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장편소설 트리플콘체르토 8화 리허설 2

by 권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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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잠깐 쉬어 가죠.”

수민이 지휘봉을 내려놓고 손바닥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1악장이 끝났다. 콘서트였다면 잠시 호흡만 가다듬고 바로 2악장으로 들어갔을 것이지만, 리허설이라 여유를 두고 쉬어 갈 수 있었다.

수민은 객석을 훑어보다 1악장을 연습하는 동안 새로 들어온 두 사람을 발견했다.

체구가 작은 50대 여성과, 반대로 체격이 크고 당당한 30대 여성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자그마한 50대 여성은 지네트였다. 30년 넘게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인물. ‘바이올린의 여신’이라는 별칭이 과장이 아니었다. 영향력만 놓고 보면 ‘음악의 여신’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파리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성년이 되며 프랑스 국적을 선택했다. 디누와는 듀엣 파트너이자 뮤즈, 소울 메이트로 불렸다. 한때 연인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당사자들은 부인했다. 무엇보다 최유선과 평생 자매처럼 지낸 것을 보면 그 말이 진실일 가능성이 컸다. 유선의 성격상 남편의 연인에게 절대 관대할 리 없으니. 로사와 마리는 지네트를 ‘지네트 이모’라고 불렀고, 로사는 친고모 미우와의 관계가 틀어진 뒤 지네트를 사실상 유일한 ‘앤트’로 여기고 있었다.

체격이 큰 30대 여성은 바로 수민에게 애증의 대상이 되는 인물, 김소영이었다. 디누의 마지막 제자. 수민의 후배.

아르헤리히와 피레스가 무대에서 물러나는 시점에서, ‘피아노의 여제’ 자리를 넘겨받을 준비를 마치고 대관식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아르헤리히와 피레스를 한 사람으로 합친 뒤, 여기에 디누의 정신을 입혔다”고까지 평가받는 괴물 같은 차세대 피아니스트였다.

수민은 지네트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협주곡 무대에서 수없이 호흡을 맞춰 이미 친밀한 사이였지만 인사를 건네는 순간만큼은 항상 경건했다.

그 순간 김소영이 의도치 않게 ‘선배에게 인사를 받는’ 위치가 되어 버렸다. 상황을 인지한 김소영이 눈을 번쩍 뜨며 자리에서 일어나 깊이 허리를 숙였다. 잠시 세대와 위계가 뒤섞여 미묘한 긴장이 흘러 마치 오우삼 영화에 자주 나오는 서로가 서로에게 권총을 겨누는 장면처럼 되고 말았다.

트리오 멤버들도 이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 로사는 소영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지네트를 향해 펄쩍 펄쩍 뛰며 손바닥 하트를 날려 보냈다. 어머니를 대할 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지네트도 양손의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여 화답했다. 마리는 지네트에게 미소짓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이고 소영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소영을 바라보는 마리의 표정이 복잡했다. 예니는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30도 정도 숙여 인사했다.

그동안 디누 추모 음악회의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지네트와 김소영이 함께 연주하는 디누의 바이올린 소나타 G장조였다.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극단적인 난이도를 자랑해 마리는 피아노 파트를 간신히 연주할 수 있었고, 로사는 바이올린 파트를 손도 대지 못할 정도였다. 애초에 디누가 지네트를 염두에 두고 쓴 곡이었고, 지네트마저 고전하게 하겠다는 야심이 가득 담긴 작품이니 로사 입장에서는 손쓸 도리가 리 없었다.

디누의 작품을 연주하지 못하는 디누의 두 딸이라니. 디누 최고의 걸작을 두 딸이 아니라 친구와 제자가 연주하는 꼴이라니. 유선에게는 그런 상황이 너무 싫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추모 음악회의 하이라이트가 트리오 디누의 트리플 콘체르토가 되었고, 지네트와 소영의 연주는 전야제로 배치되었다.

그 순간 수민은 스물 세 살의 자신을 떠올렸다.

스승의 때이른 죽음으로 ‘디누의 수제자’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고 막 혜택을 누리려던 바로 그 시점. 그 타이틀은 달콤한 꿀이 아니라 등 뒤에 들어박힌 짐이 되어버렸다.

‘내가 그때 그 짐을 뿌리치고 내 갈 길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수민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서 부질없는 생각이다.

