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울무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고 Jun 12. 2020

한강 찬가

#서울무드, 다섯 번째 이야기. 윤슬과 한강.


"물에는 참 많은 감정들이 들어있다. 시시각각 바뀌는 물결처럼, 물은 바라보는 사람의 감정에 맞추어 그 형태를 바꾸곤 한다. 그러니 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망원. Nikon F3, Kodak Ektar 100, 2020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처음 사진을 올렸을 당시에는 윤슬이라는 단어가 있는지 몰랐었는데, 한 번 그 이름을 들은 순간 머릿속에서 그 단어가 왜 그렇게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이름을 잘 못 외우는 나도 가끔씩 뇌리에 강하게 박히는 누군가를 만나면 외우고 싶지 않아도 머릿속에 남는데, 윤슬의 경우가 딱 그러했다.

 

물은 그냥 일렁일 때 보다 햇빛이나 달빛을 받아 반짝일 때 더욱 아름답다. 왜일까? 나는 각각의 일렁거림에 저마다의 태양이 깃들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 눈동자 속에는 저마다의 별이 있다고도 하지 않나. 그거랑 비슷한 맥락이지만, 개인적으로 강에 비치는 윤슬은 그 눈동자들을 모두 모아 한데 모아둔 느낌이다.


선유도. Nikon F3, Kodak Gold 200, 2020


인스타그램을 통해 윤슬 사진을 어디서 찍으면 좋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솔직히 어디든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과 지는 태양만 있다면 상관은 없겠지만 나는 항상 한강을 추천드린다.


이전에도 특별하긴 했다만, 보면 볼수록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게 한강이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한강은 내가 남산타워를 볼 때랑 같은 느낌이다. 내가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섞인 오묘한 장소다. 한강은 사랑이 피어나기도 하고, 생명이 사라지기도 하는. 무섭고도 아름다운 공간이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가 한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편에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일었다. 당장 오늘도 그 강을 건너오며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한강을 이렇게 찬양하게 된 데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영향도 있었다. 정확히는 영화에 나온 음악인 이병우 씨의 '한강 찬가'다. 노래 분위기와 가사 모두 굉장히 독특하다. 스릴 넘치면서도 코믹하고, 괴랄하면서 현실적이다. 삶의 모든 것을 담은 노래라는 생각이 들다 보니 어느샌가 이 노래를 들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한강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이 되어버렸다.  


한강 출렁이는 내 인생
한강 흘러가는 내 생명

오랜 세월 내려오는 사랑
깊게 묻어 놓은 전설
날 위해 산 아버지 눈물

오늘도 너를 따라 달려간다
너를 보고 살아간다
너를 향해 웃어본다
굳세어라 우리 한강

이병우, <한강 찬가> 中


반포. Nikon F3, Kodak Gold 200, 2020


서울에서는 큰 물줄기를 볼 일이 그렇게 자주 생기지는 않는다. 그저 내가 생활하면서 한 번씩 지나치는 한강 정도가 내가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그나마 자주 마주치는 큰 물줄기가 되겠다.


아무튼 이런 큰 강을 보고 있으면 수백 년에 걸친 이 물줄기가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흐르고 있고, 앞으로도 흐를 것이 분명하리란 걸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서부터 느끼게 된다.


거기에는 자부심도 있을 것이고, 명감銘感도, 두려움도, 허무함도 있다. 이 큰 물줄기는 끊임없이 흐르면서 몇 백 년을 사는데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 강을 바라봐야 하나 곤란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마음이 복잡해질 때는 한강에 나간다. 여러 감정들을 다 받아들이고, 새로운 답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강을 바라보면서 느껴지는 허무함으로 내가 지고 있는 문제들의 무게를 조금 덜기도 하면서. 강을 바라보는 것에 무언가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강은 나의 복잡한 감정에 맞추어 때로는 무섭게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푸근해 보이기도 한다.


아직까지 나에게 한강은 조금은 푸근한 인상이다. 힘들 때 아무 말 없이 흘러가며 마음을 다독여주는 노래와 같다. 날씨만 크게 덥지 않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바라 보고 있을 수 있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아 물 멍을 때리는 것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선뜻 시도해보기에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나,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한 번 정도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한강을 바라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른 것도 아니라 그저 한 번의 색다른 도전 정도로. 여러분들은 한강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을 가질까. 굳이 나에게 다시 말을 해 줄 필요는 없다. 다만 어지러운 마음을 두고 올 수 있는 자신만의 장소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서울무드에 나오는 사진은 하고필름(@hago.film) 인스타그램에서 나온 사진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을 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시면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서울무드> 시리즈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망우삼림(忘憂森林) 나쁜 기억을 잊게 해주는 망각의 숲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