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장편소설 트리플콘체르토 1장 디누의 유산 1

by 권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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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2일 오후 세 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아직 해가 남아 있을 시간이었지만, 해가 저물기라도 한 듯 어두컴컴했다. 일기예보상으로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지만 미세먼지가 먹구름처럼 하늘을 두텁게 덮었다. 태양은 마치 일식을 만난 양 힘을 잃었고, 겨우 밤을 면할 정도의 빛만 지상에 흘려보내고 있었다.

시야가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렸다. 십 미터 밖 풍경조차 흐릿했고, 인물이나 차량의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안개인지 먼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그 뿌연 공기는 마치 위대한 음악가 디누의 기일을 기억하라고 강요하는 듯했다.

그 미세먼지의 안개를 가르며 자동차 하나가 실루엣으로 나타났다. 미세먼지를 조금이라도 더 보태는 것이 민망하다는 듯 조심스럽게 콘서트홀 옆에 멈춰 선 자동차가 사람 하나를 살그머니 내려놓았다.

자동차에서 내린 인물이 실루엣 상태로 콘서트홀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더니 현관문을 밀었다.

콘서트 홀 로비 안으로 들어서 밝은 조명을 받자 비로소 실루엣이 여자 모습으로 바뀌었다. 단정하게 머리를 뒤로 묶은 이마 아래, 고요하면서도 뚜렷한 이목구비가 나타났다. 크지 않지만 선명한 눈은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했고, 오랜 시간 무언가를 일구어 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광채가 있었다.

눈빛은 40대 중반의 깊이를 느끼게 했지만, 매끈한 피부의 윤기와 당장이라도 애교 있는 목소리를 쏟아낼 것 같은 귀염성 있는 입가 때문에 30대 중반으로 보이기도 했다.

여자가 들어서자 조용하던 로비가 갑작스레 분주해졌다. 스태프로 보이는 직원들이 허둥지둥 움직였고, 그중 두 명이 타이트한 스커트와 힐 때문에 절뚝거리며 뛰어오듯 다가왔다.

한 명이 먼저 다가와 과할 정도로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사장님. 벌써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예요, 괜찮아요. 길이 막힐 줄 알고 일찍 나왔는데, 의외로 잘 뚫리더군요.”

여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소 지으며 입고 있던 패딩을 벗었고, 그 옆의 직원이 재빨리 받아 들었다.

패딩을 벗자 검은색 테일러드 점프 수트가 드러났다. 날렵하게 흐르는 허리선과 단단한 어깨, 간결한 커팅의 재킷은 맵시 있는 몸매를 강조하면서도 감히 거역하기 어려운 위엄과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있었다.

패딩을 벗은 여자의 시선이 로비 한가운데 세워진 입간판으로 향했다.


《제20회 디누 기념 음악회》

프로무지카 서울 (지휘: 최수민)
협연: 트리오 디누
바이올린: 로사 / 피아노: 마리 / 첼로: 예니
2024년 12월 13일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입간판에는 네 여성의 사진이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한 가운데에 방금 도착한 이 여성이 지휘봉을 든 위엄 있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 여성이 바로 최수민. 한국 최고의 민간 오케스트라인 프로무지카 서울의 지휘자이자 위대한 음악가 디누의 수제자이며 세계적인 음악 영재 교육기관인 디누 마스터클래스의 책임자, 그리고 이 모두를 관장하는 디누 음악재단의 이사장이었다.

지휘자 양 옆에는 붉은 드레스와 장신구로 화려하게 치장한 바이올리니스트와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용모의 첼리스트가 각각 악기를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뒤편에는 피아니스트가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바이올리니스트와 얼굴이 거의 같은 쌍둥이임을 알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 멤버들은 모두 도착했습니다, 이사장님.”

입간판을 바라보고 있는 최수민의 귀에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수민의 시선이 입간판에서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옮겨졌다.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단정한 수트 차림의 여성이 서 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흑백이 섞인 머리를 포니테일로 단단히 묶은 소박한 모습이었다.

“아, 이하람 사무국장님도 오셨군요. 전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제가 제일 늦었네요?”

“아유, 이사장님. 무슨 그런 말씀을.”

이하람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자신보다 어린 상사에 대한 예의였다. 최수민도 이미 그런 관계에 익숙한 듯 가볍게 목례로 답하며 화제를 돌렸다.

“트리오 멤버들은?”

