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고 Mar 31. 2018

00. 음악 듣는 기린이 듣는 음악

더 많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기린의 첫 단추이자 첫 인사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모으려고 했던 바이닐이 5개월 정도만에 60장이 넘어가고 있다. 물론 나보다 많이 모으고 계신 분들이 수두룩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모은다는 것에 의미를 갖는다. 내가 직접 들어보고, 소장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면 직접 두 손으로 음반을 받아 수납장에 진열해 놓는다. 이 수납장이 차는 것을 바라보는 것 또한 배부르고 좋은 일이다.


실제로 하나 하나 모은 바이닐들 목록. 듣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다양하게 들으려고 노력중이다.


쌓여가는 바이닐들을 바라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SNS로 노래를 추천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좋은 노래니까 바이닐을 재생시키면서 짧게 녹화해서 올렸었는데, 어느새 내가 노래를 추천해주길 기다리는 사람도 생겼다. 그래서 이와 같은 수고를 덜기 위해 내가 직접 노래에 대해 쓰고 추천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다가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내 블로그의 게시글을 수정해서 작가를 신청하게 되었다.


다행히 심사위원분들의 마음에 드셨는지 별문제 없이 통과가 되었고,

이렇게 첫 글로 사람들 앞에 설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음악을 소개해주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노래여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내가 많이 들어보고 좋은 곡들을 추천해주려고 한다. 너무 다 알만한 듯한 노래를 최대한 거르고,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노래들을 위주로 소개 해 드릴 예정이다. 내 취향은 굉장히 독특하니 기대해도 좋다. 실제로 나는 판소리, 가곡에서부터 일렉트로닉, 헤비메탈까지 다 듣는 올라운더(Allrounder)이다. 물론 노래의 취향은 사람마다 다 다르고 추천 또한 주관적인 의견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참고 정도만 해주고 한 번씩 들어보기만 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은 그러한 일을 하기 전에, 내가 생각하는 음악이 가진 힘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쓴 글이다.



적극적으로 내향적인 성격(?)에 안식을 준 음악



대학생이 되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은근히 내향적인 성격이다. 어려서부터 웅변을 하고, 대회 나가서 상도 많이 탔었지만, 그러한 외향적인 모습으로 둘러싸인 나는 내향적인 나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성벽과 같았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굉장히 잘 떠드는 편이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상관없다. 두 시간은 거뜬히 떠들 수 있다. 대화의 방법을 안다면, 그 패턴을 뚫기는 쉽다.(물론 나에게 보통 이상의 호의를 갖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에 대해 불호인 사람에게는 이 방법이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소모하는 에너지가 엄청나다. 분위기를 주도해야 된다는 강박관념도 있을뿐더러, 대화가 끊기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도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을 만난 후에 나는 항상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말하자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나만의 바운더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보통은 주말이 나만의 바운더리가 된다. 그동안 나는 마음 편하게 온라인 상의 게임 친구들과 노닥거린다던지,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바이닐들을 듣는다던지, 낮잠을 자거나 한다. 그렇게 되면 다시 한 주를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만약 이런 과정이 없다면 그다음 한 주는 굉장히 피곤한 한 주가 될뿐더러, 내 컨디션이 말이 아니게 된다. 참 피곤한 체질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체계에서 음악을 듣는 행위는 나에게 둘도 없는 안식을 주었다. 조금씩 바이닐들을 모으면서 기분에 따라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 많아졌고, 현재는 많지는 않지만 60여 장의 바이닐들을 매일 골라 듣는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내가 원하는 곡만 들을 때가 더 많지만, 보통은 그 순간 제일 끌리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듣는다.


'맨해튼 트랜스퍼(Manhattan Transfer)'가 부른 <You can depend on me>의 흥이 절로 나는 스캣을 듣고 싶을 때도 있고, 커피를 마시면서 프랑스의 국민 가수이자 '작은 참새'로 불린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Non, Je Ne Regrette Rien>을 듣고 안락의자에 기대 쉬고 싶을 때도 있다. 조금 더 극적인 아침을 원한다면 영화 '라라랜드(Lalaland)' 오프닝 곡인 <Another day of sun>을 듣는 것도 좋다.

맨해튼 트랜스퍼 LP, 서울 레코드 페어에서 구입.
라라랜드 영화음악 [블루컬러 LP]



밋밋한 삶에서 영화의 주인공으로



자신만의 BGM을 깔아주는 것은 항상 옳다. 나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음악을 항상 틀어두는 편인데, 내가 원하는 분위기에 따라 곡들이 굉장히 많이 달라진다. 가령 새벽에 늦게 집에 들어올 때는, 차분한 밤공기 속을 걷는 나에게 알맞게 '카렌 수자(Karen Souza)'<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를 들으면서 발걸음을 늦춘다던지, 혼자 먹을 밥을 차릴 때는 '핫 에이트 브라스 밴드(Hot 8 Brass Band)'<Sexual Healing>에 맞춰 방정맞게 엉덩이를 흔들면서 밥을 차린다던지 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음악들은 일상을 좀 더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준다.