애초에 자신이 피바디에서 작곡과 지휘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유선이 오케스트라를 맡기려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는 ‘피아노는 이미 디누에게 다 배웠으니 더 넓게 공부하고 싶다’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당시 수민은 김소영이 두려웠다. 허울 좋은 디누의 수제자. 하지만 수민은 당시 스승의 눈 빛에서 이미 자신보다 소영을 피아니스트로 훨씬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래서 도망갈 길을 미리 마련했던 것이다.

그런데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작곡가까지 겸했던 디누는 수민이 작곡과 지휘까지 공부하자 이를 외도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길을 따라오려 하는 것으로 보고 무척 대견스럽게 생각했다.

무엇보다 수민이 배운 디누와 소영이 배운 디누가 달랐다. 수민은 디누가 30대 이후에 보여준 명상적이고 우아한 연주 스타일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소영은 디누가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온 세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던 바로 그 공포스러울 정도로 열정적이고 강렬한 그 스타일을 이어받았다.

30대 디누의 스타일은 연구와 수련의 결과지만 20대 디누의 스타일은 오직 하나, 천재라서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니 수민이 원래 피아니스트의 길을 계속 걸었더라도 소영과 같은 압도적인 위치에 서지는 못했을 것이다.

수민의 이성은 이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수민의 감정은 커다란 미련 덩어리를 재료로 수많은 가상의 타임라인을 만들어가며 가슴 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던 수민의 시선이 다시 트리오 멤버들에게 향했다.

2009년 가을. 이 멤버를 처음 만난 날. 당시 수민은 프로무지카 서울의 상임지휘자와 디누 마스터 클래스 원장이라는 두 직함을 어깨에 짊어진 지 벌써 6년째에 이르고 있었다. 그 사이 프로무지카 서울은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 성장했고, 디누 마스터 클래스는 세계적인 음악 영재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이만하면 스승에게 진 빚은 다 갚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던 시기였다. 마음이 가벼워지자, 수민은 서서히 피아니스트로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 20대의 끝자락이었다. 다시 건반 위에서 자신의 이름을 빛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되살아났다.

게다가 수민은 깨달았다. 청중의 마음에 해일을 일으키는 디누만 디누가 아니라, 고요와 평화를 선사하는 디누 역시 동일한 디누였다는 것을.

그런데 그 시점에 최유선이 세 소녀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묵직한 봉투 하나를 내밀듯 새로운 과업을 던졌다.

“얘들을 3년 안에 세계 정상급 트리오로 키워. 정말 중요한 일이야. 디누의 이름을 건 트리오니까.”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수민은 처음엔 웃어넘기려 했다. 그러나 최유선의 눈빛을 보고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날 이후, 수민이 세워두었던 피아니스트 복귀 계획은 다시 봉인되어 서랍 안으로 들어갔다. 결국 수민은 20대의 마지막 2년마저 자신이 아닌 ‘디누 레거시’를 위해 쏟아붓고 말았다.

그렇게 서른번째 생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2011년 3월, 수민은 로사, 마리, 예니가 목표했던 열두 곡이나 되는 레파토리를 완성하도록 만들었다. 이 열두 곡은 모차르트 두 곡으로 1부, 하이든이나 훔멜 한 곡과 베토벤 한 곡으로 2부, 이런 식으로 세 세트의 프로그램을 편성할 수 있는 레파토리였다. 누가 봐도 대규모 투어를 염두에 둔 편성이었다.

“자, 이걸로 기본 레파토리는 완성 되었네. 이거 너무한데? 우리 학교 학생들도 이렇게 빨리는 못 익혀.”

마침내 마지막 레슨을 마무리 했을 때 프로무지카 서울의 악장이자 서울대학교에서 실내악을 가르치는 바이올리니스트 성주영 교수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하지만 수민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마리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이게 이 아이들한테 꼭 좋은 일일지 전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알아. 알아. 나이에 비해 너무 무리한 과정이었다는 거. 하지만 보통 아이들이 아니라 디누의 핏줄이잖아?”

