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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는 지휘봉을 들고 스물여덟 명의 동료들과 눈빛을 한 번씩 맞춰 보았다. 10대들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지만 하나같이 진지하고 학구적인 눈빛으로 정우를 바라보았다.
“극장지배인 서곡부터 들어갑니다.”
정우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손짓으로 인트로를 지시했다. 안타깝게도 머릿속의 소리와 실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낸 소리가 달랐다. 정우는 바로 지휘봉을 내렸다.
“다시 합시다. 현악기가 살지 않으면 이 부분이 그냥 빵빠레처럼 들리거든요. 이렇게 해볼까요? 편법을 써서 바이올린 파트는 내가 시작하기 직전 왼손으로 튀길 때 바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관악 파트는 내 오른손이 비트 넣을 때 들어가고요. 자, 다시 가봅시다.”
정우가 다시 지휘봉을 들고 연주를 재개하자 예상대로 그럴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원들은 이미 정우의 이런 꼼수에 익숙해져 있었다. 정우에게는 어떤 원칙도 없었다. 그렇다고 흥에 겨워 멋대로 달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고도의 정확성과 원전에의 충실함을 요구했다. 다만 그 기준이 연주자가 아니라 청중의 귀라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정우는 인간의 귀가 정밀하지 않다는 것을 잘 이용했다. 그래서 때때로 악보대로라면 틀리게 하는 연주, 아주 미세한 엇박자 등을 요구하였는데, 그렇게 하면 놀랍게도 객석에서 듣는 사람 귀에는 아주 훌륭하고 정확한 연주로 들렸다.
이런 식으로 극장지배인 서곡이 끝나자, 정우는 악보를 맹렬하게 휙 집어 던지고 다음 악보를 올려놓았다.
“자. 수고했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저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바로 들어갑시다.”
정우가 다시 지휘봉을 치켜 올린 뒤 부드러운 업비트를 쳤다. 제1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부드러운 도입부를 연주하고, 거기에 호른이 부드러운 베이스를 깔았다. 그 두터운 바탕을 딛고 소박하고 깔끔한 제1주제가 들어섰다. 이러한 구성은 거의 18세기 고전 협주곡을 연상시켰다.
정우는 20세기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후기 낭만파 음악조차 그 과장된 표현 때문에 심기를 뒤틀리게 했다. 그에게 바그너의 화성법은 음악을 파괴하는 일대의 혼돈이었다. 하물며 쇤베르크 화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정우는 르네상스를 동경하는 화가처럼 18세기를 동경했고 18세기 풍의 곡을 즐겨 작곡했다. 19세기 뒷부분을 살았던 차이코프스키가 자신의 오페라 ‘스페이드 퀸’의 2막을 18세기 풍으로 작곡했던 것처럼, 20세기의 끝물을 살고 있는 정우도 때때로 버르토크를 연상시키는 스타일과 18세기 양식 사이를 오갔다. 그러나 아직 작곡가로서는 미성숙한 역량을 반영하듯 협주곡에는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그림자가 반반씩 섞여 있었고, 정우 자신의 숨결은 그리 느껴지지 않았다.
이윽고 관현악의 도입부가 끝나고 솔로 바이올린의 도입부가 다가왔다.
나경이 한숨을 크게 내쉰 뒤 활을 들었다. 조금 어려운 부분이지만 집중적으로 연습했기 때문에 무사히 처리했다. 그리고는 간단한 주제 제시로 넘어가기 때문에 잠시 마음의 평정을 찾을 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제1주제가 발전되기 시작하면서 점점 어려워졌다. 5도와 4도 간격으로 펼침 화음들이 쏟아졌다. 손가락과 팔이 점점 어지러웠다. 집에서 개인 연습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연주할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감이 덮치기 시작했다.
“그만!”
정우가 보면대를 지휘봉으로 두드렸다. 갑자기 연주가 멈추며 어색한 정적이 불안한 모습으로 강당을 채웠다.
“나경아!”
정우가 심각한 얼굴로 나경을 불렀다.
“으. 응?”
나경이 고개를 움츠렸다.
“너 지금 갈수록 빨라지고 있어. 1악장은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야. 마 논 트로포! 자꾸 빨라지려는 경향이 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마 논 트로포를 붙인 거라고. 그러니까 내 지휘를 보면서 하란 말이야.”
“하지만….”
나경이 약간 애원하는 눈빛으로 뭐라고 말하려 하였으나, 정우는 냉정하게 말을 끊었다.
“나경아. 악보를 읽으려 하지 말고, 그 속에서 느끼는 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넌 제1주제를 들으면 뭐가 생각나니?”
“너랑 서로 바라보는 것.”
“좋아. 2주제는?”
“너랑 장난치며 노는 것.”
정우가 손뼉을 탁 쳤다.
