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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Jul 01. 2020

투기, 투자, 그리고 실수요자

부동산 정책이 춤을 춘다.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라는 정부 고위 담당자들의 호언 장담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잡히기는 커녕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다. 강남 집값은 물론 수도권 전체가 다 같이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메시지는 여전히 강경하다. 투기수요를 억제하겠다고 한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 마구 올라가고 있는 수도권 집값이 투기꾼들이 착한 정부를 상대로 벌이는 마지막 몸부림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더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겠다. 섵부른 예측이나 진단도 하지 않겠다. 나는 부동산 전문가도 아니고, 부동산 거래를 많이 해 본 사람도 아니다. 50년을 넘게 살았지만 집을 딱 두번 샀고, 한 번 팔았다. 할 말이 많지 않다. 그러나 정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회교사의 입장에서 이 투기 수요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건 경제 교육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경제 교육에서는 2009년 이후에야 투자를 사회과 교육의 일부로 수용했다. 학생들이 장차 근면한 노동자 뿐 아니라 건전한 투자자로 성장하는 것 까지 염두에 두는 것이다. 이전에는 경제 주체로 노동자, 기업가, 소비자만 다루었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사회교사들이 투자를 교육 내용으로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이런 풍토는 바뀌어야 한다.


경제 교육에서 말하는 투자는 수익을 목적으로 내가 가진 화폐를 시장에 투입하는 행위다. 시장에 화폐를 투입한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샀다가 되팔아서 그 차액을 수익으로 챙기는 것이다.  기업에 투자할 때는  그 기업이 그 사고 파는 행위를 대신하며,  나는 그 댓가로 이자를 받는다(채권). 혹은  아예 그 기업의 일부분을 샀다가 되팔아서 수익을 거둘수도 있다(주식). 한 마디로  투자는 무엇인가를 구입할때 그것의 가치가 장차 더 높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행위다.


자녀 교육 역시 일종의 투자다. 자녀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는 의무교육 이상의 교육을 위해 돈을 쓸때는 자녀가 적어도 투입되는 화폐보다 더 가치있는 인간이 되어 있을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어떤 인간이 가치있는 인간이냐, 그 가치를 화폐로 환산할 수 있느냐 등은 일단 따지지 말자. 논의가 너무 복잡해진다. 어쨌든 교육에 돈과 시간을 쓰는 부모는 자녀가 더 가치로운 인간이 될 거라고 믿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공교육은 장기적인 공공투자다.


문제는 내가 돈을 투입하여 구입할 대상의 가치가 높아 질 것이라는 믿음의 근거다.  그 근거가 객관적인 사실과 합리적인 추론이라면 이는 투자다. 사실과 추론에 근거한 투자는 설사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투자자 본인의 책임으로 감수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사실과 추론에 근거해서 투자하는 사람은 손실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그것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투자하기 때문이다.


 근거가 막연한 희망, 혹은 시장질서 교란 세력으로부터 비롯되는 정보 , 사실에 근거하지 않거나 비합리적 판단이라면  이는 투기다. 투기는 비합리적인 수준의 수익을 목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입되는 자금의 규모 역시 비합리적이다. 손실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야말로 올인 하거나, 심지어 엄청나게 많은 빚을 끌어들이는 등.  


가령 ㄱ이라는 기업의 재무제표와 사업아이템을 분석했을때 위험은 적고 성장 가능성은 크다고 판단하여 그 회사의 주식을 샀다면 이는 투자다. 하지만 이 ㄱ이라는 기업이 현 정권 실세와 관련이 깊어 장차 국책사업을 독점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듣고 주식을 샀다면  이는 투기다.



 주식 매입 등 기업에  투자하면 돈이 기업으로 흘러들어가서 새로운 가치로 바뀌어 시장에 나온다. 가령 기아 자동차 주식에 투자하면 그 투자금이 자동차의 일부가 되어 나온다.


그런데 집의 경우는 특수하다. 이미 살고 있는 집 외에 아파트 한 채를 더 사 둔다고 하자, 만약 그 목적이 은행 이자보다는 조금 더 높은 월세 소득을 거두기 위해서라면 어쩄든 월세라는 상품을 시장에 공급한 것이니 일종의 투자다. 하지만 그 집을 구입하는 목적이 엄청난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라면 이는 투기라고 불릴 수 있다.  


즉 투자와 투기를 구별할 때 '실제 거주'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비합리적인 차익의 기대에 의한 구입이냐가 중요하다 . 그러니 거주성이 뛰어난, 혹은 장차 뛰어나게 향상될 가능성이 높은 집을 가격에 그 가치가 반영되기 전에 미리 매입하는 행위를 단지 "현재 거주할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투기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하지만  백보를 양보해서 그걸 투기하고 처 보자.즉 실제 거주할 목적이 아닌 이유로 현재 거주하고 있는  외에  다른 집을 구입하는 행위를 모두 투기로 보고, 무주택자가 아닌 사람들의 주택수요를 모두 실수요가 아닌 투기수요로 보자는 것이다.


그 전제를 받아들이면 현재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는 집값, 정확히 말하면 수도권의 집값을 잡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이미 살고 있는 집이 있는 사람, 주택 보유자가 다른 집을 사지 못하거나 어렵게 만들어 수요를 줄이는 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쉽다. 하지만 너무 쉽다.


