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장편소설 트리플콘체르토12화 수학여행1

by 권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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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설마 그 꼴로 황리단길 가려는 건 아니지?”

예니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허리를 꺾어버릴 듯이 앞으로 기울였다.

그 앞에는 헐렁한 박스 티에 반바지, 플립플랍, 그리고 안 그래도 조막만한 얼굴을 온통 다 뒤덮은 밀짚모자를 눌러쓴 지니가 서 있었다.

지니가 손을 허리에 올리고 예니를 흘겨보았다.

“어쩌라고? 황리단길에서 입으려고 챙긴 셀린느 세트를 네가 먼저 낼름 입어버렸잖아.”

“그럼 내 옷 입으면 되지. 오늘 입으려고 가져온 원피스 있는데?”

셀린느 크롭탑에 하이웨이스트 숏츠 차림의 예니는 누가 봐도 태연한, 그러나 얄미운 얼굴이었다.

지니가 코웃음을 쳤다.

“네가 가져온 원피스들은 다 너무 여자여자 하잖아.”

“언니 청순돌이라며? 여자여자한 느낌이면 청순돌하고 딱 맞는 거 아니야?”

“아휴. 청순에도 종류가 있어. 나는 청순 발랄이고, 여자여자한 청순은 소윤이 몫이야.”

예니가 피식 웃었다. 지니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덧붙였다.

“괜찮아. 어차피 오늘 오석샘 오시잖아. 좀 놀래켜 드려야지. 샘은 내가 셀린느만 입고 사는 줄 아시니까, 가끔 이런 모습도 보여드려야 해.”

예니가 눈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아빠랑 잘 될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어.”

지니가 바로 받아쳤다.

“그럼 어쩌려고? 계속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지낼 거야? 그럴 바엔 차라리 깨끗하게 의절하든가. 적어도 오석 샘은, 우리 아빠보단 훨씬 아빠 노릇 잘 하신 분이잖아.”

예니가 피식 웃었다.

“모르겠다. 만약 언니네는 가난했고 우리 집은 부유했고, 이런 얘기 하는 거라면 솔직히 그건 아빠 덕분이 아니라 할머니랑 엄마 덕분인 거고. 교사 월급 빤한데 뭐. 우리집 소득은 다 약국에서 나온다고. 그래 뭐, 어쩌면 이것도 공부겠지. 그러니까 수학여행이고. 그나저나 아빤 내 말은 안 듣는데 언니 말은 참 잘 듣더라. 경주까지 내려오라고 했는데도 정말 오신다고? 나 있다는 얘긴 안 했지?”

지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 했어.”

예니가 한숨처럼 내뱉었다.

“아빤 옛날부터 그랬어. 자기 딸보다 학생을 더 챙겼어. 그래서 질투도 나고 괜히 서운하고 그랬어. 나 어릴 땐 입만 열면 와니, 와니 그러셨는데 나 큰 다음에는 예진이, 예진이. 하도 집에서 그렇게 노래를 해서 언니 만나기 전에 이미 얼굴 알고 있었다니까.”

지니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왜 그러셨을까?”

“낸들 알겠어? 직업 병인가?”

“아니. 학생들은 가면을 쓰고 있잖아. 딸은 가면 없이 그대로 보이고. 오석쌤은 그런 가면에 쉽게 감동하시는 분이었을지도 몰라. 나만 해도 쌤 완전히 속였어. 얌전하고 내성적인 모범생 김예진으로 기억하시더라고. 지금도 내 본 모습 모르실 걸?”

예니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크크. 언니가 얌전하고 내성적? 하긴 언니 아이돌 데뷔했을 때 진짜 충격 받으셨지. 결국 ‘효녀 예진이가 가족 위해 희생했구나’라고 믿으셨다니까.”

“그건 사실 맞는 말이야. 그때 선급금 천만 원, 난 만져보지도 못하고 전부 가족 생활비로 들어갔으니까.”

예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니까 결론은 우리 아빠가 좀 더 괜찮은 아빠라는 거야? 적어도 딸 삥 뜯어 살지는 않으니까?”

그 말에 지니가 씁쓸하게 웃었다.

“좀 거칠게 말하면 그렇게 말 할 수 있지. 뭐, 적어도 이런 말은 안 할게. ‘아빠 마음 다 똑같아, 네가 이해해라’ 이런 말. 난 그런 거 안 믿거든. 아빠 마음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야. 근데 오석쌤은 적어도 너한테 물려줄 유산이 있는 아빠잖아? 난 유산 물려줄 아빠 있다는 게 너무 부러워.”

예니가 지니의 팔을 쿡 찔렀다.