“10분 안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다시 연락 넣을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공연도 아니고 리허설인데, 괜히 컨디션 흔들 필요 없죠. 그 아이들 늦으면 콘체르토 말고 다른 곡부터 맞춰보면 되니까요. 그런데 어르신들은?”

“최유선 교수님, 권오석 박사님 모두 객석에 계십니다.”

“아, 기다리게 해드렸군요. 먼저 가서 인사 드리고 잠깐 말씀 나누죠. 트리오 도착하면 객석으로 보내 주세요.”

“네,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하람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몸을 돌려 출연자 대기실이 있는 지하층으로 사라졌다. 최수민은 서두르지 않는 걸음을 옮겨 1층 객석 문을 열고 들어섰다.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무대 위에는 오케스트라 의자와 지휘자를 위한 포디움, 첼리스트를 위한 의자와 그랜드 피아노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객석 역시 텅 비어 있었고, 1층 중앙 좌석에는 단 두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한 명은 체구가 큰 50대 여성, 다른 한 명은 비교적 단정하고 작은 체구의 남성이었다. 모두 최수민에게는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여성은 최유선. 권정우, 즉 디누의 아내였던 사람. 수민에게는 ‘사모님’이다. 수민은 디누 마스터클래스에서는 물론이고 디누의 자택에 살다시피 하며 레슨을 받았기 때문에 디누의 부인인 최유선, 쌍둥이 딸인 로사, 마리와는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최유선은 단순히 사모님이 아니라 수민을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다. 바로크 건반음악, 특히 바흐, 헨델, 스카를라티 연주의 대가였고, 이 레파토리에서는 오히려 디누 보다 한 수 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민은 바쁜 부부를 대신해 로사와 마리에게 음악을 가르쳐준 선생님이기도 했다.

최유선 옆의 남성은 권오석. 디누의 절친이자 트리오 디누의 첼리스트 예니의 아버지다. 스승의 절친이라고는 해도 수민은 디누 생전에는 권오석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 친구분 계시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정작 수민이 오석을 처음 만난 것은 스승이 세상을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난 2009년 가을의 일이었다.

수민은 권오석보다 그 딸 예니를 먼저 알았다. 예니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08년부터 국내 콩쿠르를 휩쓸더니 2009년 부터는 국제 대회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3/4 사이즈 악기를 들고서 자기 보다 3, 4년 연상의 쟁쟁한 언니 오빠들과 겨루면서 여러 국제 주니어 콩쿠르를 석권한 것이다. ‘첼로 신동’이라는 별명이 따라 붙었고, 지휘자인 수민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수민은 예니가 오석의 딸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유선이 로사, 마리와 함께 예니를 데리고 수민을 찾아왔다. 수민은 안 그래도 예니를 한 번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에 반가웠다.

그때는 ‘아, 로사와 마리가 유망주와 인연을 맺었구나. 격에 잘 맞는 좋은 친구를 만났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최유선의 거침없는 한마디가 수민의 평정심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결론부터 툭툭 던지는 최유선 특유의 단도직입적인 화법이었다.

“얘들, 2년만 부탁해.”

“로사, 마리야 2년 아니라 20년이라도 봐 드리죠. 예니도 가르치라는 말씀이시면, 그것도 대환영이고요. 그런데 2년이 대체 무슨 뜻이죠?”

“얘들 2년 안에 세계 무대에서 통할 트리오로 키워달라고. 수민이라면 가능할 거야. 믿어도 되지? 참, 얘는 오석 선배 따님이고 나한테는 대녀인 예니야. 초면이지?”

“워낙 유망주라 이름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트리오요? 게다가 마리는 지금 쇼팽 콩쿠르 준비 중인데요?”

“쇼팽 콩쿠르는 접어. 어차피 시간 낭비야. 로사는 말할 것도 없고, 마리도 솔로는 어려워.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명색이 디누의 딸들이 열여섯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세계 무대 데뷔도 못 하다니. 너무 부끄러워. 차라리 실내악으로 전향하자. 그쪽이 경쟁력 있어. 게다가 디누와 오석 선배가 생전에 약속한 것도 있고. 선배가 직접 말해주지 그래?”

“처음 뵙겠습니다. 권오석입니다. 저는 사실 마에스트라 팬입니다. 지휘자보다 피아니스트 시절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요.”

권오석의 말투는 조용하면서도 따뜻했다. 무엇보다 단정한 모습과 차분한 목소리가 신뢰감을 주었다.

“정우와 제가 로사 바이올린, 마리 피아노, 예니 첼로. 이렇게 가르쳐서 트리오 만들자고 약속했거든요. 그땐 농담 같았지만 정우가 떠나고 나니 유언처럼 느껴져서요. 다행히 예니가 첼로를 좋아하고 실력도 나쁘지 않고요.”

