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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Oct 04. 2023

잠을 어디서 잘까

무계획의 여행기 01

잠은 중요하다. 다음 날 행동을 위한 충분한 휴식을 줄 수 있는 곳이여야 한다. 특히 여행에서의 잠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만큼 어렵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여행에서는 숙소를 호텔로 잡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좀 편하고 이쁜 곳에서 쉬고 싶다면 비싸고 예쁜 호텔들은 얼마든지 있지만, 저렴하면서 쉬기 좋은 숙소는 찾기 쉽지가 않다. 일본에는 다행히 비즈니스호텔이라고 해서 출장이 많은 일본의 회사원들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호텔들이 도시 전체에 깔려있다.


하지만 나는 처음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무계획에 모험이 하고 싶은 여행자였다.

나는 첫 목적지를 나고야의 한 게스트하우스로 잡았다.


게스트하우스는 현지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정보통이다.

중세 판타지를 보거나 하면 길드에 들러 모험가들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듣거나 의뢰를 받거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가 이와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묵은 숙소는 나고야 역에서 좀 떨어진 한적한 거리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로, 1층은 바를 운영하며 지역 주민들이 퇴근하고 한 번씩 들르는 술집이었다. 내가 좀 떨어진 장소를 잡은 이유는 간단하다. 최대한 한국인이 많이 방문하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한국인이 싫어서가 아닌, 여행의 목적인 현지인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 같은 한국인들끼리 친해지게 되면 그만큼 현지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묵은 숙소의 도미토리 관련 안내문. 간단한 내용들이기도 하고, 체크인 시 말씀해주시기 때문에 문제 없다.

2층부터 3층까지가 게스트 하우스로 운영되고 있었고, 2층은 주로 리빙룸. 여행자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친목을 도모하는 장소로 주로 쓰였다.


밤늦게까지 떠들 수 있는 공간. 자는 공간과 분리되어 있어 어느 정도의 소음 까지는 괜찮지만, 너무 시끄럽지 않게 주의하자.


호스트인 치히로 씨와 스태프인 분타 둘이서 운영하는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게스트 하우스답게 굉장히 오픈마인드를 갖고 있어, 약간의 용기만 필요하다면 금세 친구가 될 수 있다.


나는 현지에서 여행지를 추천받으며, 친구를 사귀고 놀고 싶었기 때문에 정말로 나에게 딱 맞는 숙소였다고 생각한다.




나고야 공항에 도착한 뒤, Visit Japan 앱을 이용해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온 나는 바로 지하철을 이용해 나고야로 향했다. 추석 연휴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인천공항은 붐볐고, 나고야 공항도 붐비지 않을까 했었는데 다행히 나고야로 들어가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11시쯤 도착한 일본에서 나는 체크인 시간인 4시까지 할 거리를 찾아야 했고, 배는 기내식을 먹어 그리 고프지 않았다.(아시아나의 기내식이 짧은 거리였지만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나는 구글 맵을 열어 나고야에서 가보고 싶었던 클라이밍장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다만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는데, 나고야 대부분의 암장이 월요일을 휴무일로 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선택지가 많이 없었다. 결국 숙소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클라이밍 짐으로 가게 되었다.



일본의 클라이밍장 체험

일본에서도 몇 군데 체인점이 있는 볼더링 짐. 월요일의 정오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일본의 클라이밍장은 정말 신기한 부분이, 대부분의 곳들에서 첫 방문을 하게 되면 멤버십 카드를 만들어야 된다고 한다. 그리고 회원 등록을 위해서는 약 2만 원의 거금을 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일일 체험의 경우, 일반적으로 2만 원만 내면 들어갈 수 있지만, 내가 간 암장의 경우 멤버 등록 비용 2천 엔에 하루 이용료 또한 2천 엔이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비싸긴 했지만, 한 번 체험해 볼 만 하기는 했다.


암장 내의 자판기와 등급 표.


