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의 여행기 02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첫 저녁인 만큼 먹고 싶었던 것을 먹을까 했는데, 마침 게스트 하우스 주변에 맛있어 보이는 키시멘 집이 있어 그 가게로 향하기로 했다.
외관 부터 굉장한 컨셉인 것 같지만, 메이지 시대 때부터 개업해 지금까지 가게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메인 메뉴와 역시 키시멘 정식. 키시멘과 가라아게로 배고픔을 달래보기로 하였다.
내가 시킨 것은 키시멘 정식 넓직한 면과 국물이 마치 오뎅 국수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맛있었다.
오뎅 국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뎅 국물 맛이 어느정도 났으니 그러려니 한다.
방문하는 손님들도 대부분 일본 사람들. 메뉴 판의 한자가 어려워 제일 잘 나가는 메뉴를 물어보는 나에게 할머니는 '관광객?' 한 마디만 하고 더는 묻지 않으셨다. 그래도 한자만 못읽을 뿐이지 주문을 하는 것을 보고는 크게 상관하지 않으신 것 같다.
일을 마치고 들른 아저씨, 애인과 함께 온 젊은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 두 명을 데리고 자주 오는 듯한 가족까지 각자 서로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보아 자주 이 집에서 만나는 사람들 같다. 나는 완벽한 이방인으로 따뜻하게 나온 키시멘 정식을 빠르게 해치우고 나왔다.
배부른 저녁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공용 거실에 앉아 내일 갈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처음 생각으로는 토요하시 쪽으로 이동해서 바다를 보는 쪽으로 할까 고민하고 토요하시에 가볼만한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구글 맵을 열어 갈만한 곳들을 전부 저장해둔다. 그리고 그 저장이 5곳을 넘길때 쯤, 게스트하우스의 스태프인 분타가 말을 걸었다.
'오늘 여행 잘 했어?'
빠른 말에 촐싹거리는 느낌은 있지만, 말을 하는데 있어서 상대방이 기분 나쁘다고 느낄만한 스탠스는 없었다.
'응, 오늘 들어와서 클라이밍하고, 플라리에도 가고, 저녁으로는 키시멘을 먹었어. 지금은 내일 가볼 곳을 찾아보고 있어'
'우와, 일본어 잘해! 무계획이야?'
'응, 완전히 무계획'
'대단하네'
이 말을 시작으로 여러가지 이야기꽃이 피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왔고, 작년에도 무계획 여행을 했는데 너무 재밌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한다. 내일을 토요하시 쪽으로 가볼까 한다.
'음 안돼, 토요하시는 볼게 없어'
'아, 그래?'
'본가가 토요하시에 있거든, 나 대신에 가서 친구라고 하고 자고 가'
솔직히 이 말을 듣고는 너무 재밌을 것 같았지만, 처음 보는 친구 집에 가서 무턱대고 재워달라고 하는 것도 너무 웃긴 일이었다.
'그럼 어디가 좋을까?'
'나중에 치히로씨에게 물어보면 좋은 곳 알려주실거야'
역시 게스트하우스의 호스트는 다른 것일까. 나중에 물어봐야지 하고 다시 구글 맵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거실에서 새로운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줍게 영어로 인사하는 아시아 친구. 이 주변에 저녁 먹을곳이 있냐고 영어로 물어보았는데 한국인인가 생각하고 있을 무렵 자신에 대해 소개해주었다.
'나는 대만에서 왔어, 오늘 도착했고, 일 쉬고 무작정 온거라 별로 계획은 없어'
이 친구. 나랑 잘 맞겠다. 나랑 분타는 이 친구를 납치해 저녁을 먹으러 야키토리 집으로 향했다.
'정말 야키토리로 괜찮아?'
'괜찮아, 배도 엄청 고프진 않고, 술 마시고 싶었어'
밥 대신 술을 먹고 싶다는 것은 술을 잘 안마시는 나에게는 정말로 이해가 안가는 말이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저녁으로 술과 술안주를 먹는다는 사실을 곧잘 까먹는다.
신기했던 점은, 둘 다 나를 술고래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나는 술을 마시면 곧바로 머리가 아프고 잠이 오기 때문에 술을 잘 마시는 편이 아니다. 정말 연중행사 느낌으로 먹는데, 그마저도 바로 잘 수 있는 집이나 집 주변이 아니면 잘 안먹는 편이다.
야키토리 집은 오스 상점가에 있었는데, 술을 주문하지 않는 나를 보고는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한국인들 술 강하지 않아?'
'나 한국인 아닌가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술이 안받아'
신기하다며 분타는 야키토리를 먹으며 메가 하이볼 석 잔을 들이켰다. 본인 입으로도 술을 좋아한다고 하기도 했고, 거의 술로 배를 채우는 느낌이었다.
테레사 또한 술에 강한 것 같았다. 메가 하이볼 두 잔을 마시고는 야키소바까지 한 번에 비웠다.
'테레사는 내일 그럼 뭐해?'
'지금 일본 친구랑 이야기하고 있는데, 친구가 지브리 파크 입장권을 구해준데'
'부러워!'
물론 티켓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되어있다고 했지만, 입장할 때 여권을 놓고왔다고하면서 우기면 들어갈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지금 예약하면 11월에 입장할 수 있다고 해서 결국 가지는 못했다.
우리는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바로 이동했다. 바는 보통 12시까지 열려있고, 손님이 더 있다면 늦게까지도 하는 모양이었다. 분타, 테레사, 나는 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술을 한 잔씩 시키기로 했다.
각자 좋아하는 술을 시키고, 나는 술을 못먹는 다는 것을 어필하며 일본 술로 만든 칵테일을 주문했다.
'어라? 한국 사람들은 술 잘마시지 않아?'
호스트인 치히로 씨가 물어보니 분타와 테레사가 미친듯이 웃었다. 분명 아까 내가 한국인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술을 마시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테레사는 간단한 일본어를 이해하긴 했어도 말은 못했기에, 테레사가 영어로 이야기를 하면 내가 듣고 분타에게 일본어로 말해주고, 분타가 일본어로 말한 것을 다시 영어로 번역해주는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다.
분타 또한 계속해서 영어를 쓰려고 하긴 했지만, 아쉽게도 알고 있는 단어가 많이 않았고, 발음 또한 테레사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 셋은 뭐가 그리 웃긴지 야키토리 집에서 부터 게스트 하우스까지 깔깔거리며 웃으며 이야기했다.
치히로 씨에게는 다음 날의 여행지를 추천받았다. '이누야마'라는 곳이었는데, 나고야 성은 재건된 성이기 때문에 오래되고 낡은 성을 가보려면 이누야마가 제격일 것 같다고 했다. 숙소에서 급행 전철을 타고 위로 1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작은 마을이었다. 길도 이쁘고, 성 주변의 경관 또한 매우 아름답다고 했다.
실제로 구글 맵을 통해 사진들을 보니 내가 좋아할 것 같은 한적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굉장히 맛있는 냉모밀 집이 있다고 한다. 이건 못참지.
유일하게 단점이 숙박할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떡하지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분타가 이야기했다.
'내일 하루 더 묵고 가 그럼'
'그래도 돼?' 라고 물어보았는데, 치히로 씨가 내일은 예약이 차있다고 했다. 하지만, 원한다면 분타를 치히로씨의 집에가서 자게 하고, 치히로씨가 다른 곳에서 자면 된다고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민폐일 거라는 생각에 세 번 정도 분타에게 정말 괜찮은지 물어보고는 결국 마음을 정했다.
'내일 하루 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