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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Aug 09. 2020

이 땅에 토착왜구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언제 부터인가 ‘토착왜구’라는 혐오용어가 마구 사용되고 있다. 그것도 소수자들에 대한 관용을 교과서적으로 주장해왔던 진보 인사들이 이 말을 마구 사용한다. 이 말이 왜 혐오용어냐고 항변하기까지 한다.


당연히 혐오용어다. 국적이 일본이라는 이유만으로 ‘왜구’라는 멸칭으로 부르는 것이 혐오이며, 한국인 중에 자기들 뜻에 어긋나거나 혹은 충분히 일본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 멸칭을 붙이는 것이 혐오다. 혐오라는 것이 별 대단한 것이 아니다. 특정한 집단 자체를 나쁘거나 열등한 것으로 규정한 뒤, 사람의 가치를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느냐로 싸잡아 판단하는 것이 모두 혐오다.


혐오표현처럼 쉬운 것이 없다. 그래서 혐오정치는 항상 반지성주의와 함께 간다.


혐오표현에는 설명이 필요없다. 적대감과 같은 감정만 존재하며, 감정선을 건드리는 선동과 데마고그만 존재할 뿐이다. 그들에게 반대하거나 소위 우리편을비판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이 토착왜구 딱지를 받는다. 합리적인 외교를 주장해도 토착왜구,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봐도 토착왜구, 심지어 일본군 위안부로 고생하고, 돌아와서는 동포의 냉대에 다시 고생했던 할머니들까지 하루아침에 토착왜구로 둔갑을 시킨다.


문득 궁금해진다. 아니  21세기에  친일파가 이렇게 많단 말인가?


1991년 생각이 난다. 고인이 된 박홍 신부의 주사파론이 신문을 흔들었던 시기다. 박홍 신부는 이땅에 주사파들이 암약하고 있어 나라를 전복하여 김일성, 김정일에게 바치려 한다며 비분강개했다. 그때 박홍이 내세웠던 주사파의 숫자가 최대 약 30만명이었다. 그 근거로 전교조 조합원수, 전노협(민주노총의 전신) 조합원 수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비웃음을 받았다. 전교조 조합원이 모두 운동권도 아닐뿐더러, 운동권이 몽땅 주사파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폭주하는 진중권을 보면 알 수 있듯, 좌파 운동권 중에는 주사파는 커녕 주사파를 박정희, 전두환 보다 더 미워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그러니 아무리 긁어도 주사파 30만을 모으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박홍은 선동을 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을 한것이다. 본인도 그렇게 믿었으니. 더구나 이제와서 생각이지만 주사파를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것 자체도 그리 해롭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이다.


박정희, 전두환이 아무리 포악해도 무모한 남침으로 100만명 이상의 동포를 죽음의 길로 몰아넣은 김일성, 무능한 국정 운영으로 수백만명의 인민을 굶겨죽인 김정일만큼 나쁜 놈은 아닐것이다.게다가 북한은 아직도 적화통일 묵표를 공식적으로 폐기한 바 없다. 주사파가 30만이라는 설정이 문제인 것이지 주사파 암약을 걱정한 것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 아무한테나 주사파 딱지를 붙이지 않는 다음에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대체 주사파는 왜 생겼을까? 그리고 이렇게 시대가 바뀌고 북한이 망가진 모델이라는게 명약관화해졌는데도 여전히 주사파들이 뭉쳐있고 남아 있는 이유는 또 뭘까? 사실 여기에 어떤 이념 같은걸 들이 대면 절대 답이 안나온다. 이념이 아니다. 겉으로는 아무리 폼나는 말을 할 지언정. 미스 마플이 그러셨다. 이해 안되는 일이 있을 때는 가장 원초적인 동기를 찾아보라고.


딱 둘이다. 돈 아니면 치정.


그렇다면 주사파의 동기는 치정이라기엔 좀 이상하니, 딱 하나가 남는다.


돈.


이 동기를 대입하면 설명하기 어려웠던 그들의 이상한 패거리 문화, 그들이 대의명분을 헌신짝 처럼 버리고 양아치짓을 하며 말년을 더럽힌 이유가 다 설명된다.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돈. 패거리로 모여서 이렇게 저렇게 해 먹는 돈.


