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장편소설 트리플 콘체르토 10화 리허설3

by 권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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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이 지휘봉을 천천히 움직이자 오케스트라가 숨을 고르듯 부드럽고 서정적인 음을 길게 펼쳐냈다. 그 선율이 잦아드는 틈새로 첼로가 조용히 들어섰다. 마치 오케스트라가 오솔길을 내어 주자 첼로가 살그머니 그 길로 들어와서 조용히 노래하는 것 같았다.

세 악장 모두 합쳐 40분에 달하는 대곡이지만, 이 2악장은 고작 5분 남짓. 긴 1악장과 장대한 3악장 사이에 끼워진, 짧은 숨 고르기, 한 마디 노래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짧음 속에 응축된 정서는 오히려 더 깊고 선명했다.

1악장에서는 마치 각자의 기량을 겨루듯 팽팽하게 맞서던 세 악기가, 2악장에서는 서로의 따뜻한 진심을 확인하듯 부드럽게 맞물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첼로가 조심스레 마음을 열며 호소하면, 바이올린이 그 마음에 화답하듯 가늘게 속삭였고, 피아노가 그 사이를 포근하게 감싸며 대화를 완성해 갔다. 그 흐름은 마치 첼로의 목소리에 두 악기가 설득되고, 결국 함께 숨을 고르며 하나가 되는 듯했다.

객석의 유선은 그 연주가 마치 자신을 향해 세 아이들이 호소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다 문득 예니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유선은 깜짝 놀랐다.

‘저 아이, 아직도 눈을 감지 않아.’

이 작품 2악장에서 첼로는 듣기에 따라 호소 같기도 하고 기도 같기도 하고 회상 같기도 한 감정적으로 매우 깊은 연주를 해야 한다. 이 때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는다. 하지만 예니는 눈을 감지 않았다. 트리오 활동 처음부터 눈을 감지 않도록 훈련 받았기 때문이다.

트리오 데뷔를 준비하던 2011년, 유선은 세 소녀를 불러 단호하게 말했다.

“연주할 때 눈 감지 마. 특히 예니 너는 더더욱.”

당시 예니는 이유를 몰랐다. 유선도 자세한 설명은 피했다. 실은, 트리오 디누가 데뷔하면 이들을 관리하기로 계약한 클래식 에이전시 EMG(Eminent Musicians Group)의 이미지 컨설턴트로부터 들은 요청을 그대로 전한 것이었다.

멤버 구성과 퍼포먼스를 점검하며 트리오 디누의 데뷔 전략을 논의하던 자리에서, 이미지 컨설턴트가 입을 열었다.

“스텔라, 이 팀에는 두 경로가 있습니다. 이 중 어느 길을 갈지 선택하셔야 합니다. 착실한 성장, 아니면 빠른 성공. 이 아이들이 재능 있는 인재라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 처럼 가면, 10년 안에 세계 정상급 트리오가 될 수 있습니다. 장담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을 원하신다면, 그땐 좀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세계 무대에서 빠르게 주목받는 건 쉽지 않으니까요.”

유선이 짧게 물었다.

“그래서 전략이 있다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디누의 딸들이라는 출신 배경, 더구나 쌍둥이라는 점은 그 자체로 화제성이 충분하죠. 마리가 좀 아쉽긴 합니다. 마리는 훌륭한 피아니스트지만 사람들이 디누라고 하면 기억하는 화려하고 대담한 무대 감각이 부족합니다. 다행히 로사가 그 부분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죠.”

유선이 웃으며 말했다.

“로사는 어릴 때부터 워낙 나대던 아이라.”

컨설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 해도, 십대 소녀 세명으로 구성된 트리오에게 관객들이 기대하는 건 따로 있습니다. 클래식 청중이라도 결국.”

유선이 말을 끊고 들어왔다.

“예쁜 얼굴을 찾겠죠.”

“정확히 보셨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예니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순간 유선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세요.”

컨설턴트가 예니의 PR 포트폴리오를 펼쳤다.

