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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Jun 24. 2020

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멘토라는 함정

바늘구멍보다 더 좁은 교원임용고시를 뚫고 합격 통지를 받았을때의 기쁨도 잠깐입니다. 신규교사에게 2월은 짧은 기쁨과 긴 걱정의 기간입니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아니 잘 하는 것 까지는 기대도 안하고,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선배들이나 지인을 통해 혹은 매스컴을 통해 듣는 정보들은  온통 어두운 것들 뿐입니다. 더구나 날이 갈 수록 정보의 명도는 점점 낮아집니다. 마치 교육계의 암흑기라도 온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응원이라도 해 주면 어떻게 버텨 보겠지만, 교직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점점 나빠지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한편에서는 “꿀빠는 직장”이라며 시샘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도 옛날 이야기”라며 교사가 얼마나 힘든 직업인지 아느냐는 볼멘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저 두렵습니다. 세상의 반응이 두렵고, 다가올 고달픔도 두렵습니다. 이제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디는 젊은이에게 너무 큰 짐이 주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신규교사 연수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간혹 교직의 출발을 벅찬 흔들림 속에 맞이하게 해 주는 강사를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장학관, 교장,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평가가 높은 고참 교사들이 주로 강사로 나서는데, 솔직히 이들이 신규교사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이 분들은 교육 현장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된 분이거든요. 수업을 떠났거나, 담임 안 맡은지 오래거나 둘 다이거다.


임용고시를 위해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했지만, 그건 그저 시험용에 불과할 뿐, 막상  학교 현장에서는 하나같이 무용지물이라는 이야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입니다. 그렇다고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에서 4년간 배운 것들이 도움이 되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그것들은  임용고시에조차 딱히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교사가 되기 위해 그토록 긴 시간을 고생했지만, 막상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는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리하여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처음 교직에 발을 디디는 젊은이의 교직 경력은 그야말로 


완전한  무에서 시작합니다.


이렇게 불안한 상태에서 그럭 저럭 신규교사 연수가 끝날 때쯤 되면 발령이 납니다. 발령의 기쁨은 잠깐, 이제  실제로 일해야 할 학교가 정해지면, 그 불안과 두려움이  현실적인 공포가 되어 다가옵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그렇게 어두운 감정만 느끼는 건 아닙니다. 정말 뭐라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에 휘말립니다. 기대, 설레임, 공포가 모두 뒤섞여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마음 상태에서 신규교사는 첫 출근을 하게 됩니다. 신규교사 발령 날짜가 정기전보 일정보다 많이 늦기 때문에 대부분 학교는 신학기 준비 연수를 신규교사가 오기 전에 마치게 됩니다. 정말 준비할 시간도 기회도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선 학교는 이렇게 전혀 준비할 틈도 없이 부임하게 되는 신규교사를 절대 ‘신규’로서 맞이하지 않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처음 출근하는 그날부터 바로 기성 교사들과 별로 차이 없는 한 사람의 몫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적응기간도 없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신규교사에게는 학급 담임도 맡기지 않고, 이른바 업무도 비교적 쉬운 것 부터 맡기는 정도의 배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직의 여러가지 여건은 해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고, 너나 할 것 없이 고달픈 상황에서 그런 배려와 아량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과거의 배려가 제도적으로 확보되지 못하고 다만 선배들의 여유와 아량에 기댔기 때문에 선배들에게 여유가 없는 상황이 되자 더 이상 던 탓입니다. 


이제 신규교사가 학급 담임을 맡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으며, 이른바 학교 업무도 각 부서의 기획이라 불리는 핵심 실무자를 맡는 경우마저 비일비재합니다. 심지어 학교폭력 업무 같은 민원 폭탄이 터지는 전쟁터 같은 자리에도 대책없이 밀어넣습니다. 부장을 맡기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다행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5년 이내 저경력 교사에게 부장을 맡으라는 압력이 심심찮게 쏟아지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2020년 현재 우리나라 학교는 신규교사에게 너무도 불친절하고, 냉정하고, 잔혹한 공간입니다.


이렇게 불친절하고, 냉정하고, 잔혹한 공간에 홀로 떨어진 젊은이들은 그 막막함에 방향을 찾아줄 길잡이를 간절히 바랄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을 흔히 '멘토'라고 부릅니다. 멘토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과 그 귀환으로 10년 넘게 집을 떠나 있는 동안, 그 아들 텔라마코스를  이끌어준  친구의 이름에서 유래된 말로, 충실하고, 지혜로와 삶의 길잡이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어른을 뜻합니다. 이게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그 분야에 처음 진출한 젊은이의 성장을 이끌어주거나 역할 모델이 되어주는 선배나 상사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당연히 젊은 교사들도 이 잔혹하고 혼란스럽고 불안한 교직생활을 이끌어줄 멘토를 원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 학교에서 선배교사나 교장, 교감 중에 멘토를 만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심지어 멘토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꼰대질이나 안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일 정도입니다. 