색으로 등급을 나누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의 암장은 등급을 나누는 방식이 조금 특이했다. 특히 내가 간 곳은 8Q - 1Q, 1D, 2D로 점점 어려워지는 구조였는데, 처음에는 색깔별로 나눠져 있는 줄 알았지만 스타트와 탑 지점에 따로 난이도를 써놓는 구조였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노란색 문제를 풀려고 다가가보았다. 등급표에도 색깔이 써져 있으니 당연히 문제도 같은 색으로 해놓지 않았을까? 하지만 루트를 읽어볼수록 내가 생각한 난이도의 무브로는 택도 없을 것 같았다. 홀드도 잡기 어려운 것들 뿐이고, 잡았더라도 그걸 유지한 채 움직여할 만큼 어려운 동작이 많았다.

결국 따로 물어보았더니, 색과 상관없이 스타트에 써져 있는 난이도를 보고 붙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엄청 잘하지는 않지만, 이런 식으로 문제풀이 영상을 모으기 때문에 찍어놓았다.

나는 최대 3Q밖에 하지 못했다. 한국 기준, 더 플라스틱의 남색돌이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3Q가 한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충분히 즐기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카메라 때문에 짐이 늘어 암벽화를 가져가지 못했는데, 대여화가 너무 미끄러워서 발을 제대로 디디기 힘들었다는 점뿐이었다.



걷다 마주친 그곳, 히사야오도리 정원 플라리에(久屋大通庭園フラリエ)

가방의 무게에 어깨가 짓눌릴 무렵, 오아시스처럼 공원이 나왔다.

가운데 작은 연못이 있는 호수였는데, 도심 속의 오아시스라는 말이 단번에 생각이 났다.

정원에는 앉아서 이야기하는 사람,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는 사람 등, 각자가 자신의 시간으로 월요일을 즐기고 있었다.


Hasselblad 503cxi, Portra 400


날씨는 쨍했고, 나는 정원을 한 바퀴 돌며 사진을 찍었다.



게스트하우스, 요루요나카


체크인 시간인 오후 4시가 되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1층의 바에서 체크인을 진행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배낭을 내려놓고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고, 무거운 배낭 때문에 난 땀이 마르는 것이 느껴졌다.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켜지는 소리와 큰 트럭들이 가끔가다 한 두대씩 오가는 소리를 들으며 멍 때리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5분 정도 지났을까, 호스트인 치히로 씨가 자전거를 타고 도착했다. 멋쩍은 웃음을 뒤로하고,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면서부터는 스무스하게 체크인이 이루어졌다.


체크인을 일본어로 할지, 영어로 할지 물어보는 치히로 씨에게 일본어로 부탁한다고 말씀드렸다. 영어로 말하는 것이 일본어 보다 훨씬 못 알아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日本語が上手!(일본어 잘하네!)'

여행 내내 들었던 말이지만, 아직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100% 완벽하게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칭찬은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항상 감사하다고 했다.


8인실 도미토리에 침대를 배정받고, 일단 샤워를 하기로 했다.

클라이밍에, 카메라와 삼각대, 6일 치의 짐이 든 가방을 메고 돌아다니느라 난 땀이 너무 찝찝했다.

샤워를 마치고 난 후, 건너편의 패밀리마트에서 푸딩과 음료를 좀 사 와 2층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게스트하우스의 본분은 새로운 만남! 정보 교환!

공용 거실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 두 번씩 말하고 나면, 저녁 이후에는 말을 걸기가 쉬워진다. 결국은 용기이지만, 게스트하우스에 오는 사람들 중 다른 사람과 말 섞기 싫어하는 사람은 좀처럼 없다고 생각한다. 비즈니스호텔 중에서도 게스트하우스만큼 저렴한 곳은 널렸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다른 게스트 한 명과 스태프인 분타만이 공용거실에 있을 때 내 앞을 지나갔다.

일단 인사와 함께 눈도장을 찍고, 저녁을 먹고 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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