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소설 트리플 콘체르토 3화 유노이아뷰티뮤지엄1
2장 유노이아 뷰티뮤지엄
1
예니의 기억이 빠르게 2024년 6월 2일 저녁 무렵으로 돌아갔다. 그때 트리오 디누 멤버 셋은 강남구 청담동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전날 밤 예술의 전당에서 받은 우렁찬 박수소리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어서인지, 아니면 단지 청담동에 왔기 때문인지, 세 사람 모두 조금은 들뜬 모습이었다.
마냥 들뜰 일만은 아니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거의 지옥 같은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5일 고양 아람누리, 8일 대구, 10일 부산. 그리고 13일에는 일본 오사카, 16일에는 도쿄.
이런 살인적인 스케줄이 짜인 이유는 6월 21일이 로사와 마리의 생일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 자매의 서른 번째 생일.
“내년 생일은 크게 치르고 싶어. 서른 번째라고. 스무 살 생일은 성인이 되는 날, 서른 살 생일은 그야말로 진짜 어른이 되는 날. 그러니 크게 기념해야 하지 않겠어?”
2023년, 위대한 개츠비가 떠오르는 요란한 스물 아홉 번째 생일 파티가 끝나자마자 로사가 말했다.
예니는 ‘자기가 무슨 엘튼 존이야, 킴 카다시안이야?’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하긴 이미 로사를 두고 ‘킴 카다시안 클래식 버전’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는 지경이었으니.
“난 조용히 가족끼리 하고 싶은데?”
마리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지만 로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년 서른한 살 생일부터 그렇게 하든가 해. 아 이건 어때? 홀수 해는 마리 스타일, 짝수 해는 내 스타일로? 하지만 이번만큼은 양보 못해. 무조건 서울에서 해야 해. 의미 있는 생일이니 태어난 곳에서 하는 게 맞잖아? 솔직히 런던은 재미없는 도시라 질렸고. 진짜는 파티 끝난 다음부터인데, 난 뭔가 인생에서 기념비적인 이벤트를 하고 싶어.”
마리와 예니가 모두 불안한 눈빛으로 ‘저 언니가 또 무슨 엉뚱한 사고를 치려고 저러나’ 하며 바라보았다. 로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서른 번째 생일 파티가 끝나면 한 달, 필요하면 두 달 정도 한국 여행을 할 거야. 국토 순례 대장정! 어머니와 아버지의 나라를 좀 더 속속들이 알고 싶어. 그러니까 스케줄은 두 달 정도 비워둬.”
마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계약은 어떻게 하고?”
“계약서에는 연간 30회 이상 공연이라고만 되어 있지, 그 공연을 언제 한다고는 안 되어 있어. 뭐 몰아서 하면 되잖아? 한국이랑 일본 공연을 몽땅 6월 1일에서 20일 사이에 몰아넣자. 그리고 훌훌 털어버리고 바로 생일파티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라를 구석구석 여행하는 거야.”
일단 로사가 이렇게 주장한 이상 마리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로사의 생일이 곧 마리의 생일이니, 로사가 저런 식으로 해버리면 마리의 생일 역시 거기에 묻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두 달을 공백으로 두고서도 소속사와 계약한 연간 공연 횟수를 모두 채워야 하고, 6월에는 한국과 그 주변에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을 다 맞추다 보니 이런 일정이 나오고 말았다. 이런 스케쥴 조정하느라 에이전트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훤히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이제 그 지옥 같은 일정의 첫날이 끝났을 뿐인데, 그 잠깐의 틈을 이용해 청담동에 온 것이다.
로사는 청담동 거리에서도 단번에 시선을 끌었다.
사실 로사는 -당연히 마리도-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173 센티미터라는 큰 키와 볼륨감 있는 몸매, 그리고 시선을 끄는 포인트를 잘 활용하는 세련된 감각 덕분에 어디서나 돋보였다. 아이보리색 셔츠에 짙은 네이비 하이웨이스트 쇼츠, 크림색 토트백과 슬링백 샌들. 만약 바이올린이라도 들고 있었다면 악기보다는 액세서리처럼 느껴질 법한 모습이었다.
그 옆에서 마리는 한결 수수한 차림으로,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라도 들어서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걷고 있었다. 넉넉한 회색 박스 티에 낡은 캔버스 백, 그리고 무심해 보이는 단화 차림이었다. 활보하는 로사 한 발자국 뒤에서 걷는 모습이 꼭 청담동 거리가 자신을 삼켜버릴까 두려워하는 사람 같았다.