수민이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실력이 나쁘지 않다니요? 차세대 최고 유망주인데요?”

예니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수민에게 인사했다. 순간 수민의 머릿속에 엉뚱하게 ‘참 예쁘네’라는 생각이 스쳤다.

한때 스승 디누의 연인이었고 클래식계의 아이돌로 불렸던 아녜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물론 최유선 앞에서 ‘아녜스 선생님 느낌이다’는 말은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대신 마음속에서는 다른 말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 약속은 아이들끼리 트리오 연주를 하자는 이야기 아닌가요? 저도 그건 멋질 거라 생각해요. 그게 이 아이들을 이 어린 나이에 세계 무대 데뷔에 시키자는 건 아니었잖아요?’

그러나 유선과 눈빛이 마주치자 수민은 말문이 막혔다.

로사, 마리 쌍둥이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 입으로 선생님 앞에서 “솔로는 글렀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열 여섯살 소녀들.

둘의 반응은 너무나 달랐다. 로사는 “어디 엄마 맘대로 지껄여봐”라는 듯한 도전적인 눈빛으로 버티고 있었고, 마리는 “엄마를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해요.”라며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런 마리를 보는 수민의 마음이 쓰라렸다. 디누의 딸 답게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유명했던 마리는 국제 콩쿠르 수상 실적은 화려했지만 유독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과연 디누의 딸.”

마리의 연주를 들으면 누구나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청중의 시선이 몰리기만 하면 불안에 떨며 마음이 무너지곤 했다.

그래서 예선까지는 모두를 압도하는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파이널만 가면 쏟아지는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실력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수 많은 3위.

그런 마리 앞에서 엄마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수민은 유선의 저런 말이 마치 마리를 가르친 자신을 향하는 것처럼 느껴져 더욱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예니를 보았다. 아직 열 둘 밖에 안 된 아이. 아무리 신동이라고 해도 여러 가능성이 남아 있을텐데 이렇게 어린 나이에 피아노 트리오 멤버로 길을 정해버린다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아이인데? 수민의 마음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사모님, 소녀들의 운명을 또 바꾸시려는 건가요? 저 하나로는 부족해서 이제는 따님들의 운명도, 거기다 친구분 딸까지 엮어서?’

그러나 이 항의의 목소리는 끝내 목구멍을 넘어 공기라는 매질까지 전달되지 못했다. 결국 이렇게 트리오 디누가 만들어졌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유선의 목소리가 그 시절의 회상으로부터 수민을 현재로 불러냈다.

“아, 그냥 이런 저런 생각 했어요.”

수민이 얼버무리자 유선이 쓴웃음을 지었다.

“수민아. 우리가 어디 한 두 해 아는 사이니? 네 속은 뻔히 보여. 내가 얘들 데리고 와서 트리오 연습 시키라고 했던 날 생각했지? 아, 그게 벌써 15년 전 이야기네. 좀 그랬지, 그때? 어린애들 데리고 와서 뜬금없이 트리오 연습 시켜서 데뷔까지 시키라고 해서?”

“아뇨, 꼭 그렇다고 하기 보단.”

“감출 것 없어. 다 안다니까. 그래서 고맙고, 또 미안해. 어쨌든 결과는 좋았잖아? 트리오 덕분에 이 아이들이 온 세계에서 사랑 받았고. 무엇보다 디누의 딸들이 뭐 하냐는 질문에 떳떳하게 대답도 할 수 있었고.”

“네.”

수민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 뒤에 이어질 말들은 ‘뭐든 사모님 뜻대로였죠. 저의 진로도, 선생님의 유산도, 아이들의 삶도’ 였지만 이 말은 가슴속에만 맴돌다 이내 사라졌다.

대신 수민의 마음은 어느새 2003년 12월 13일, 스승 디누가 세상을 떠났던 그날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당시 수민은 피바디 음악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애초에 수민이 진학하려던 학교는 줄리어드나 커티스였지만 디누가 이렇게 말하며 피바디를 추천했다.