순간 성주영 교수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예니 쪽을 돌아 보았다. 다행히 예니는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는 관심 없는지 예전부터 오래 전 부터 자신의 첼로 선생이었던 정동진 교수와 콩냥콩냥 수다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민은 순간, 성주영의 얼굴빛이 아주 조금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성주영의 시선은 예니에게 가 있었다. 지난해 까지만 해도 155cm였던 예니는 중학교에 들어서며 어느새 키가 10cm 더 자라 성인 평균보다 훌쩍 위에 자리 잡았다. 얼굴과 몸매가 한창 피어 오르는 조짐이 보여 전혀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어지간한 아이돌과 나란히 세워도 전혀 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미소녀가 자기 남편과 다정하게 콩냥거리고 있는 모습을 본 성주영의 마음속에 아주 짧게,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경계심이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수민은 깨달았다. 자신이 ‘디누 브랜드’의 후계자로 선택된 것이 순전히 음악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 레거시는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당연히 디누의 아내였던 최유선이 맡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유선은 디누 못지않은 연주자였고, 음악 이론에 밝고 지휘까지 훌륭해 음악계에서는 이미 널리 인정받던 인물이었으니까. 다만 레퍼토리가 헨델과 스카를라티 같은 오래된 곡들 위주였고, 피아노가 아니라 하프시코드나 포르테피아노를 연주했기에 대중성이 덜할 뿐이었다.

사실 디누의 명상적이고 우아한 후기 스타일이 결혼 이후에 등장한 것도 그저 우연은 아니었다. 아내에게 배웠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유선은 디누의 스타일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역량 있는 음악가였다.

그러나 유선은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수제자’라는 타이틀을 단 수민을 전면에 내세웠다. 자신은 그림자 권력으로 남아 있으면서.

수민은 그 배경에 당시 자신의 20대 초반의 젊음, 그리고 종종 ‘예쁘장하다’라고 불리던 외모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수민은 자신이 객관적으로 미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예쁜 것과 예쁘장한 것은 다르니까.

하지만 클래식계는 묘하게도 젊고 반듯한 여성이 등장하면 일단 ‘미모’라는 타이틀부터 붙이고 보는 습성이 있었다. 어쩌면 케이팝보다도 미모를 더 남발하는 곳이 클래식일지도 몰랐다.

수민은 최유선이 왜 굳이 ‘트리오’를 고집했는지 이제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디누 자매 둘만으로도 충분히 완성도 높은 듀엣을 해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유선이 예니를 끌어들인 까닭은 단순히 첼로 신동이라서가 아니었다.

예니는 예쁘장한 정도를 넘어서, 케이팝 씬에 내놓아도 통할 만큼 눈에 띄는 미모의 소유자로 자라나고 있었다. 유선이 그 가능성을 못 볼 리 없었다. 결국 유선이 원하는 것은 디누라는 이름과 ‘아름다운 소녀’라는 이미지가 결합된 새로운 브랜드, 그 힘으로 디누 레거시를 다시 세계 무대로 띄우는 것이었다. 제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디누 레거시를 자신의 두 딸과 대녀를 통해 회수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 만으로 통할만큼 클래식 세계가 만만한 곳은 아니라는 것을 최유선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러니 소녀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데뷔한 다음에도 가혹한 레슨이 계속 될 터였다.

이 열 두 작품으로 한 두 시즌 정도의 투어 프로그램은 짤 수 있지만 탑 클래스 트리오가 되기 위해 필요한 진짜 레파토리는 아직 시작도 안 했기 때문이다. 데뷔 콘서트를 해서 반응이 좋으면 투어 일정이 잡힐 것이고, 그 사이 사이에도 레슨을 계속 해야 했다.

2011년에는 정상급 트리오라면 반드시 소화해야 하는 슈베르트 1번, 2번, 베토벤 7번, 2012년에는 드보르작 3번, 4번과 차이코프스키 op.50 까지 익혀 2013년에는 뮌헨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우승컵을 차지하는 것이 최유선이 제시한 시간표였다. 2014년이 되면 로사와 마리가 20세가 된다. 딸들이 아직은 10대일 때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것이 최유선의 마지노선이었던 것이다.

수민은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유선이 제시한 목표 시점이 되면 로사와 마리는 겨우 열아홉, 예니는 열여섯이다. 그 나이에 저 작품들을 ‘완전히’ 마스터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어지간히 몰아붙여도 1년에 한두 곡 익히는 게 현실이고, 차이코프스키 Op.50이나 드보르자크 4번 ‘둠키’ 같은 대곡은 1년 내내 매달려도 벅찬 작품들이다.