이 논리에 따르면 집의 사용가치는 거주하는 것이다. 사용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어떤 상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것이 ‘실수요’다. 따라서 거주하는 목적 이외에 집을 또 사고자 한다면 이는 실수요가 아니라 투기수요다. 얼마나 단순한가?


하지만 '거주'라는 것이 그렇게 하나로 퉁칠수 있는 사용가치일까? 거주의 질은 사용가치에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가령 전철 하나 다니지 않는 경기도 외곽에 있는 아파트와 잠실 한 복판에 있는 아파트가 제공하는 사용가치는 '거주'라는 동일한 것일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생존에 필요한 영양소는 다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동네 중국집이 아니라 굳이 값비싼 중화레스토랑을 찾아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이 둘은 사용가치가 전혀 다르지만, 저런 단순한 논리에서는 이 둘을 오직 '식사'라는 동일한  사용가치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화레스토랑에 대한 수요는 실수요가 아니며, 그 레스토랑의 비싼 음식값은 '거품'이며, 따라서 그 레스토랑과 동네 중국집 음식 가격의 차이는 '투기수입'으로 간주하여 세금으로 환수해야 한다는 논리가 끌려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네 중국집에서 식사하는 사람은 평생 동네 중국집이나 김밥천국에서만 자신의 식사라는 사용가치를 충족시켜야 할까? 그 사람이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를 바란다면 이건 분에 넘치는 투기수요인가? 가재붕이 감히 용을 넘보는? 그리고 이런 분에 넘치는 투기수요 때문에 고급 레스토랑 음식값이 거품이 붙어 비싼 것일까? 누구도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보자. 경기도 외곽에 있는 어느 도시에 4억원 짜리 아파트를 소유하여 살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거주와 관련한 사용가치를 모두 충족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마침 거기 직장이 있거나, 은퇴하여 교외생활을 즐기거나 하기 전에 말이다.


대부분의 수도권 주민들의 주거라는 사용가치는 "강남 살아봐야 별거 없더라"라고 말하는 정권 고위층 인사의 발언과 달리 "강남"에 맞춰져 있다. 만약 그게 안된다면 "인 서울"이라도. 이른바 강남3구, 그리고 최근의 마용성 같은 지역의 사용가치는 명품 백이나 보석류 같은 사치재가 아니다. 생활 필수품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것이다. 따라서 수도권 주민들의 거의 대부분이 잠재적인 강남3구 수요자인 셈이다.


 "강남 살아봐야 별거 없더라" 하는 고위층 인사는 너무 고위층이고 부유하여 강남권이 제공하는 사용가치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수준이라 그런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강남권이 제공하는 사용가치가 매우 간절하다. 그러니 값이 비쌀수 밖에 없다. 그 비싼 값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은 강남권이 제공하는 사용가치들 중에서 일부를 포기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외곽에서 집을 구한다. 그래서 마용성으로 인서울로, 경기도 역세권 신도시로, 경기 외곽으로 아파트의 카스트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것으로 결코 주택에 대한 수요를 마감한 것이 아니다. 경기 외곽에 집 한칸 마련했으니 이제 주택 문제는 해결 되었고, 삶의 다른 목표를 세우자, 이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단 한칸 마련했지만, 그걸 기반으로 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하여 강남권, 그게 안되면 인서울이라도 하려는 수요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서울이, 특히  강남권이 다른 지역보다 업무, 상업, 문화 기반에서 압도적인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한  경기도 1300만 주민은 모두 잠재적인 서울, 나아가 강남권 '실수요자'다.


심지어 이른바 갭투자조차 실수요의 변형이다. 과거에는 갭투자가 적은 자금으로 집을 여러개 확보하여 빠르게 시세차익을 튀겨나가는 투기 기법이었다.  갭투자로 집을 대여섯채씩 가지고 있다면 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경기외곽에 자기집을 하나 가지고 있는 30대 부부가 그 동안의 저축과 금융투자로 모은 2억-3억 정도의 자금으로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구입했다면 이게 과연 투기일까? 이 부부는 실수요자가 아닐까? 아마 그들은 끼고 있는 전세금을 어떻게든 마련하면 실제로 이사 들어갈 마음이 있을 것이다.  아직 여력이 안되는 실수요를 조금이라도 빨리 충족시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 이 수요가 당장 들어와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기수요' 취급을 받는다면 얼마나 서러운 일일까?


여기서 더 자세한 말울 펼칠 능력이 없다. 그리고 부동산 정책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제안할 마음도 없다. 다만 국민들 중 상당수를 투기세력으로 몰아붙이기 전에, 먼저 그들이 왜 어찌 보면 투기처럼 보이는 방법을 동원해야만 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요즘 우리나라의 부동산 투기세력은 토착왜구 만큼이나 그 실체가 모호하다. 그리고 설사 있더라도 단지 '실거주' 목적이라는 단일 척도가 아니라 잠재적인 실수요자와 그야말로 투기세력을 명확하게 구별해낼수 있는 정교한 척도를 마련해야 한다. 공연히 성실하게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30대-40대 직장인들 가슴에 피멍 들게 할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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