“아이, 무슨 재수 없게 벌써 유산 타령이야. 아직 30년은 더 사실 거야.”

지니는 표정을 흐리지도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넌 몰라. 나이 서른도 되기 전에 가족들이 오히려 내 유산을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드는 거. 그럴 때 마다 소스라치는 마음. 아빠가 유산을 물려줄 사람이 아니라 내 유산을 받을 사람이라는 현실. 이런 건 예니 처럼 유복하게 자란 공주님은 절대 이해 못할 걸? 그래서 난 아빠더러 집도 차도 다 쓰시게 해드리긴 했지만 명의는 무조건 내 앞으로 해 두었어.”

예니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 되었다.

“아무리 팩폭이라도, 언니, 그 말 너무해.”

“그러니까.”

“알았어.”

예니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랑 어떻게든 잘 얘기해볼게. 어쨌든 이것도 인생 공부고, 지금은 수학여행이니까.”

그리고 예니가 먼저 한 걸음 내딛으며 외쳤다.

“자, 그럼 황리단길 가서 신나게 놀아보자. 쇼핑도 하고! 언니 그 꼴로 다녀도 사람들이 알아보면 역대급 아이돌로 인정!”

지니가 따라붙으며 소리쳤다.

“고고!”

지니가 예니의 팔짱을 끼며 펜션을 나섰다. 둘만의 수학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자연스레 지니는 수학여행 첫날을 떠올렸다.

7월 24일 오전 10시.

지니는 일부러 예니의 숙소로 가서 픽업하지 않았다.

“수학여행은 집까지 가서 모셔오는 게 아니지.”

그런 생각으로, 예니에게 유노이아 뷰티 뮤지엄 앞으로 나오라고 일렀다. 둘 뿐이지만 어쨌든 수학여행이니까.

출발 당일, 뤼미에르 사옥 1층 뷰티 뮤지엄 앞에서 예니를 기다리던 지니는 멀리서 캐리어를 질질 끌고 오는 예니를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한여름, 그것도 습도 높은 날. 예니의 이마와 볼은 번들거릴 정도로 땀에 젖어 있었다.

“아니, 택시 타고 오지. 뭘 이렇게 힘들게 걸어왔어?”

예니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투덜거렸다.

“수학여행이잖아. 승용차 타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느낌 안 사는데, 집합 장소까지 택시 타고 오면 그건 그냥 놀러가는 거지. 수학여행은 좀 고생해야 돼.”

그러고는 지니의 EV3를 힐끗 보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근데 여기에 이런 차 세워둬도 돼? 여기 오는 차는 최하 포르쉐 급 아니야?”

지니가 피식 웃었다.

“무슨 소리야. 여기 대표인 소윤이도 10년 된 미니 쿠퍼 몰고 다녀. 그리고 난 자차도 없어. 이건 협찬 받은 거야.”

“알뜰하네?”

지니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휴, 아이돌은 한 철이야. 난 6년 번 돈으로 60년 살아야 한다고. 클래식은 ‘유산’이지만 케이팝은 ‘유행’이잖아.”

지니는 예니의 캐리어를 들어 트렁크에 실었다. 트렁크 문이 전동 모터 소리와 함께 닫히고, 두 사람은 차에 나란히 올라탔다. 그렇게, 10년 늦은 둘만의 수학여행이 시작되었다.

차가 88도로에 올라 크루즈 주행에 들어서자 예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코스는 어떻게 짰어? 언니만 믿을게. 그래도 언니는 중학교 때 수학여행, 수련회 다 가본 경력자잖아? 나는 중1 때부터 활동 들어가서 수학여행, 수련회 전부 삭제. 방학만 되면 투어 잡혀서 초등학교 이후로는 방학도 전부 삭제. 그래서 이번 여행이 내 첫 방학이자 첫 수학여행이야.”

“나도 내륙 수학여행은 처음이야. 중학교 때는 제주도 갔거든.”

“그럼 우리도 제주도로 갈 걸 그랬나?”

“아냐. 연습생들한테 물어봤는데 요즘은 중학교 수학여행이 강원도 아니면 경주래. 그래서 둘 다 가보려고. 2주 코스로.”

“회비는?”

“밥값, 술값만 네가 엔빵 해. 나머지는 무료.”

“언니가 쏘는 거야?”

“아니. 기아차가 쏘는 거야.”

“엥,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 차 아직 시판 전이거든. 시승용으로 나온 건데 내가 타고 다니는 것 자체가 광고지. 충전도 선불카드로 다 처리됐어.”

“차는 협찬이라 치고, 호텔 같은 건?”

“예니 데리고 간다고 했더니 마케팅 이사 얼굴에 웃음이 찰싹 붙던데? 호텔은 다 스위트룸, 펜션은 독채.”