“작은 얼굴, 커다란 눈동자, 위로 치켜 올라간 속눈썹, 매끈한 이마 위로 정갈하게 정리된 눈썹선까지. 정면에서 보면 클래식 연주자라기보다 K-POP 아이돌이 앉아 있는 것 같더군요. 실제로 저희 홍보팀도 사진 보고 깜짝 놀랐고 실물 보고 더 놀랐습니다. 활용해야 합니다. 충분히.”

유선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써 먹어야죠. 당연히.”

“그렇다면 마케팅의 중심을 따님들이 아니라 예니 쪽에 두셔도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성공은 트리오 디누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게 누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더라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예니는 저의 대녀니까 역시 가족이나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예니가 연주 중에 눈 감는 습관, 이건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유선이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예?”

클래식 무대에서 연주자가 서정적인 구간에 몰입할 때 눈을 감는 건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디누도 생전에 눈 감고 연주하는 시간이 많았다.

컨설턴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네, 왜 놀라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아노 트리오에서 첼로는 무대 정중앙에 앉습니다. 그리고 피아노처럼 측면이 아니라,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죠. 그런데 그 상태에서 눈을 감아버리면 가장 강력한 무기인 예니의 비주얼이 죽습니다. 예니는 속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 있고, 쌍꺼풀 라인이 얇은 속 쌍꺼풀 타입에 눈꼬리도 위로 올라간 구조입니다. 그러니 눈을 감는 순간 그 모든 강점이 사라지고, 얼굴 전체가 단조로워져요.”

유선은 살짝 입을 다물었다. 컨설턴트가 계속 밀어 붙였다.

“힐러리 한 보셨죠? 힐러리 한도 비슷한 타입의 마스크인데, 연주 내내 청중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시선을 주죠. 힐러리 한의 얼음공주 표정이 본인 성격일까요? 아닙니다. 이거 다 연출입니다. 힐러리 한이 훌륭한 연주자라는 거 누가 부정합니까? 하지만 힐러리 한이 오직 연주만으로 어린 나이에 이만큼 성공했을까요? 몰입감은 시선으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눈을 감지 않는다’는 건 시작일 뿐입니다. 그 밖에도 무대 위에서 연주자가 어떻게 앉고, 어떤 타이밍에 숨을 쉬고, 손끝을 어디까지 여유 있게 움직이는지 까지 모두 연습 대상입니다. 연주만 잘한다고 되는 시대가 아니니까요.”

유선은 그 말이 지나치다고 느끼면서도, 부정하지는 못했다. 클래식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시대는 ‘들리는 음악’이 아니라 ‘보이는 음악’의 시대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 흐름을 놓칠 마음도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트리오 디누 같은 소녀들로 이루어진 팀에게는 어린 나이에 글로벌 투어까지 염두에 둔 팀으로 빠르게 유명해 질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컴컴한 중년 남성 거장들로 이루어진 팀보다 상큼한 소녀들로 이루어진 팀이 오히려 더 많은 개런티를 받고 더 많은 공연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날 이후 예니는 매일같이 거울 앞에 앉았다. 눈동자 고정 훈련부터 시작해, 연주 중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 어떤 각도에서 눈빛이 가장 맑고 깊어 보이는지를 점검하는 작업이었다.

표정 훈련도 이어졌다. 너무 진지하면 인상이 굳고, 감정을 드러내는 얼굴은 자칫 과해 보였다. 예니는 감정을 담되 감추는 얼굴, 몰입하되 침착한 표정을 만들어야 했다. 팔꿈치와 손목의 각도, 첼로 활을 쥔 손의 움직임까지 모두 조율 대상이었다.

헤어와 메이크업 역시 연습의 일부였다. 속눈썹 컬링의 유지, 쌍꺼풀 라인을 살리는 아이라인, 조명 반사를 막는 이마의 파우더 선택까지. 예니는 클래식 연주자이자 아이돌로 길러지고 있었다.