“수민아, 네가 피아니스트로서 더 배울 건 많지 않아.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가르쳤잖아? 그런데 어디서 누구한테 뭘 더 배울 게 있겠니? 이제부터는 네가 만들어 가는 거야. 그러려면 연주 기술이 아니라 폭넓은 소양과 음악에 대한 통찰력을 함께 키울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해. 줄리어드나 커티스는 좋은 학교긴 하지만 너무 협소해. 거긴 네가 자랄 공간이 없어. 줄리어드 가면 너는 일 년 내내 피아노만 칠 거야. 하지만 피바디에 가면, 다양한 강좌와 도서관에서 죽음과 삶에 대해 고민하는 수 많은 통찰력과 소양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어느 쪽이 더 큰 피아니스트를 만들겠니?”

하지만 수민의 아버지는 단순한 이유로 반대했다.

“아니, 음대라면 당연히 줄리어드, 커티스가 넘버 원 아닌가요? 피바디라니요? 처음 듣는 학교인데.”

하지만 디누의 한마디로 상황은 바뀌었다.

“아하. 아버님께서는 피바디 음악원이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존스 홉킨스 대학교 음대라는 거 모르셨나 보네요?”

존스 홉킨스. 수민의 아버지는 의사였기 때문에 그 단어가 거의 마법의 주문 같은 역할을 했다.

“존스 홉킨스? 그 존스 홉킨스 말입니까?”

“네, 바로 그 존스 홉킨스입니다.”

“아, 그렇군요. 존스 홉킨스라면야 마음이 턱 놓이네요. ”

그렇게 수민은 피바디 음악원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스승이 말한 대로 피아노 연주는 물론이고 작곡, 지휘, 예술행정, 예술철학, 사회학 같은 인문교양까지 함께 쌓을 수 있어 하루하루가 너무도 행복했다. 피아노 연주를 신경 생리학적, 신체 물리학적으로 접근하는 의대생들과의 토론은 참으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후 수민의 길은 탄탄대로였다. 혹자는 음악계의 금수저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어릴 때 부터 그런 시기와 질투에는 익숙해졍 있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다.

무엇보다 2000년에 쇼팽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당시 수민의 나이는 겨우 열 아홉살이었고, 경쟁자가 하필 그 유명한 Y였다.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한동안 의견이 갈릴 정도로 막상막하였다.

그때 수민에게 우승컵을 주었어도 전혀 이의가 나오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사실상 공동우승이나 다름없었다. 훗날 Y의 실망스러운 행보를 감안하면 차라리 그때 수민에게 우승컵을 주는 것이 쇼팽 콩쿠르 주최측에게는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우승은 못했지만 국제적인 인지도는 확실하게 얻었다. 해리슨 패럿과 계약을 맺었고 3년간 유럽과 미국 투어를 다녔다. 투어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오히려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Y보다 실제 공연에서는 더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가는 곳 마다 디누의 수제자라는 영예를 누렸다. LA에서는 디누가 지휘하는 퍼시픽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브람스 2번 협주곡을 연주하여 감격적인 사제 상봉과 더불어 열광적인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런던을 지나갈 때면 꼬박꼬박 로사, 마리가 다니는 BCM 주니어 코스 강사를 자청하여 선생님 역할에도 충실했다.

그런데 피아니스트로서 정상에 오르기 직전인 그해 겨울, 디누가 세상을 떠났다.

수민은 투어를 중단하고 부랴부랴 귀국해서 장례식에 참석했다. 의외로 디누의 소울메이트로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 지네트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너져 있었던 것이었을까?

디누의 옛 연인이었던 아녜스는 통곡하다가 결국 실신해 구급차에 실려 나갔다.

그런 와중에도, 정작 부인인 최유선은 로사와 마리의 손을 하나씩 잡고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수민이 나타나자 로사와 마리가 울음을 터뜨리며 와서 매달렸다. 수민도 함께 쌍둥이를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유선이 차갑게 그들을 떼어내며 말했다.

“최수민. 넌 이러고 있으면 안 돼. 눈물 닦고 일어서.”

“네?”

“디누는 갔지만, 이름과 음악은 남겨야 해. 그게 네 의무야.”

“하지만 전.”

“이런 말 정말 미안하지만, 수제자로 불리며 누린 게 있으면, 거기 따르는 책임도 져야 해. 이제는 계승자가 되어야 해. 정신 차려. 네가 할 일이 많아. 우선 오케스트라와 마스터클래스를 지켜야지. 네가 프로무지카 서울의 지휘자가 되고, 마스터클래스 원장도 맡아야 해.”

“사모님, 전 아직 스물셋이에요. 아직 졸업도 안 했다고요.”

“디누는 스물셋에 이미 피아노의 제왕이었어.”

“그건 선생님이니까요.”