로사가 들뜬 목소리로 뭔가를 쉼 없이 이야기했다. 너무 빠르고, 너무 많은 말이 쏟아졌다. 마리도 예니도 절반 정도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결국 예니가 먼저 피식 웃어버렸다. 작은 얼굴 위로 두 눈이 귀엽게 초승달 모양을 만들었고, 입가의 보조개가 동시에 떠올랐다.
“언니, 웬 호들갑이야? 처음 와본 사람처럼?”
“내가 주인공으로 가는 거는 처음이니까 그렇지. 전에는 늘 예니 부록이었잖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예니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뜻으로 로사가 저렇게 말하는지 짐작은 갔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대놓고 말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니 아니었으면 우리가 그 엄격한 회원제 부티크에 발이라도 들일 수 있었겠어?”
결국 로사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말았다. 예니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디누의 딸, 세계적인 트리오의 바이올리니스트.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보는데?”
“그런가? 그래도 우린 예니가 소개해준 덕분에 들어간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거야 내가 소이 언니하고 잘 아는 사이라서 먼저 들어가 있었던 거지.”
결국 마리가 나섰다.
“로사, 그만해 그런 얘기. 한두 번도 아니고.”
“그래. 그만하자. 미안. 내가 좀 예민한가 봐. 20대가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살짝 멜랑콜리해지네.”
그러나 말과 달리 로사의 표정이며 몸짓은 멜랑콜리와 전혀 거리가 멀었고, 어느새 스마트폰을 꺼내 청담동을 걷고 있는 예니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예니는 잠깐 눈을 찌푸렸지만 이내 체념한 모습으로 피사체가 되어주었고, 심지어 여러 가지 포즈를 잡아주기까지 했다.
휴식일이라 예니는 나름 편안한 차림이었지만, 그렇다고 허술하지도 않았다. 편안한 크림색 린넨 크롭 셔츠에 배꼽을 덮은 하이웨이스트 베이지 슬랙스를 매치하고, 발끝에는 얇은 스트랩의 누드톤 샌들을 신었다. 예니의 키는 165 센티로 큰 편이었지만 173 짜리 자매와 같이 다니다 보니 작고 아담해 보였는데 키를 맞추기 위해 높은 힐을 신는 대신 오히려 그런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 전체적으로 꾸민 듯 안 꾸민 듯, 힘을 뺀 듯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스타일이었고, 반년에 불과하지만 아이돌 활동도 했던 경력자답게 차림새며 포즈며 표정이며 모두 화보 같았다.
그렇게 모델 놀이를 하며 걸음을 옮기다 보니 마침내 뤼미에르 엔터테인먼트의 13층짜리 사옥이 나타났다. 한국, 일본, 대만의 인터넷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는 마인 그룹이 설립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로, 이미 수많은 중소 기획사를 흡수한 케이팝 공룡의 본거지였다.
그 1층과 2층에 자리 잡고 있는 ‘유노이아 뷰티 뮤지엄’이 바로 그들의 목적지였다. 유노이아 뷰티 뮤지엄은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2011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은 물론 일본, 대만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걸그룹 ‘유노이아’의 전 멤버들이 운영하는 회사로 뤼미에르 엔터의 계열사였다. 회원제 고급 부티크를 기본으로 하면서 모델 에이전시, 그리고 프라이빗 이벤트 등을 사업 영역으로 삼고 있었다. 유노이아의 리더였던 다엘(본명: 유다은)과 비주얼 센터 소이(본명: 박소윤)가 공동대표로 있었으나, 다엘이 결혼과 함께 물러나면서 소이가 대표로 운영하고 있는 중이었다.
유노이아의 다른 멤버들 중 래퍼 세이(본명: 김서진), 보컬 하린(본명: 유하린)은 Mo:D라는 이름의 뤼미에르 산하 레이블을 세웠고, 메인 댄서 지니(본명: 김예진)는 지니 아트라는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는 중이었다.
뷰티 뮤지엄을 찾아가는 것은 트리오 디누에게 전혀 낯선 일이 아니었다. 예니가 지니(김예진)와 자매처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다. 지니의 중학교 시절 담임교사가 다름 아닌 예니 아버지인 권오석이었던 것이 인연이 되었다.
권오석은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지니를 각별히 챙겨주었다. 더구나 이름도 예진, 예니 비슷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가 자매처럼 가까워졌다.