어린 소녀에게는 쉽지 않은, 고되고 복잡한 훈련이었지만 그 시절 예니는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짙은 아이라인을 스스로 그리고, 인중 위를 하이라이팅하면서, 어떻게 알아냈는지 자신의 외모 약점이 얕은 쌍꺼풀과 작은 입술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이를 스스로 보완했다.

그때 예니는 자신의 예쁨에 흠뻑 도취되어 있었고, 무대 위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에 잔뜩 고무돼 있었다.

다른 클래식 연주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아이돌 같다”는 말도 예니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예니는 걸그룹 칸나의 비주얼 센터 루미를 좋아하는 딱 열 세 살 소녀였던 것이다. 그래서 도리어 “나도 아이돌이야.” 이러며 웃었다.

유선은 EMG와 전속 계약서에 사인할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멤버들이 모두 미성년이었기 때문에 로사와 마리를 대신하여 유선이, 예니를 대신하여 오석이 사인해야 했다.

계약서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유선은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일반적인 클래식 아티스트와 에이전시 간의 계약보다 훨씬 기획사의 권한이 강한, 어쩌면 K-POP 관행에 가까운 계약서였다.

유선의 손을 머뭇거리게 만든 조항은 명확했다.

세 명의 아티스트 각각이 아닌, ‘트리오 디누’라는 팀 단위로 계약된다는 항목이었다. 개인의 길이 아닌, 하나의 브랜드로 묶인다는 뜻이었다. 마치 아이돌 그룹처럼.

로사와 마리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리는 앙상블에서 빛을 내는 피아니스트였지만, 솔리스트로서 무대를 압도할 만한 기운은 부족했다. 로사는 마리와 예니의 안정적인 연주 사이에 들어가 개성 있는 악센트를 만들어내는 데 강점을 지녔지만, 혼자서는 연주자로 설 수 없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예니는 달랐다. 어린 나이에도 벌써 음악의 흐름을 읽었고, 무대에 생기를 불어넣었으며, 심지어 그 무대를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지 까지 본능처럼 알고 있었다. 게다가 화려한 비주얼도 갖췄다. 누가 봐도 미래의 스타였다.

지금은 그저 데뷔한다는 설렘에 들떠 있지만, 머지않아 예술적 자아가 생기고 자신의 세계가 분명해지면 분명 트리오를 벗어나 자신만의 무대를 원하게 될 것이다. 그때, 이 조항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른들을 얼마나 원망할까.

유선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조용히 읽었다.

‘모든 활동은 트리오 단위로 계약되며, 개별 활동은 사전 승인을 필요로 한다.’

‘예니한테 미안하네.’

하지만 그 미안함이 사인을 멈추게 하진 못했다. 이 계약은 예니 한 사람의 길을 막는 대신, 세 사람의 길을 열어주는 문이었다. 모두가 솔리스트가 될 수는 없다. 트리오로 살아남는 것, 그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무엇보다 예니는, 유선의 두 딸에게 길을 열어 줄 열쇠였다. ‘디누’라는 이름의 유산을 이어갈 존재.

또 하나 걸리는 건 수익 배분이었다. EMG가 가져가는 몫은 무려 40%. 일반적인 클래식 계약 관행보다 확연히 많은 수치였다.

그러나 이건 단순한 공연 대행 계약이 아니었다. 이미지 훈련, 스타일링, 섭외, 마케팅 전략까지 포함된 전방위 계약이었다. 사실상 기획사 주도의 프로젝트였다. 로사와 마리가 스무 살이 되기 전, 3년 안에 이 팀을 세계 정상의 위치로 올리려면 비상한 방법이 필요했고 이 회사는 해리슨 패럿 같은 레거시 기업에 비해 그런 비상한 방법에 능한 회사였다. 유선이 자신의 소속사이기도 한 해리슨 패럿을 두고 굳이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도 그 비상한 방법 때문이었다.