이럴때 책을 찾고, 인터넷을 뒤지게 됩니다. 그리고 깜짝 놀랍니다. 이룰 수가? 너무도 멋진 선배 교사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마음 속의 멘토로 삼고, 책이나 포스팅으로 전해듣는 그들의 조언, 그들의 여러가지 방법들, 팁을 배웁니다. 온라인 연수 같은 것으로도 부지런히 만나 봅니다. 


대체로 그들은 경력이 아주 많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10년-15년 정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보다 경력이 더 많은 경우는 일단 신규 교사들과 사용하는 언어 코드가 조금 다르고, 또 미디어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해 쉽게 알려지지 않습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습니다.  이렇게 멘토를 찾는 젊은 교사들이 늘어나다보니, 멘토 마케팅을 하는 좀 덜 젊은 교사들도 늘어납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이런 현상이 부쩍 많이 일어납니다.  물론 이 분들은 나름의 업적이 있고, 나름의 특기와 장점이 있는 분들입니다. 배울 점이 많죠. 문제는 이 분들이 롤 모델이 되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즉 멘토가 훌륭한 교사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멘토'라는 역할 모델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저런 교사가 되겠어."의 모습이 학생과 만나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교사들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되는 경우 말입니다. 그런데 교사가 해야 하는 일은 학생을 교육하는 것이지 교사를 교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사를 교육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실제로 이는 전문가로서 다른 전문가들 앞에 자신의 연구와 실천을 선보이고 이를 '동료 검증'하는 과정이라야 합니다. 

 뛰어난 교사가 보통의 교사를 '가르치고' '이끄는' 것은 결코 교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물론 젊은 교사 역시 마주 선 '유명한' 선배 교사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다만 좀 더 많은 경험과 독특한 방법을 보유하고 있는 '유용한'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교사에게 필요한 멘토는 텔레마코스에게 모든 것을 전적으로 이끌어 주었던 그 멘토가 아닙니다.


교사의 멘토는 교사로서 멘토가 되어야 합니다. 


즉 교사의 멘토는 멘토라는 또 다른 일을 함으로써 모델이 되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사로서의 일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는 사람입니다. 강단에 연단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교실에 있는 사람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젊은 동료들과 때로 의견을 주고 받고, 때로 도움을 주고받지만 아무래도 주는 쪽이 좀 더 많은 그 정도의 위치일 뿐이며, 그 정도의 위치라야 진정한 교사 멘토가 될 수 있습니다. 


교육은 철저히 학생과 교사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지는 맥락적인 활동입니다. 따라서 그 맥락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의 충고는 화려하지만 공허한 것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젊은 교사에게 가장 훌륭한 멘토는 어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자신과 실천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 중에 있습니다. 그러니 교육 실천의 과정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이 다만 멘토로서의 멘토 노릇을 한다면,  그런 사람이 흔히 볼 수 있는 '자기계발 강사'와 대체 무엇이 다른지 의심해 봐야 합니다.  


교사는 지식인입니다. 적어도 '지식인'이라면 자기계발 강사로부터 자신의 길을 찾으려 해서는 안되며, 그런 모습을 자신이 따라야 할 역할모델로 삼아서도 안됩니다. 더구나 교사라면 자기교실, 자기학교를 떠나 외부로 나돌아다니는 모습을 자신의 전망으로 목표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제가 교사 멘토현상에 대해 더 우려하는 점은 그런 분들의 대부분이 남자 선생님들이라는 것입니다. 장년층의 남자 선생님들. 이상하게 옛날부터 남자 선생님들은 자기 교실, 자기 학교를 좁고 시시하게 느끼는 경향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려고 점수따기 줄서기에 몰두하는 그런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남자 선생님들의 자기 교실, 자기 학교 벗어나기가 교감, 교장되기에서 멘토되기, 강사되기로 바뀌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젊은 남자 선생님들 역시 수십년 뒤에나 될 것 같은 교감, 교장에 목을 매달기 보다는 당장 몇년 반짝 노력해서 한번 떠서 전국을 누비는 쪽으로 야망을 펼치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지면을 할애하여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거나 저거나 교실을 떠나야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무 까칠하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멘토의 모습을 하고 이 학교, 저 학교, 이 교육청, 저 교육청을 다니며 마이크를 잡고 계신 분들이 자기 학교, 자기 교실을 소홀히 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도 저의 좁은 소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분들의 말씀, 그런 분들의 멋진 이야기와 모습을 조금은 삐딱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 삐딱함이 바로 젊음의 상징이자 특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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