“바로 그거야. 중간에 미스 터치 나는 것, 가다가 활 길 엉키는 것, 다 잊어버려. 그딴 거 신경 쓰지 말고, 너의 그 느낌만 꾹 잡고 밀어붙여. 그럼, 손가락은 저절로 따라가게 되어 있어. 날 믿어. 내가 작곡할 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썼단 말이야.”
“알았어. 다시 해볼게.”
“좋아. 자! 다시 들어갑시다. 솔로 도입부 한 소절 앞부터.”
정우가 다시 지휘봉을 올렸다. 그리고 솔로 도입 부분이 다가오자,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경의 눈을 맞추었다. 나경도 정우의 얼굴을 바라보며 바이올린을 들었다. 아까와 달리 활도, 악보도, 지판도 보지 않고 정우의 눈만 바라보며 연주했다. 느낌이 좋았다. 평화롭고 편안했다. 1주제의 아르페지오 전개도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발랄한 2주제로 넘어갔다. 나경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경의 얼굴이 페루지노 그림 속의 천사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 상태로 결코 쉽다고 할 수 없는 2주제를 연주해냈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게 연주가 끝났다.
연주를 마치자마자 나경이 펄펄 뛰며 비명을 질렀다.
“이게 웬일이니? 마술 같아. 어렵던 곡이 갑자기 쉬워졌어!”
정우가 말없이 자신의 왼손 집게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거기에는 며칠 전 나경이 선물한 은제 로사리오 반지가 끼어 있었다. 조명을 받아 은빛이 찬란하게 반짝였다. 정우가 자신의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반지를 가리켰다.
나경의 작은 심장이 2000rpm으로 달렸다.
“지휘자. 다음 곡 안 해?”
보다 못한 지네트가 한 마디 던졌다.
“아, 참. 다음 곡 연습합시다. 모차르트 d단조 피아노 협주곡입니다.”
정우는 보면대를 치우고 몇몇 남학생들의 도움으로 피아노를 밀고 와서 그 자리에 놓고 앉았다.
“저번에는 그냥 오케스트라만 연습했는데, 오늘은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지휘할 겁니다. 지휘봉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악장님께서 수고 많이 해주실 겁니다.”
정우가 지네트와 눈을 맞추었다. 지네트는 가슴속에서 작은 흥분의 진동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디누의 모차르트. 나경은 공유할 수 없는 영역을 여행하게 되는 짜릿함. 디누가 다시 일어서는 순간이다.
단원들도 모두 잔뜩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비록 1년간 퇴색하긴 했지만, 아직도 ‘미우&디누’ 듀오의 이름이 지닌 호소력은 살아 있었다. 취리히 콩쿠르의 경이로운 기록도, ‘아녜스&디누’ 듀오의 기억도. 그 디누가 1년간의 침묵을 깨고 다시 건반에 손을 얹는 것이다. 자신이 결국 잊혀지고 말 왕년의 신동인지 앞날을 예고하는 숨은 천재인지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 시작합시다.”
정우가 피아노 앞에 앉은 채 손을 흔들며 지휘를 시작했다. 멜로디가 아닌 독특한 베이스 제시로 암울한 전주가 시작되었다. 과연 이런 동기를 가지고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괴이한, 게다가 18세기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엽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전주를 타고 연속되는 반음계의 상승이 불길한 징조를 던졌다.
불길함이 암시처럼 기어오르다가 마침내 비극적인 투티로 폭발했다. 잠시 숨을 돌리려는 듯 애수 어린 모티브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마치 피아노의 등장을 위해 길을 비켜주듯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며 사그라졌다.
정우는 흔들던 팔을 멈추고 그 움직임을 어깨와 지네트에게 던지는 눈빛으로 대신하며 서서히 건반에 손을 올렸다. 정우는 대뜸 피아노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흐느낌은 격렬한 턴과 아르페지오가 연속되면서 점점 고양되어 나가다 마침내 절규가 되었다.
지네트는 취리히 콩쿠르에서 모차르트 특별상을 받았다는 디누의 그 유명한 모차르트 연주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디누는 계속 지네트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전달하였고, 지네트는 그것을 몸짓과 활질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였다. 그것은 협연이 아니라 차라리 새로 결성된 ‘지네트&디누’ 듀오가 선보이는 이중주의 확장판에 가까웠다.
정우의 독특한 모차르트 해석이 점점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차르트 피아노 곡의 연주는 울림을 최대한 억제한 깔끔한 연주, 명징하다 못해 차갑게 느껴지기까지 한 예리한 타건이 정석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정우는 그 정석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 아고직을 이용하여 표현을 증폭시키는 정도는 예사였고, 쇼팽 연주에서나 볼 수 있는 대담한 템포 루바토를 구사하기도 했고, 리스트 연주에서나 기대함직한 강렬한 타건을 거침없이 구사하기도 했다. 심지어 모차르트 연주에서 금기시되고 있는 왼손의 거칠고 강한 타건과 페달링마저 난사하였다.