유선은 결국 손에 힘을 주어 사인했다. 예니에게 미안한 마음은 남았지만, 셋이 함께 뜨기 전엔 누구도 홀로 뜰 수 없었다. 클래식 업계의 관행을 잘 모르는 오석은 유선이 사인하는 걸 보고 원래 이런 것인 줄 알고 그대로 따라 사인했다.

그 순간 역시 유선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지만 곧, 그 선택을 정당화할 논리를 떠올렸다.

예니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해도, 정석대로라면 중고등학교 시절 콩쿠르를 휩쓸고, 미국이나 유럽의 명문 콘서바토리에 진학해서 공부 하고, 2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겨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트리오 디누’에 승선하면 10대 초반에 세계 투어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이다. 나중에, 20대 중반 정도 되어 솔리스트가 되고 싶다면, 이미 스타가 된 상태에서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예상대로 시간이 지나고 성장하면서 예니는 달라졌다. 처음 3년은 아이돌처럼 소비되는 상황을 즐겼지만, 2013년 이후 예술적 자아가 성장하면서 외모 마케팅에 점차 불편함을 느끼는 티가 드러났다.

트리오의 위상이 견고해지고 더 이상 비주얼로 소비될 필요가 없게 된 이후, 예니는 때때로 화보 촬영을 거부하거나 메이크업을 하지 않는 식으로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트리오 활동을 반년 쉬고, 아예 K-POP 아이돌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유선은 예니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서늘함을 느꼈다.

“클래식이라는 탈을 쓰고 나를 아이돌 취급할 거면, 차라리 진짜 아이돌이 되어줄게.”

그러나 6개월 뒤 예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왔고, 런던 RCM(Royal College of Music)의 전문 연주자 과정, ‘아티스트 디플로마’에 등록했다.

유선은 그 순간, 예니가 이제 솔리스트로 자신의 길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시점이, 7년 단위 계약의 두 번째 주기가 끝나는 2024년이 될 것이라는 것도. 그래서 유선은 2024년 12월의 이 트리플 콘체르토 연주가 트리오 디누의 끝이 될 것임을 멤버들이 비밀로 하고 있건 말건 알고 있었다. 무려 7년 전부터.

‘훈련이 독하긴 했구나.’

유선은 무대 위에서 연주 중인 예니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리아처럼 서정적인 멜로디를 연주하면서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청중을 응시하는 예니. 아이돌 취급을 거부했건 말건, 그 눈을 감지 않는 습관은 14년이 지난 지금도 단 한 번 흐트러진 적 없었다.

유선은 무대 위의 세 사람을 천천히 다시 바라보았다. 더 이상 소녀가 아닌, 14년의 글로벌 커리어를 가진 베테랑 연주자들. 그러나 나이는 갓 서른에 불과한 로사와 마리. 심지어 스물 일곱인 예니. 정상적인 경로였다면 이제 콘서바토리에서 나와 이런 저런 콩쿠르 성적을 들고 첫 투어를 꿈꾸고 있을 나이였다.

이게 정말 ‘성공’일까? 저 아이들에게 잘된 일이긴 했던 것일까?

예니와 마주보며 서정적인 아리아를 함께 연주하는 로사의 모습이 보였다. 유선이 오랜 진통 끝에 세상에 내 보낸 큰 딸. 리허설에서부터 벌써 저렇게 요란한 고급 착장으로 나타났으니 콘서트때는 오뜨꾸뛰르 드레스라도 입고 나올 판이다. 듣자 하니 서른 번째 생일 파티에 1억 이상을 썼다고 했다.

너무 이른 성공의 부작용이다. 로사가 코벤트 가든의 부감독이자 케임브리지 고음악 연구소 교수인 유선의 연봉보다 많은 돈을 벌기 시작한 게 벌써 스물 셋. 지금은 소득이 유선의 두배 가까이 된다. 하지만 저 씀씀이로 감당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유선의 마음은 트리오 디누가 처음 데뷔한 2010년 12월을 향해 갔다. 디누 7주기 추모 음악회, 장소는 예술의전당 음악당 콘서트 홀이었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열렸지만, 이날만큼은 모든 것이 달랐다. 바로 디누의 딸들이 처음 무대에 서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1부는 김소영의 피아노 독주였다. 브람스와 슈베르트를 짜임새 있게, 힘 있게 풀어냈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은 2부를 향하고 있었다. 2부. 드디어 디누의 피와 살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트리오 디누’, 디누의 쌍둥이 딸과 그 친구의 딸로 이루어진 세 아이의 첫 공식 무대가 시작되었다.