그냥 지내면 밋밋하게 지나갔을 순간 또한 영화나 드라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겨울에는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롱코트를 휘날리며 영국 드라마 '셜록(Sherlock)'<Pursuit>를 배경음악으로 달려가곤 했다. 당시 나는 '셜록'이었고, 약속 장소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였다. 나는 존 왓슨 없이 사건 현장으로 뛰어가고 있었고, 내 주변은 영국 특유의 암울한 회색 하늘을 띄우고있었다. 비는 안내렸지만 곧 비가 내릴 것도 같았다.


물론 이런 걸 실제로 할 때에는 너무 몰입한 나머지 무단횡단을 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을 툭 툭 치고 지나가는 그런 일은 절대로 없도록 해야 하겠다. 이런 것은 쿨하지 못하다.


셜록 드라마음악 LP, 배네딕트 컴버배치의 모습이 아주 매력적이다.


노래에 따라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기분을 전환시키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이러한 방법으로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는데, 립싱크를 하면서 온 방안을 헤집고 다닌다던지, 흥에 겨워 아저씨 같은 춤을 춰버리는 것이 나름 기분 전환에 효과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실제로 동영상을 찍어보니, 너무 우스꽝스러운 나머지 바보 같아 보였다.


아, 참고로 당시 들은 곡은 영화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Guardians of the Galaxy)' 1편의 엔딩에서 나무인간이었던 '그루트'가 춤을 추었던 '잭슨 파이브(Jackson 5)'<I Want You Back>이었다. 박자에 맞춰서 엉덩이를 흔들고 춤을 추다가, 반주가 약해지는 부분에서는 의식적으로 몸을 가만히 멈춘다. 그리고 다시 노래를 시작하면 흔드는 방식으로, 영화의 그루트가 실제로 춤추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이었는데 나름 재미있다. 이것을 읽는 사람도 한 번 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영화음악 LP, 과거 주옥같은 명곡들을 다시 세상으로 끄집어낸 명반이다.


집에 누가 있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못하니까, 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해도 나쁘지 않고 오히려 홀가분해지는 느낌도 든다. 대게 신나는 곡 위주로. 혼자라면 춤을 못 춰도 뭐라 할 사람은 없을 테니, 그냥 몸이 따라가는 대로 음악을 듣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활동들을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추천해 주는 편인데(실제로는 춤추는 것도 보여준 적이 있다.), 실제로 이를 통해 밝아진 친구들도 몇 명 보았고, 춤추는 것은 도저히 못하고,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항상 이런말을 했다.



도대체 이런 노래들은 어디서 듣는 거야?



나는 영화, 드라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책 등에서 노래를 듣는 편이다. 특히 나는 재즈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이 매우 컸다. 그는 재즈에 특히 능하지만, 클래식 또한 많이 알고 있어서 그의 작품을 볼 때면 항상 노래가 한 두곡쯤은 나오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소설 '1Q84'의 초반부에서 주인공 '아오마메'가 택시를 타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에서 '야나체크(Leoš Janáček)'<신포니에타 (Sinfonietta)>가 나온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소설을 읽으면 캐릭터에 집중이 잘 되게 된다.


특히 '1Q84'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난이도가 높은(읽기 힘든) 작품이라 같은 곡을 듣는 횟수가 많았다. 또 '여자 없는 남자들'에서는 엘리베이터 음악을 좋아했던 여자 친구 '엠'이 종이봉투 가득 엘리베이터 음악 카세트테이프를 담아와 잡히는 대로 틀고는 '프랑시스 레이(Francis Lai)'<13 jours en France>를 흥얼거리는 장면도 나온다.


이런 매체를 통해 음악을 접하게 되면 같은 장면을 보여주더라도 몰입도의 질이 달라진다.


음악은 리듬을 갖게 해 주고, 그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저장매체와 같다.

조금 뜬금 없는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나는 전 여자 친구랑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는 조금씩 잊혀져 가지만, 그녀가 어떤 노래를 좋아했는지는 아직까지 기억한다. 아마 그녀가 좋아하는 곡 서너 곡은 내가 늙을 때까지 머리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시간이 흘러서 그 노래를 다시 듣게 될 때, 음악이라는 매체에 압축되어있던 기억이 한꺼번에 흘러나와 온 몸을 마비시킨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우리의 몸은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당시, 즉 모든 것이 압축되었던 그때로 끌려가게 된다. 참을 수 없는 향수 속에 우리는 미소를 짓기도, 울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의 '음악'은 그 시간, 감정, 추억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 저장매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많은 음악을 듣고 기억해 둘 필요성이 있다. 앞으로 내 기억과 감정을 담아둘 그릇을 더 많이 만들고, 이 또한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음악을 들으면서 만들어낸 나의 쓸데없는 사명같은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