주사파 뿐이 아니다. 역사를 돌아 보더라도, 민족을 배신한 무리들 역시 그 동기는 다 돈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민족을 배신한게 아니라 돈이 나오는 쪽으로 줄을 선 것이다.  당연히 돈이 끊어지면 그들은 말을 바꿔탔다.


그것은 너무도 원초적인 욕망이다.  몽골이 고려를 지배할때는 친원파가 실세였다. 그러다 몽골이 대륙에서 밀려나자 명나라에 사대하는 세력이 주류가 되었다. 그때까지 끈질기게 이 친원파 권문세족이 남아서 저항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은 신속하게 사라졌다. 어차피 몽골 앞잡이가 되어봐야 얻을 이득이 없는데 누가 그걸 끈질기게 유지하겠는가? 몽골을 숭상하는 것에 어떤 종교적인 열정이 있다는 가정은 너무도 비현실적이고.


마찬가지로 병자호란때 까지만 해도 죽었으면 죽었지 재조지은을 갚아야 한다며 비분강개했던 그 친명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명나라가 멸망했으면 하다못해 그 명맥을 이은 대만하고라도 연대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대만마저 청에게 정복당한 다음에는 스스로 황제 위에 올라 명의 대통을 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먼지처럼 사라졌다. 이미 망해버린 명나라에 대한 충심을 내세워 본들 아무런 이득 될 것이 없는데 누가 그런 짓을 하겠는가?


자, 그렇다면 이제 토착왜구로 눈을 돌려보자. 그리고 여기에 돈의 잣대를 대어 보자.


만약 지금이 일제 구한말, 일제시대라면 토착왜구에 대한 유인이 명백히 존재한다. 토착왜구가  되면 돈과 명예가 따라오는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만 있지 어느 정도는 다 토착왜구였다.


앞장서서 조선총독부를 위해 일해야만 토착왜구가 아니다. 자식을 학교에 보내 가방끈 늘려 잘살게 하고 싶어한 사람들 역시 그 학교가 '황국신민의 서' 외우게 하고, 일본어로 수업하고, 신사 참배하는 거 다 알고 보냈다. 물론 그리고 나면 능력이 되면 일본 유학도 다녀오기를 바랬고, 일본인 회사, 조선 총독부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을 선망했다.

친일파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보통 사람들의 경우다. 그러니 그 시대를 탈탈 털면 엄청나게 많은 토착왜구들을 적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을 다 적발해 내고 나면 나라가 과연 남아날지 의심스럽지만.


자, 이제 2020년대로 돌아와 보자. 친일, 일본에 줄을 대는 것에, 과연 ‘토착왜구’를 자처할 만한 어떤 메리트가 있을까? 어떤 특수한 위치에 있는 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친일파’라는 세력을 형성하고, 심지어 그들이 언론과 검찰을 움직이고,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발휘할만큼 다수가 될 수 있을까? 일본이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나? 차라리 1980-90년대 같으면 거품 경제라 그럴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일본이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할 만큼 공작금이든 뭐든 풀어 놓을 여력이 될까? 그리고 그게 일본에게 무슨 이득이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토착왜구의 유인이 부족하다. 소수의 토착오타쿠 정도는 있을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친일파 역시 일제가 패망하는 날로부터 순식간에 사라졌을 것이다. 친일파가 무슨 지조가 있고, 절개가 있어서 100년이 지나도록 “오 나의 일본” 하며 남아 있단 말인가? 아마 친미파로 편신했다가, 요즘에는 친중파로 변신했겠지.


실제로 오늘날  토착 앞잡이를 양산할 정도의 여력과 영향력을 갖춘 세력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다. 한국을 흔들어서 얻을 이익도 분명히 있다. 한미일 동맹을 흔듦으로써 태평양 봉쇄선의 파열구를 낼 수 있다. 반도체 기술을 절취해 갈 수도 있다. 그러니 돈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토착왜구 보다는 친중파가 보다 현실적이며, 또 실제 위협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역시 다만 가정에 불과하다. 그러니 친일파고 친중파고 실체 없는 세력 만들어 딱지 붙이면서 내편 네편 하는 놀이는 그만 두었으면 한다.


아, 그렇구나. 돈! 그들이 민족의식이 투철해서 토착왜구 타령 하는게 아니었구나. 돈!


토착왜구가 많은  아니라 누군가를 토착왜구로 몰아 붙임으로써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아닐까?


토착왜구 비즈니스?


그냥 비오는 날의 넋두리다. 괘념치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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