정우가 믿고 있는 모차르트 연주의 정석은 모차르트가 직접 말한 단 한마디, “피아노로 노래할 줄 알아야 한다”라는 것뿐이었다. 그 말에 따라 정우는 모차르트의 악보를 소재 삼아 자신의 노래를 불렀다. 지네트는 그 노래에 가끔씩 끼어들어 이중창을 하고, 다시 독주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슬그머니 빠져나가곤 했다.
이미 악보를 모조리 외워버린 듯, 정우는 눈을 감고 온 얼굴을 땀으로 덮은 채 건반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마침내 카덴차 부분에 도달했다. 정우는 이 곡을 연주할 때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베토벤 버전의 카덴차를 삭제하고 자신이 직접 만든 카덴차를 집어 넣었다.
끝없이 펼쳐질 것 같은 스케일과 반음씩 상승하고 하강하는 머리 음들의 행렬에 대롱대롱 매달린 분산 화음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엄청난 연습으로 단련된 정우의 손은 폭포 같은 소리에도 불구하고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손은 가만있는데 피아노가 혼자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객석 한켠에서 이 모습을 보고 듣는 나경의 마음이 어두워졌다. 정우는 음악을 너무 사랑한다. 정우에게 음악 아닌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나경을 포함해서? 과연 음악만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만약에 음악과 나경,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정우는 무엇을 선택할까? 당연히 음악이 아닐까?
나경은 은근히 밀려오는 두려움에 고개가 푹 꺾였다. 그러다가 그만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음악을 질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마치 음악이 연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경은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무슨 상관이람? 정우는 음악을 사랑하고, 나는 음악가를 사랑하면 되는 건데?’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니 다시 촉촉히 젖은 눈빛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정우를 바라볼 수 있었다. 동생이 말한 대로 손바닥으로 귀를 막고 피아노 소리 대신 피아노를 치는 정우의 모습을 감상해 보기도 했다. 유선의 말이 맞았다. 피아노 치는 모습도 예술이었다.
어느덧 곡은 애절한 2악장을 지나 정열적인 3악장으로 달렸다. 정우는 거의 무아지경에 빠졌다. 지네트에게, 단원들에게 그 모습은 절대 10대 소년으로 보이지 않았다. 에셴바흐, 굴다 같은 거장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이 K.466 d단조 협주곡만큼은 이 아이보다 훌륭하게 연주할 것 같지 않았다.
마침내 정우의 즉흥적인 카덴차를 지나 곡은 영웅적인 코다를 향해 달렸다. 모든 어두움과 불길함을 한꺼번에 걷어버리고 희망과 즐거움이 속삭임처럼 솟아났다. 정우는 피아노를 간지럽히며 어루만졌다. 봄꽃처럼, 첫눈처럼 간지러운 피아노 소리가 캄캄한 세상에 빛을 던졌다. 그리고 마침내 찬란한 코다와 함께 모든 연주가 끝났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또 잠시의 침묵. 침묵에 이은 침묵. 그렇게 한참을 멍한 상태로 있던 단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중에는 환호성을 치는 이, 박수를 치는 이,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이들까지 있었다. 지네트도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런 연주를 우리끼리만 듣다니! 이건 범죄야! 이런 연주는 음반에 담아서 온 세계로 돌려야 해! 넌 온 세계 인류에게 이 복음을 들려줘야 해! 난 인류를 위해 기필코 네게 날개를 달아줄 거야. 그리고 그 다음에는 네 날개를 타고 내가 날아갈 거야!”
지네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후, 후우!”
하지만 정우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단원들에게 간신히 한 마디 던졌다.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 합시다.”
그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정우는 마치 전기톱에 난자당한 고목나무처럼 건반 위로 허물어져 버렸다.
쿵! 건반들이 마치 호러 영화 배경음악 같은 요란하고 괴이한 불협화음으로 울렸다.
“꺄악.”
지네트의 비명이 강한 파동을 일으켰다. 나경이 무대 바닥을 쿵쿵 울리며 달려왔다.
“얘 또 이러네. 야, 일어나. 일어나.”
몇 년 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나경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정우를 편하게 눕힌 뒤 다리 밑에 발판을 깔아 머리보다 높게 만들고, 옷의 단추를 절반 정도 풀어서 편안하게 호흡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우는 여전히 축 늘어진 풀빵처럼 움직일 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나경이 정우의 승모근을 세게 잡고 사정없이 비틀었다.
“푸우!”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며 정우가 맥 빠진 눈을 떴다.
“어? 내가 왜 여기 누워있냐?”
정우가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경이 펄펄 뛰었다.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기나 해? 이 원수야!”
여전히 어리둥절한 정우의 눈에 비스듬히 서 있는 지네트의 모습이 보였다. 희미한 조명을 받아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하게 반짝였다. 그 모습은 마치 뱀파이어를 연상시켰다.
정우는 더 이상 지네트를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