“와, 언니도 대단하다. 나는 로사 언니만 기업 등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언니가 한 수 위네?”

“당연히 내가 한 수 위지. 아무래도 아이돌 씬이 클래식 쪽보다 훨씬 거친 세상이다 보니.”

“그러니까 갑자기 의심되는데? 언니, 혹시 내 명의로 나온 광고비까지 돌려쓰고 있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그거 빼돌려서 여행 경비로 퉁치는 거 같은데?”

지니가 웃으며 예니의 어깨를 툭 쳤다.

“와, 너도 머리 굴리는 게 장난 아닌데? 하긴 예니 하면 딱 떠오르는 게 불여우지?”

“음. 아무래도 수상해. 나중에 정산 한 번 해 보자.”

“그래 그래. 원래 수학여행 담당 선생님이 제일 마지막에 하는 일이 정산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뭔지 알아?”

“뭔데?”

“소지품 검사.”

“헉!”

“양심에 맡기기로 하고 자발적인 대답으로 대신하겠어. 금지 품목은 다음과 같다. 첼로, 악보, 비키니. 첼로야 어차피 EV3에 집어 넣지도 못할 거고, 악보는?”

“난 디누가 아니야. 악보 2주일쯤 안 봐도 아무 탈 없어. 사실 좀 지긋지긋하기도 해.”

“비키니는?”

“됐네요. 내가 클래식 판에서나 예쁘다 소리 좀 듣는 거지 케이팝 아이돌 옆에서 비키니 입고 몸매 자랑할 바보는 아니네요.”

“나도 비키니는 평생 가져 본적도 없어. 유노이아 시절에는 여름휴가도 멤버 다섯명이 브이로그 찍혀가며 같이 갔거든. 등에 핀마이크 리시버 달고 다니고, 다은 언니는 고패드까지 차고 다녔어. 이게 무슨 휴가냐고? 청순돌이라고 비키니는 커녕 수영복도 금지였어. 기껏 해수욕장 까지 가서 티셔츠랑 반바지 입고 모래 위만 뛰어다녔다니까. 심지어 워터파크 광고 찍을 때도 수영복 안 입고 물 바깥을 돌아다니며 찍었어.”

이렇게 수다를 떨던 지니는 차를 횡성 휴게소로 진입시켰다. 서울 출발한지 두 시간이 다 되어가고, 전기도 거의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충전 시간 40분을 때우기 위해 횡성 휴게소의 명물이라는 한우 더덕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고 번호표를 받아 테이블로 이동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본 지니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리, 둘 중 누구한테 먼저 싸인 해 달라는 사람 오는지 내기할까? 지는 사람이 오늘 밤 술값 내기.”

예니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불리해. 클래식하고 케이팝 팬덤 규모가 다른데?”

“대신 난 은퇴한지 7년이고, 넌 아직 현역이잖아?”

“언니, 말이 좋아 은퇴지 CF모델 계속 하고 있는 거 모를 줄 알고? 어제도 광화문 네거리 무슨 빌딩 옥상에 언니 얼굴 집채 만하게 걸려 있는 거 봤다. 무슨 건강보조 식품 같던데.”

그때였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커플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실례합니다. 두 분, 지니님, 예니님 맞으시죠?”

지니는 볼에 바람을 잔뜩 넣어 얼굴을 샤오롱바오처럼 부풀리더니, 장난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여자가 남자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거 봐, 내가 맞다 했잖아. 만 원 내놔.”

남자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휴대폰을 꺼냈다. 마인 앱으로 송금하는 화면이 슬쩍 보였다.

여자가 두 사람에게 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지니님, 예니님 자매라고 들었는데, 이 오빠가 아니라고 우기더라고요.”

“아, 네.”

지니는 웃음을 참으려 고개를 푹 숙였고, 예니는 이를 악 물고 어금니로 웃음을 눌렀다.

사인을 받은 커플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확인 하자마자, 두 사람은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와, 그 루머가 아직도 남아 있나 봐.”

“지금 우리 모습이 자매 같긴 해. 내가 언니 좀 닮았잖아?”

지니가 한숨을 섞어 고개를 저었다.

“넌 외동이라 리얼 자매를 몰라. 진짜 자매였으면 지금 여기서 각자 처묵처묵 하거나, 각자 휴대폰 화면에 코 박고 있었을걸?”

“그런가? 여튼 내기는 시작 하자마자 나가리네.”

“그러게.”

그러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커플이 다녀간 뒤, 주변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힐끔거리던 사람들이 확신으로 바뀐 눈빛을 한 채 고개를 틀어 두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현역 시절이었다면 곧바로 매니저와 경호원이 튀어나올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 지니는 현역 아이돌이 아니라 아이돌을 만드는 기획사 대표였다. 스스로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지니는 할 수 없이 아는 척하며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친절하게 눈인사를 건넸다.