한 달 전부터 언론은 들썩였다.

“디누의 쌍둥이 딸, 천재 음악가의 유전자는 재현될 것인가?” 이런 식의 기사들로 화제는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

프로그램은 나이에 걸맞게 단정했다. 모차르트 K.496 트리오와 베토벤 Op.1-1트리오.

어린 연주자들이 감당하긴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리도 아닌 절묘한 선곡이었다.

이들이 무대에 나타나자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로사였다. 16세지만 이미 성숙한 체구, 170cm가 넘는 키, 루비 레드 오프숄더 드레스.

쇄골 아래로 흘러내린 실크 새틴, 종아리 중간부터 부드럽게 퍼지는 머메이드 라인. 마치 런웨이에 선 모델처럼 관능적이었다.

마리는 로사와 닮았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클래식한 블랙 벨벳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단정히 묶어, 하필 이름까지 같은 마리인 젊은 퀴리 부인을 보는 것 같았다.

예니는 EMG가 열심히 꾸민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얀 튤 원피스를 입었고 레이스와 여러 겹의 스커트가 조명 아래에서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긴 머리는 반 묶음으로 내려, 파스텔 핑크 리본을 달았는데, 작은 얼굴과 대비되어 마치 인형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건 뭐, 완전 요정이네.”

그때 유선의 입에서 이런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모습은 유선이 가장 떠올리기 싫어하는 인물, 아녜스의 소녀 시절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긴장한 티가 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10개월간의 강훈련이 효과를 드러냈다. 무대 위에서 서로의 호흡을 읽고, 관객을 의식하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연주가 끝나자 폭발적인 박수가 쏟아졌고,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를 쏟아냈다.

“디누의 유전자, 천상의 트리오로 돌아오다.”

“디누가 천사 셋을 남겨주었다.”

호의적인 기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클래식에도 이제 아이돌?”

“트리오인가, 걸그룹인가?”

이런 식의 비판적인 기사도 간혹 있었다.

반응이 확인되자 EMG는 곧바로 본격적인 마케팅에 들어갔다. 일주일 만에 2011년은 물론 2012년 투어 일정까지 꽉 채워졌다.

이렇게 일정이 빨리 꽉 찬 까닭은 데뷔 첫 두 해의 공연 횟수를 연 20회로 적게 잡아 두었기 때문이다. 예니가 2012년까지는 중학생 신분이었고, 또 2013년 까지는 강도 높은 레슨과 학업이 병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니의 방학 기간을 중심으로 공연을 배치하고, 나머지 기간은 레퍼토리 확장을 위한 집중 레슨으로 채웠다.

예니가 고등학생이 되는 2013년에는 뮌헨 국제 실내악 콩쿠르를 준비하느라 콩쿠르 지정곡 중심으로 연간 30회의 공연 계획이 세워졌다. 그리고 로사와 마리가 성인이 되는 2014년 이후부터는 연 40회 이상의 공연이 가능한 타임라인이 그려졌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연 40회 정도로는 수요의 절반도 소화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들이 2013년 뮌헨 실내악 콩쿠르의 우승 컵을 거머쥔 이후에는 프리미엄까지 붙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EMG는 당연하다는 듯이 티켓 값을 올렸고,그만큼 트리오 멤버들의 개런티도 함께 올라갔다.

2011년에는 세금과 에이전시 몫을 제외하고도 1회 공연당 멤버 각자 1,000달러, 2012년에는 2,000달러, 2014년부터는 5,000달러를 받았다.