그런데 그걸 1년에 두세 곡씩 익히라니. 결국 소녀들의 거의 모든 삶을 연습에 바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투어 일정 사이사이에 새로운 레퍼토리를 배우라는 요구는 사실상 혹사였다.

문제는, 그 혹사를 설계하고 강제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수민이라는 점이었다. 세 소녀를 매일 연습실로 불러들이고, 하루하루를 쪼개 악보를 파고들게 만들며, 한 마디 한 마디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집요하게 달라붙어야 하는 역할.

이런 훈련은 사람 사이를 갈라놓기 마련이었다. 꼬맹이일 때부터 가르치며 정을 쌓아온 로사와 마리와도 날마다 부딪히다 보면 관계가 험악해질 수 있었다. 하물며 아직 친해질 틈도 없었던 예니와는 시작부터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사이가 될지도 몰랐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을 끝낼 무렵이면 수민의 나이는 어느새 서른 셋. 그때도 과연 피아니스트로 돌아가고 싶은 열정이 마음에 남아 있을까? 그 즈음이면 이미 지휘자와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이 굳어져 있을 가능성이 컸다.

성공의 길목에 들어서자마자 멈춰버린 피아니스트의 꿈.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해 남은 것은 책임져야 할 오케스트라, 책임져야 할 마스터 클래스, 그리고 책임져야 할—어쩌면 언젠가 자신을 미워하게 될지도 모르는—트리오였다.

“그런데 수민 언니, 아니 수민 쌤. 우리 데뷔하면 여러 나라 다니는 거죠?”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사가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로사는 그저 데뷔라는 말에 신이 나 있었고, 세계 여러 도시들을 다닌다는데 잔뜩 흥분해 있었다.

하지만 로사의 진짜 속마음은 바로 드러났다.

“레슨 끝나면 다시 런던 엄마 집 가야 하는 거 아니죠? 데뷔하고 투어 돌고 그러면 계속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는 거죠? 호텔서 자고?”

수민이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마랑 같이 사는 것이 저렇게 싫을까 싶기도 했고, 한창 그럴 나이지 싶기도 했다.

“그건 아직 몰라. 에이전시가 어떤 계획을 짜느냐 따라 달라지니까. 다만 너희가 당장 런던으로 돌아 갈 일은 없어. 2013년 까지는 레슨 끝난 거 아니니까.”

“그럼 계속 서울에 있는 거죠?”

“아마 그렇게 될 거야. 투어 일정 잡히더라도 다 돌고 나면 다시 서울에 오는 거야.”

“쌤 집에서 계속 살고?”

“응.”

“와, 그거면 되요. 와오. 신난다.”

170센티가 넘는 커다란 로사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쳤다. 그런 로사를 수민은 귀여움과 걱정이 반반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홉 달 전,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로사는 들떠 있었다.

디누의 딸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공항에는 팬들과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쏟아지는 플래시 속에서 마리는 거의 울상이었지만 로사는 환하게 웃으며 그 빛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마치 스포트라이트에 샤워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아홉 달 동안 로사는 그 빡빡한 레슨들 사이에 언제 그런 틈을 냈는지 화려한 남성 편력을 뽐냈다. 마스터 클래스 남학생 몇 명과 연달아 데이트를 했고, 심지어 열 살 이상 나이 차이 나는 마스터 클래스 강사 중 누군가와 관계가 깊어진 눈치였다. 이미 선을 넘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수민은 유선이 “딸 맡겨 놨더니 헤프게 노는 것 못 막았다”며 불같이 화낼까 걱정했지만, 유선의 반응은 놀랍도록 건조했다.

“걔가 좀 그래. 소문 안 나게 챙겨.”

설마 싶어 수민은 로사의 페이스북을 열어보았고, 그 자리에서 말문이 막혔다.

페이지 전체가 거의 화보집이었다. 과감하다 못해 선정적으로 보일 법한 복장과 포즈가 줄을 이었고, 사진마다 수천 개의 ‘좋아요’가 붙어 있었다. 팔로워 수도 이미 10만을 넘겼다.

