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를 뒤지다 발견한 글입니다. 언제 썼는지도 모르겠고, 어디에 무엇 때문에 쓴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읽어보니 좋아서, 여기에 기록삼아 남겨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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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예술은 다르다.
물론 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감상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또 교육의 방법이나 소재로 예술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교육과 예술 사이에는 활발한 상호작용과 융합이 일어나고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예술은 예술이고 교육은 교육이다. 즉 이 둘의 목표는 상호 독립적이다.
예술의 목표는 심미적 체험이며, 교육의 목표는 어떤 능력의 향상 혹은바람직한 방향으로의 행동 변화다.
따라서 예술적으로 훌륭한 작품과 교육적으로 훌륭한 작품은 다르다. 예컨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더라도, 그것을 중·고등학생에게 예술교육용으로 사용할 교사는 없다. 여기에 대해 폐쇄적이다, 예술에 적대적이다 비난해 봐야 소용이 없다. 아무리 심미적으로 큰 감동을 준 예술작품이나 예술 활동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능력의 향상이나 행동의 변화에 영향을 주지 않거나 심지어 악영향이 예상된다면 비교육적이다.
따라서 이른바 “문화예술교육”이라고 말할 경우에는 문화예술의 교육인지 아니면 교육에서의 문화예술인지 분명해야 한다.
1) 전자라면 이는 어떤 문화예술 분야의 소양을 익혀서 그 분야의 전문가나 전문가 수준의 능력을 갖추는 것이 목적이다.
2) 후자라면 그 분야의 기능이 아니라 그것을 익히고 누리는 과정에서 어떤 다른 능력, 태도, 행동의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고 비슷한 훈련을 하는 등산학교와 스카우트 캠프를 예로 들어 볼 수 있다. 등산학교는 실제로 등반, 야영 기술을 익히는 것이 목적이다. 스카우트 캠프는 그 기술을 익히는 과정에서 단결력, 모험심, 자립심 같은 미덕을 쌓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둘 중 하나에만 치우치는 경우는 없다. 미덕 없는 등반가는 있을 수 없고, 야영, 독도법 같은 것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스카우트도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이 사이의 균형점을 어느 쪽으로 기울이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문화예술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능력, 태도, 가치의 함양없이 기능만으로 예술가가 되지는 않는다. 또 어떤 능력, 가치, 태도를 교육하기 위해 예술적 요소를 사용하지 않는 교육도 없다.
문제는 균형점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문화예술교육”의 경우는 이미 그 답이 명백하다.
학교는 공식적 교육기관이다.
즉 학교는 교육을 명시적인 목표로 이를 달성하기 위해 특화된 기관이다. 따라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그 앞에 무슨 수식어가 붙더라도 우선은 “교육”이다. 이를테면 스포츠클럽 활동은 학생들을 운동선수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문화예술교육은 학생들을 예술 전문가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매개로 하여 어떤 교육적 효과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문화예술교육의 성공적 정착과 확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에 대한 이해가 보다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적 효과란 학생의 긍정적인 변화다.어떤 프로그램을 시행했으면 시행 이전과 시행 이후 학생의 생각, 태도, 행동 등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시간낭비이며, 부정적 변화가 나타난다면 반교육이다.
따라서 교육은
1) 이러한 목표로 하는 변화를 설정하는 단계,
2)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단계,
3) 실제 프로그램의 집행단계,
4) 그 효과를 검증하는 평가단계로 이루어진다.
공교육에서는 이 네 단계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이를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학교에 어떤 프로그램이 투입된다는 것은 그 학교 교육과정의 한 부분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학교 범위를 넘어서 국가 정책으로 학교문화예술교육을 추진한다는 것은 국가교육과정의 한 부분, 혹은 여기에 기여하는 어떤 부분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프로그램과 정책은 먼저 국가교육과정, 그리고 각 학교의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이해하고, 그것의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까지 모두 갖추어야 한다. 심지어 여기에는 강사의 복장, 언행, 행실과 같은 것까지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포함된다. 학생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교육자의 모든 요소가 다 교육과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교육당국이나 학교는 이러한 프로그램의 도입에 소극적이 되기 쉽다.
이는 학교가 아직 미성숙한 사람을 다루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병원이 새로운 치료법이나 약재의 사용에 매우 신중하고 소극적인 것과 마찬가지다. 병원은 획기적인 치료법이나 약재보다 위험이 적은 치료법이나 약재를 선호한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로 획기적인 효과보다는 학생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답답한 보수성으로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아동·청소년기라는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는 많은 학생들과 함께해야 하는 교육자 입장에서는 안정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과 교육은 그 사후 책임성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관객의 내일 이후의 삶에 대해서까지 책임지는 연출가는 찾기 어렵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교사는 학생의 내일 이후의 삶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학교문화예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현장에 투입될 프로그램은 무엇보다도 먼저 교육 프로그램이라야 하며, 이 교육은 그 분야의 기능과 소양을 기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성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을 주거나 보완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또한 학교문화예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현장에 파견될 사람은 학교에 가는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을 하는 교육자라야 한다. 그가 직접 교사의 마인드를 가질 수도 있으며, 교사와 서로 상보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학교의 교육 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신중하게 찾고 고민해야 한다.
이런 신중한 고민 없이 단지 예술가의 마인드로 학교에 접근할 경우 학교의 거부감을 사거나 혹은 활동의 폭을 상당히 제한당할 수 있다. 물론 학교 측이 실제로 구시대적인 폐쇄성, 고루한 보수성 때문에 그렇게 나올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학교 측의 여러 요청이나 제한을 무작정 고루한 보수성, 혹은 문화예술에 대한 몰이해로 몰아쳐서는 절대 바람직한 답이 나오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가 문화예술은 없이 교육만 강조하는 반대 방향의 편향을 정당화 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예술교육은 “문화예술”을 활용하는 교육이며, “문화예술”에 대한 교육이다. 따라서 이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은 교육적 소양을 갖춘 문화예술 전문가라야지, 문화예술을 장식으로 달고 있는 교육자라서는 안 된다. 특히 치열한 기능연마를 요구하는 예술의 세계에서 좀 더 편안한 길의 하나로 학교문화예술교육이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문화예술교육자가 빼어난 걸작을 창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어느 정도 수준있는 수작은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과학교사가 새로운 발견을 할 필요는 없어도,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법칙에 대해서는 충분히 통달해야 하고, 사회교사가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지휘할 필요는 없지만, 정치·경제 분야의 쟁점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하듯, 문화예술교육자는 자신의 분야에 상당히 숙련되어 있어야 한다.
예컨대 미술 분야 프로그램으로 학교에 파견된 문화예술교육자라면, 학교에서 행사가 있고, 걸개그림이 필요하다면 그 정도는 그려낼 수 있어야 하며, 그 그림에서는 충분히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져야 한다. 그래야 미술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그에게 권위를 부여한다. 연극 분야 프로그램으로 파견되었다면, 비록 자신의 전문 분야가 교육연극이라 할지라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30-60분 정도의 드라마를 제작해서 학교 예술제 등에서 공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예술교육사지 예술가가 아니라는 등의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자신의 전문 기능을 통해 학교 전체의 프로그램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와 그의 프로그램의 학교내 위상도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전문 기능을 학교 전체의 프로그램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고 배치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