2017년 예니가 반년 정도 클래식을 떠나 아이돌 활동을 한 것도 지니와의 인연이 계기가 되었고, 이때 유노이아의 임시 멤버로 활동하면서 다른 멤버들, 특히 소이와도 언니 동생하는 사이가 되었다. 덕분에 트리오 디누 멤버들은 투어 일정 중 한국에 머무는 기간에는 예니를 따라 영업시간 이후 뷰티 뮤지엄을 방문해 자유롭고 신나는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영업시간 이후가 아니라 그 한 가운데를 골라서 찾아오는 길이었다. 놀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뷰티 뮤지엄의 자동문이 조용히 열렸다.
들어서자 한두 번 온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니는 공기부터 이전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올 때마다 다른 향수가 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볍게 어깨를 감싸며 피부에 안착하는 듯한 향이었다. 소이가 홍보대사로 있는 불가리에서 새로 나온 퍼퓸일 것이다.
대리석이 깔린 매장 중앙에는 루이비통이나 샤넬 대신 셀린느, 막스 마라, 더 로우가 주를 이뤘다. 프라다, 디올, 버버리 등의 아이템들은 아쉽지 않을 정도로만 진열되어 있었다. 소이와 지니가 각각 막스마라, 셀린느와 협력 관계에 있기 때문일 터였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진열된 제품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절제된 수량이 이 공간의 격조를 말해주는 듯했다. 이곳은 매장이라기보다는 선택받은 사람들만 앉을 수 있는 응접실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오히려 제품보다 스칸디나비아 풍의 가죽 소파와 대리석 상판의 낮은 티테이블 같은 가구가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투명 유리 커튼월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햇살이 공간에 온기를 더했다.
그 한편에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들이 조용히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보였지만, 서로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려는 긴장감 어린 눈빛을 티 나지 않게 주고받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화이트 골드 라인의 앰플 몇 병이 놓여 있었고, 곁에 선 직원이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제품은 이탈리아 현지 샤토에서 직접 농축한 포도 폴리페놀을 기반으로 한 에센스로, 소이 대표님께서 요즘 애용하고 계시는 아이템입니다.”
그들은 응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하나가 직원의 말을 끊고 슬쩍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그것보다 저기, 방금 들어온 저 아가씨.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요?”
그 시선 끝에는 막 매장으로 들어선 예니가 있었다.
공간의 공기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이 상류층 여성들이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명품이 아니라 여기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곳보다 값비싼 명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얼마든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굳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뤼미에르 엔터테인먼트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자신들이 딱 하나 가지지 못한 것, 바로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들 실물을 보고 그 비법을 조금이라도 얻어가려는 것이다.
마침 그 자리에 예니가 등장했다. 당연히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있던 다른 여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니, 쟤를 몰라? 첼리스트 예니잖아. 나, 어제 예술의 전당에서 트리오 디누 콘서트 보고 왔거든.”
“아, 그 예니?”
이미 그들의 관심은 에센스에서 멀리 떠나갔다.
“어머, 맞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네.”
“역시 클래식이라 그런지 그냥 연예인들과는 격이 달라. 그럼 같이 온 두 사람은?”
“당연히 로사, 마리 아니겠어?”
“아, 디누의 딸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오늘 완전 대박이다.”
VVIP 여성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사는 이미 그 시선들을 감지했지만 모르는 척 자연스럽게 진열된 주얼리 라인을 보며 직원에게 말을 건넸다.
“동생 서른 번째 생일 선물로 특별한 걸 주고 싶어요.”
그 말에 마리가 깜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로사, 난 그런 거 필요 없는데?”
그러는 동안 어느새 로사 근처로 온 상류층 여성들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 반지, 루이비통 리미티드죠? 지난번 파리 부티크에서 놓쳐서 너무 아쉬웠는데요.”
직원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응대했다.
“맞습니다. 전 세계 50피스 한정입니다. 지금 한국에는 딱 한 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자 로사도 담담한 모습으로 직원에게 말했다. 마치 직원을 사이에 두고 상류층 여성과 로사가 대화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이건 너무 의미가 무겁네요. 마리는 실용적인 편이라, 데일리로 착용 가능한 걸 찾고 있는데. 참, 이번 생일 이벤트를 뷰티 뮤지엄에서 진행하려고 하는데, 여기에 테마별 제품 전시도 포함할 수 있나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대표님께서 곧 도착하실 예정인데, 그 전에 프라이빗 룸에서 상담 가능하시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상류층 부인들은 이미 트리오 디누를 알아보고 있었지만, ‘마리’라는 이름을 직접 듣자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는 듯 로사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바이올리니스트 로사 디누님 아니신가요?”