그 화면을 바라보는 수민의 마음은 복잡했다.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민에게는 무겁고 벗어날 수 없는 짐으로만 느껴지는 ‘디누’라는 이름이 로사에게는 활용하기 좋은 사회적 자산처럼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디누의 딸’이라는 이유 하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익숙해진 로사는, 바이올리니스트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 실망하던 즈음 ‘트리오 디누’라는 이름으로 데뷔하게 되자 마침내 본격적인 셀럽의 길이 열렸다고 믿는 듯했다.

그 모습은 ‘데뷔’, ‘투어’라는 말만 들어도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리던 마리와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예니는 그저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진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유지하는 일종의 사회적 페르소나인지 수민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그 미소가 지난 10개월 동안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적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대학생도 버거워 할 강도의 훈련을 견뎌내면서도 예니는 언제나 그렇게 웃었다. 트리오 훈련 외에 원래 받던 개인 레슨도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다.

중학생인 예니를 지도하는 동안 수민의 머릿속에서는 늘 ‘아동·청소년 보호법’이라는 문구가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훈련 도중에 여러 번 물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니? 힘들면 조금 늦춰도 돼.”

하지만 예니의 대답은 언제나 똑같았다. 그 대답과 함께 건네는 미소도 변함이 없었다.

“너무 재미있어요. 풀사이즈 악기 소리 너무 좋고, 트리오 소리도 너무 좋고, 언니들이랑 맞춰가는 것도 너무 재미있어요. 저, 데뷔해서 많은 사람들한테 제 음악 들려드린다는 것도 꿈만 같고. 그 생각만 하면 힘들다는 생각 안 나요.”

로사는 무대보다 여행을 꿈꾸었고, 마리는 무대 자체를 두려워했다. 그 사이에서, 가장 어리고 가장 작았던 예니만이 오로지 무대 그 자체를 꿈꾸고 있었다.

예니는 자신의 외모에도 은근히 취해 있는 듯했다. 어디서 배워 왔는지 스스로 메이크업을 하고, 틈만 나면 거울 앞에 서서 오랜 시간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 눈빛에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곧 데뷔할 자신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빛날지 상상하는 기쁨이 서려 있었다.

수민은 그 모습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늘 불편했다. 클래식계는 겉으로는 점잖고 품위 있는 세계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케이팝 못지않게 여성 연주자의 외모를 소비하고 평가하는 세계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선은 예니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연주자에겐 언제든 족쇄가 될 수 있었다.

수민은 2000년 쇼팽 콩쿠르를 떠올렸다. 당시 열 아홉 살이었던 수민은 결선에서 같은 또래의 Y와 맞붙었고, 간발의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쇼팽 콩쿠르 역사상 가장 큰 이변의 순간이었다. 1, 2위가 모두 10대였던.

당시 Y는 참가자 중 가장 어린 데다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무대 매너까지 갖춰 세계 무대에서 순식간에 스타로 부상했다. 언론에서는 ‘피아노의 프린스’라 불렀다.

Y는 그 호칭에 취해버렸다. 클래식 연주자이면서도 여배우, 모델, 아이돌과의 스캔들 기사가 줄줄이 터졌다. 10년 뒤에도 여전히 연간 50회 이상의 공연을 매진시켰지만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비싼 표 값이 아까운 연주.”

테크닉은 여전했으나, 해석은 깊이와 방향을 잃었다. 실력이 답보하다 못해 오히려 콩쿠르 우승 당시보다도 한참 떨어진다는 혹평을 받았다.

수민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외모와 인기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동안 Y는 음악적 성장의 결정적 시기를 흘려 보내 버렸던 것이다.

‘몇 년 뒤, 젊음이 스러지고 외모가 바래면 그에게 무엇이 남을까?’

그래서 수민은 예니가 일찍부터 자신의 외모를 의식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앞으로 예니에게 쏟아질 시선이 음악이 아니라 얼굴을 향할 것이 분명했고, 그렇게 소비되기에는 예니의 재능이 너무나 아까웠다.

“저어, 마에스트라.”

악장의 목소리가 들리며 기억 속에 잠겨 있던 수민을 다시 2024년 12월로 끌고 왔다.

“아, 네. 이제 2악장 들어가죠. 2악장은 끊지 말고 3악장까지 바로 갑니다.”

수민은 다시 지휘봉을 들어올렸다. 트리오 멤버들도 자기 위치에서 수민을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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