여기에 광고와 협찬이 쏟아지면서 로사와 마리가 스무 살, 예니가 겨우 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이미 연 소득 수억원대 고소득자 반열에 올라섰다.

문제는 어린 나이에 소득이 늘어나면 씀씀이도 함께 커진다는 점이었다. 특히 로사가 그랬다. 버는 족족 명품 쇼핑, 화려한 파티, 난잡한 연애에 탕진해 버렸다. 2013년 이후 법적으로 성년이 되어버리자 유선이 간섭할 방법도 없어졌다. 그나마 약물에 빠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길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감독 부재 상황이었다. 유선은 2009년부터 로사와 마리를 런던 집에서 내보냈다. 데뷔 전에는 서울에서 트리오 훈련을 했고, 데뷔 후에는 공연 일정이 빡빡해지면서 5일 간격으로 숙소가 바뀌는 생활을 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사실상 어른의 감독을 완전히 벗어난 채

어린 나이, 막대한 소득,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가장 위험한 조합 속에서 지내게 되었다.

예니의 아버지 오석이 교사답게 가장 먼저 이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했다.

2013년까지는 방학 중심으로 투어가 잡혀 있어 일정이 비교적 단순했지만, 2014년에 들어서면서 사실상 ‘연중 투어 체제’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딸의 얼굴을 보는 날보다 못 보는 날이 훨씬 많아졌다. 오석에게는 이것 만으로도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트리오 멤버 중 가장 언니인 로사가 문제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일탈 성향이 강했고, 충동적이며, 무대 밖에서는 이미 성년으로서 막대한 소득을 마음껏 소비하는 중이었다.

그 로사가 예니의 옆에 붙어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셋 중 예니 혼자 미성년이라는 사실이 오석의 불안을 부채질했다.

결국 오석은 우려를 EMG에 조심스럽게 전달했다. 며칠 뒤 돌아온 담당 이사의 메시지는 정중하고 조리 있었다.

“트리오 디누 투어에는 항상 매니저와 가디언이 동행합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교사 자격증을 가진 분들로 모셨으며, 미성년 보호와 샤프론 역할을 겸하고 있습니다. 또 투어 가는 도시마다 현지 음악 코치, 루시어 분들과 접촉하기 때문에 어른의 눈이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오석은 이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안심하는 듯했지만,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솔직하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언론에 로사 사생활이 저렇게 자주 보도되잖아요? 얼마나 화려한 파티를 다니는지, 누굴 만나는지. 이게 감독이 정말 되고 있는 겁니까?”

그러자 돌아온 답변은 더 직설적이었다.

“로사와 마리는 법적으로 성년입니다. 샤프론의 감독 대상이 아닙니다. 물론 예니는 보호 대상으로 감독 아래 있습니다. 하지만 예니는 워낙 얌전하고 착실한 아이라 특별히 감독이 필요한 상황도 거의 없습니다.”

논리적으로는 타당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답이 되지 않았다. 결국 찜찜함을 털어내지 못한 오석은 유선에게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무리 법적으로 성인이라지만, 케이팝 아이돌만 봐도 합숙에 외출 통제까지 철저히 한다고 하던데? 여긴 여자애들을 너무 멋대로 풀어놓는 거 아니야? 그 어린 나이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게 하면서 이렇게 자유롭게 놔둬도 되는 건가?”

유선은 잠시 침묵한 뒤 담담하게 말했다.

“그건 그냥 한국 문화가 유난한 거 아닐까? 내 보기엔 오히려 케이팝 쪽이 성인 멤버들까지 과도하게 통제하는 것 같아. 프로 배구나 농구 선수들도 남자는 출퇴근 여자만 숙소 생활 한다며?”

오석은 그 말을 일부 받아들였지만, 그야말로 일부였다.

“그 말도 일리가 있긴 한데, 내 생각에는 클래식 쪽도 어린 연주자들을 너무 쉽게 ‘어른 취급’하는 느낌이야.”