로사 역시 이미 상대가 자신을 알아봤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 알아차린 척 대답했다.
“네, 맞아요. 어머, 알아봐 주시네요?”
“그럼요. 제가 소녀 시절 디누 팬이었거든요. 얼마나 따라다녔다고요. 그리고 지금은 제 딸이 트리오 디누 팬이에요. 어제 공연도 아이와 같이 다녀왔어요. 아티스트도 팬도 세대가 이어지네요. 생일 파티요? 여길 대관하신다고요?”
“네. 서른 번째 생일이니까. 의미가 크잖아요? 성년식 때처럼 이벤트 한 번 맡겨보려고요. 소윤이한테.”
“혹시… . 그럼 마리님도 생일이시겠네요?”
“하하, 쌍둥이니까 당연히 그렇죠.”
로사가 밝게 웃으며 진열된 아이템들 중 단정하고 깔끔한 목걸이 하나를 가리켰다.
“저기 저 셀린느 트리옹프 넥클레이스 하나 예약해 주세요. 동생 생일 선물이에요.”
마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로사의 눈치를 보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눈빛에는 여전히 약간의 경계심이 남아 있었다.
로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목소리를 낮추어 직원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아까 그 반지요. 루이비통 리미티드 에디션. 그것도 포함해 두세요. 그건 나를 위한 선물.”
직원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마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렸고, 예니는 그냥 피식 웃어버렸다. 로사의 파티가 도대체 어디까지 갈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제서야 로사는 상류층 부인들에게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 정식으로 인사를 안 드렸네요. 제 옆에 있는 이 단정한 아이는 제 쌍둥이 동생 피아니스트 마리 디누예요. 우리 트리오 음악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죠.”
마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부인들의 시선은 이미 예니 쪽을 향하고 있었다. 로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리고 이미 아시겠지만, 첼리스트 예니예요. 클래식 아티스트가 된 아이돌이라고 할까, 아이돌이 된 클래식 아티스트라고 할까? 우리 팀의 비주얼이죠.”
부인들 사이에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아, 어쩐지 들어올 때부터 눈에 띈다 했어요.”
“광고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시네요.”
예니는 손사래를 쳤다. 손사래를 치면서도 얼굴은 밝게 웃고 있었다. 거의 반사작용에 가까웠다. 또다시 불편함을 마음속으로 삼켰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트리오 활동을 시작했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스물일곱이 된 지금까지 음악이 아닌 외모로 주목받아온 수많은 순간들에 또 한 장면 추가되었을 뿐이다. 지성인들이 주로 본다는 저명한 잡지에서 트리오 디누를 ‘디누의 이름을 내건 클래식 걸그룹’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으니까.
그 순간, 마리가 예니의 팔꿈치를 가볍게 건드렸다. 눈으로 “괜찮아?”라고 묻고 있었다. 예니는 대답 대신 마리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로사가 갑자기 두 사람을 향해 스마트폰을 들이댔다.
“야, 이 조명 좋다. 거기서 살짝 돌아봐.”
예니는 체념한 듯 익숙한 동작으로 가볍게 포즈를 잡았고, 마리는 슬그머니 프레임 밖으로 몸을 옮겼다.
이때 직원이 다가와 로사에게 조용히 말했다.
“대표님이 곧 오십니다. 학동 지니 아트에서 오시는 길이니까 10분 내로 도착하실 겁니다.”
덕분에 피사체 신분에서 해방된 예니의 얼굴이 기대감으로 활짝 펴졌다.
“지니 언니도 오나요?”
“네. 지니 대표님도 동행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에 상류층 여성들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걸 억지로 참으며 수근거렸다.
“소이 오는 거 보고 가려고 버텼더니 오늘 완전 대박이네.”
“그러게. 트리오 디누에다 지니까지.”
예니는 그제서야 훈련된 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예니는 아름다운 여성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이돌을 해도 될 정도’의 클래식 아티스트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아이돌 중에서도 최고의 비주얼로 유명했던 소이와 지니가 나타나면 예니는 외모 타령의 대상에서 벗어날수 있다.
로사도 잔뜩 기대에 부푼 모습으로 소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예니의 동료가 아닌 VIP 고객 로사 디누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