“벌써 3년째 세계 투어 다니는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 잘 들어. 프로무지카 서울도, 마스터클래스도 ‘디누’라는 이름값이 절반이야. 디누가 없어진 지금, 네가 그 이름을 이어가지 않으면, 이 모든 건 사라질 거야. 수민아. 그걸 원해?”

“아뇨. 그럴 순 없어요.”

“겨우 스물셋. 맞아. 그런데 네가 어리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야. 디누는 늘 젊음과 함께였잖아. 어릴 땐 신동, 젊어서는 천재. 넌 그 계승자야. 나는 네가 충분히 이끌 수 있다고 믿어. 게다가 넌.”

수민은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아들었다. 디누가 세상을 떠났다. 디누의 오케스트라와 디누가 일군 교육기관은 남았다. 하지만 그 이름과 연관되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은 공중분해 될것이 뻔한 운명이었다.

수민은 ‘디누의 수제자’라는 찬사가 이제는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 굴레가 되어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굴레 속에서, 유선은 단 하나의 길 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하여, 겨우 스물셋의 나이에 수민은 피아니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잠시 내려놓고 지휘자, 음악영재 교육기관의 책임자, 그리고 결국 디누 재단의 이사장이 되는 길을 받아들였다.

그 잠시가 결국 20년의 시간이 되어버렸고, 스물 셋의 귀엽고 맵시있던 소녀는 43세의 카리스마 있는 마에스트라가 되었다.

지휘자 활동 초창기에는 해마다 피아니스트 복귀를 준비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일이 많아 미루고 또 미뤄야 했다. 그러다 서른이 넘어가면서 어느새 수민은 지휘자와 교육자로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스스로 받아들인 길이지만 미련은 컸다. 특히 디누의 또 다른 제자이자 자신의 후배인 김소영이 세계 정상의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가슴이 쓰라렸다.

김소영은 디누가 마지막으로 거둔 제자로, 디누가 세상을 떠날 당시 겨우 열 여섯 살이었다. 너무 어린 덕분에 소영은 디누 레거시를 지켜야 하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디누의 쏘울메이트인 지네트를 샤프론 삼아, 디누의 라이벌이자 절친이었던 프랑스 피아니스트 클로드 티보를 스승 삼아 계속 공부하며 커리어를 이어갔다. 수민이 ‘디누의 수제자’라는 브랜드로 승승장구 했듯이 소영은 ‘디누의 마지막 제자’라는 브랜드로 승승장구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수민은 한편으로는 축하하는 마음이 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기심이 끓어올라 힘들었다. 그래서 마리 가르치는 일에 더욱 열중했다. 스승의 딸 마리에게 자신이 도달하기 직전에서 멈춰서야 했던 그 정상을 밟게 해 주는 것이 소명처럼 느껴졌다. 제자가 아니라 그 혈육이 정상을 밟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디누의 계승이라는 엉뚱한 정당화 논리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사모님이 단언했다. 그것도 마리와 마리를 가르친 수민이 함께 듣는 앞에서.

“마리도 솔로는 힘들어.”

수민은 이 말이 상처가 되고, 그 상처가 다시 동력이 되었다. 그 상처에서 벗어날 길은 보란듯이 트리오를 성공시키는 것 뿐이었다.

‘좋아. 솔로로 안된다면 실내악으로 정상을 밟게 해 주자.’

돌아보면 결국 최유선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던 셈이다. 어쩌면 저렇게 상처를 주는 것이 사모님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방법인가보다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쨌든 성공하긴 했다.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 대신 세계 정상급 피아노 트리오 한 팀을 세상에 내어 놓았으니. 하지만 수민이 원래 마리에게 기대했던 길, 자신이 가려다 가지 못했던 길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최유선에게는 솔로든 트리오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디누의 딸들이 ‘세계 정상급 연주자’로 인정받는 것이었으니까. 더구나 마리는 무대 공포증만 극복하면 언제든 정상에 올라설 자질이 보였지만 로사에게는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 입장에서 둘 중 하나만 성공하는 꼴은 보기 싫었다.

무엇보다 그림이 좋았다. 디누의 딸들이 디누 친구의 딸과 함께 트리오로 활동한다는 설정은 미담으로 포장되기 딱 좋았기 때문이다. 대를 잇는 우정, 갈채보다 조화를 추구하는 천재의 겸손한 후손들이라는 이야기까지 덧붙여졌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는 것이 결코 수민이 꿈꾸던 삶이 아니었듯, 피아노 트리오의 일원이 되는 것 또한, 수민이 마리에게 기대한 미래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수민은 그 트리오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