남겨 두길. 혹은 그 보다 더 나은 것을. ㅋㅋ

로사는 휴대폰을 가슴 위에 내려놓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도쿄 타워의 빨간 불빛이 눈꺼풀 뒤로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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