그들의 시련은 휴게소에서 끝나지 않았다. 평창 허브랜드에서도, 이효석 문학관에서도, 월정사에서도, 그들이 밟는 발걸음마다 전형적인 ‘수학여행 코스’마다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몰려드는 시선들을 피하느라 캡 모자를 깊게 눌러쓰는 정석적인 방법을 활용하고, 요령껏 동선을 바꾸고, 재빠르게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결국 셀카 요청을 피할 수는 없었다. 모르는 사이에 몰카도 꽤 찍혔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지니를 보고 “어? 혹시.” 하고 다가왔고, 가까이 와서야 옆에 있는 예니까지 알아차리는 순서였다.

하지만 그 순서는 숙소에 도착하는 순간 완전히 뒤집혔다.

기아차에서 “숙소는 알펜시아 리조트 스위트로 제공됩니다”라고 했을 때, 지니는 그냥 ‘오, 꽤 고급지네. 기아 녀석들 돈 좀 쓰네?’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차가 알펜시아 리조트 진입로로 들어서자 예니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여, 여기가 숙소였어?”

지니가 눈을 깜빡였다.

“왜? 너무 좋은 데라서 수학여행 느낌이 안 살아?”

예니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고… 언니.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

“잠깐. 왜? 설마?”

“언니가 방금 생각한 그거. 그게 맞아. 오늘이 대관령 국제 음악제 개막일이야.”

지니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피가 가셨다.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었다. 클래식 팬들, 그것도 여름 휴가를 쪼개서 대관령까지 찾아오는 초정예 열성 클래식 팬들이 알펜시아 일대를 전부 점령하고 있을 그 한복판에 본의 아니게 예니를 던져 넣은 것이다.

지니가 핸들을 붙잡은 채 중얼거렸다.

“아, 미쳤네. 대기업이 그냥 돈 쓰는 게 아니었지. 역시 대기업은 절대 손해보는 장사 안 한다니까. 어쩔래, 다른데 가서 내돈 내고 숙소 잡을까?”

“아니. 내가 무대에 서지 않는 국제 음악제. 이것도 나름 재미있을 것 같아. 그냥 돌파 해.”

이미 소문이 돌았는지 체크인 카운터에 예니와 셀카를 찍으려는 클래식 팬들이 몰려들어 줄을 섰다. 지니 눈에는 케이팝 팬들과 비교하면 조용하고 질서있어 보였지만 대신 너무 당연하게 아티스트에게 모여들고 서슴없이 사인이나 사진을 요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 여기선 예니가 주인공인가? 그럼 나는 뒤로 빠져야지.’

지니는 예니가 팬들을 상대하는 동안 체크인을 마치고 캐리어들을 챙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클래식 팬이라고 아이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느새 지니 앞에도 긴 줄이 만들어졌다. 지니는 이렇게 무방비로 줄지어 선 팬들 앞에 노출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신선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쯤 되면 EV3가 호텔에 진입하는 장면부터 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체크인 과정, 팬들에게 둘러 싸이는 과정까지, 누군가 어디선가 다 찍고 있었을 것이 뻔했다. 아마 그 모든 장면이 기아차 마케팅 팀에게 고스란히 전송되었겠지.

아니나 다를까. 기아차 마케팅 담당 이사에게서 마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김예진 대표님.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 알펜시아에 묵는 사흘만 조금 협조 부탁드려요. 떠나시는 날, 차량 앞에서 팬들과 인사 나누는 장면 하나만 촬영하고 나면 저희는 바로 철수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진짜 오붓하게 자매 여행 즐기세요 :)’

“하, 이 인간이.”

지니는 핸드폰 화면을 예니에게 보여주며 웃었다. 뭔가 한 방 먹은 기분이긴 했지만, 미워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각자의 자리에서 다들 제 몫의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예니도 웃었고, 결국 두 사람은 로비가 떠나가라 깔깔댔다.

수학여행이니까. 중고등학생이 배우는 것과 서른을 앞둔 어른이 배우는 것은 달라야 하니까.

그렇다면 절대 손해 볼 수는 없었다.

“좋아. 모든 경비는 다 대준다고 했겠다?”

지니가 음흉한 웃음을 지었고, 예니는 바로 그 뜻을 알아챘다.

“그럼. 이것도 다 사회 공부야. 비용 한 번 엄청나게 튀겨 볼까?”

그리고 배운 데로 그들은 객실 미니바에 있는 맥주와 위스키를 남김 없이 비웠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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