유선은 오석의 말에 속으로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어린 딸들에게 닥쳐올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편한 마음이 든 유선은 옛 기억을 머리에서 밀어내고 2024년으로 돌아왔다. 무대 위의 딸들, 서른 살이 된 딸들. 더 이상 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여성이 된 아이들을 보았다.

로사를 보자 갑자기 안타까움과 걱정이 밀려왔다. 트리오의 해산이 임박했음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트리오가 해산하고, 그 동안 ‘따박따박’ 들어오던 개런티가 끊긴다면 과연 로사는 지금의 씀씀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공연 예술가에게 ‘따박따박’이라는 말은 어색할 수 있지만, 트리오 디누의 공연은 2014년 이후부터 사실상 반복이나 다름없었기에 ‘따박따박’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다.

10년간 레퍼토리가 거의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당대 작곡가의 초연곡은 커녕 드뷔시, 라벨, 쇼스타코비치 같은 20세기 곡도 거의 연주하지 않았다.

베토벤 ‘유령’, ‘대공’, 드보르작 ‘둠키’, 차이코프스키 작품 50, 슈베르트 1번, 2번 같이 이미 몸에 익은 곡들만 무한 반복하며 세계를 돌았다. 연습도 리허설도 없이 바로 무대에 오를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20대 연주자들로 이루어진 트리오가 무려 20개 정도의 작품을 레파토리로 보유한 경우는 이들 외에는 찾기 어려웠다. 더구나 트리오 디누는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그 레파토리들을 완성했다. 문제는 이후 10년간 레파토리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예니가 지속적으로 예술적 확장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자, 2017년부터 라흐마니노프의 슬픔의 트리오가 추가되었고, 2020년 이후에는 아예 1부는 마리와 예니의 듀오, 2부에서만 트리오가 등장하는 특이한 구성으로 공연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어차피 개런티는 같으니, ‘조금이라도 덜 연주하려는 로사’와 ‘솔리스트로 독립하려는 예니’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얄팍한 윈윈인 셈이었다. 그만큼 로사의 마음은 점점 음악과 멀어지고 있었다. 그럼 로사는 대체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이제 겨우 서른인데?

유선은 마리에 대해서는 별 걱정이 없었다. 마리는 트리오가 해산 하더라도 마리는 해낼 것이다. 트리오 시절 같은 고소득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탁월한 앙상블 능력을 바탕으로 다른 실내악 팀에 합류하거나 반주자로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마리의 검소한 성품을 생각하면, 트리오 디누 시절에 벌어들인 돈도 대부분 차곡차곡 저축해 두었을 것이다. 그 이자만으로도 생활은 문제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예니는?

겉보기에는 로사보다 훨씬 절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사치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로사처럼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을 뿐이었다. ‘소박해 보이는 사치’, 이른바 꾸안꾸 스타일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프라다는 금방 알아 봐도 더 로우는 알아보지 못하니까. 유선은 그것이 지니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예니는 로사처럼 번 돈을 그대로 흘려 보내는 타입은 아니었다. 적어도 어느 정도는 자산의 흐름을 알고 있었고, 전체 틀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규모 있게 관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무엇보다 예니는 트리오가 사라져도 계속 ‘스타’로 남을 가능성이 컸다. 본인은 그런 말 듣기 싫다며 손사래를 치겠지만, 예니의 외모는 클래식 시장에서 적어도 30대 중반까지는 충분히 소비될 수 있는 자원이었다.

그리고 유선은 예니가 그것을 아주,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더욱 얄미웠다.

“외모 마케팅이 싫다”고 말하는 건 단지 겉 포장이고, 속마음은 “내 외모를 내가 선택한 맥락에서 쓰고 싶다.”는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트리오 디누라는 브랜드 속에서 소비되는 외모가 아니라, 예니 개인의 자원으로 쓰고 싶은 욕망.

‘여우 같으니라고. 외모로 평가 받는게 싫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얼마 전 엘르 화보집은 잘만 찍더라.’

유선은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순간 스스로에게 불쾌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왜 굴러온 돌 예니의 미래가 피땀을 쏟아 키운 자기 딸들보다 더 밝아 보인단 말인가.

이런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순간, 유선은 문득 깨달았다.

‘아, 내가 ‘엄마’구나.’

아니, 하필 이런 순간에 이런 방식으로 엄마라는 사실을 자각하다니. 그리고 곧바로 따라온 깨달음은 자신이 딸들과의 관계를 망쳐버렸다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마리는 엄마를 두려워하고 로사는 엄마를 증오했다.

과연 이 아이들에게 인생의 절반을 투자한 것이 올바른 일이었을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무겁게 고여오는 느낌에 유선은 당장 밖으로 뛰어나가 벽돌이라도 두드려 깨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는 동안 서정적인 2악장은 끝을 향해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이 곡의 2악장과 3악장은 끊김 없이 연결된다. 전환부에서 바이올린과 첼로가 거칠게 트레몰로를 주고받으면, 온 무대의 공기가 한순간에 바뀐다.

예니는 그 트레몰로를 준비하기 위해 가볍게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자신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는 유선과 눈이 마주쳤다.

6월 이전 같았으면 예니는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치며 마음속 반감을 그대로 눈빛에 실어 돌려보냈을 것이다.

태어나기도 전에 정해진 악기, 태어나기도 전에 정해진 팀, 태어나기도 전에 짊어진 이름 ‘디누’. 27년 인생의 절반 이상을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설계된 궤도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철이 들고 난 뒤로, 예니가 어른들에게 느낀 가장 깊은 감정은 늘 ‘분노’였다. 아빠와 대모가 공모해서 자기 인생을 멋대로 조작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

하지만 6월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로사, 마리의 생일 파티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니의 스물 일곱번째 생일 파티가 있었다. 모처럼 집에서 부모와 함께 생일 축하를 받았다.

거기에 열쇠가 있었다. 고작 스물일곱 살. 다른 사람들 같으면 ‘애송이’ 아닌가? 이제 시작할 나이 아닌가? 살아온 삶보다 앞으로 살아갈 삶이 훨씬 넓고 크다.

클래식 세계가 얼마나 인맥과 계보 중심인지, 그야말로 ‘피’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계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예니에게 ‘교사와 약사의 딸’로 태어난 자신이 디누 가문에 승선한 것은 저주이자 축복, 그리고 무엇보다 힘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 이루지 못할 자리를, 자신은 너무 일찍 얻었다.

그래서 지금은 유선에게도, 수민에게도 예전처럼 반감을 품지 않는다. 습관처럼 차갑고 반항적인 태도가 튀어나올 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오히려 고마움이 있었다. 어쨌든 자신을 가르치고 붙들고 길을 열어 준 어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완전히 용서하기 어려웠다.

태어나기도 전에, 디누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아버지가 농담처럼 설계해버린 딸의 인생. 그 무심함이 예니의 청춘을 몽땅 빼앗은 것만 같았다.

이성적으로는 아버지와 화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두었지만 감정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다만, 이 정도 결론까지라도 올 수 있었던 건 여행 덕분이었다. 지니가 만들어준 그 ‘수학여행’, 그리고 그 여행에서 이루어진 어설프지만 의미 있는 부녀상봉.

로사와 마리가 두 달 간의 조국 순례 여행을 떠났을 때, 예니는 지니와 함께 평생 한번도 가 본 적 없었던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클래식 연주자로, 케이팝 아이돌로 10대 시절을 보내며 학창시절이 삭제되었던 두 사람의 동병상련이 만들어 낸 늦깎이 수학여행이었다. 그 여행 도중, 지니는 오석을 경주의 펜션으로 불러 하루 밤을 새워가며 예니와 이야기하는 시간을 주선했다. 밤새 많은 말을 하고 많은 감정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마음속 앙금은 아직도 다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이성은 어느정도 상황의 개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꼭 부녀상봉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그 수학여행은 그 자체로 정말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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