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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너 May 20. 2022

자기중심적 사고(3)

고장 난 바이올린을 타면 깐따삐야에 간다_10

20대 초반 중국 여행 갔을 때 일입니다. 제가 시장 구경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한 중국 친구가 주말에 큰 시장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습니다. 버스 타고 조금만 가면 엄청 큰 시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친구 따라 들뜬 마음으로 시장 구경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도 시장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는 내내 친구에게 언제 도착하냐, 가까운 곳이라고 하지 않았냐 되물었습니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까운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버스로 4시간을 달려 '가까운' 시장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에서 대구 정도의 거리였지요. 마치 서울에서 가까운 시장이라며 대구 서문 시장에 온 꼴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4시간 거리를 어떻게 가까운 곳이라고 할 수 있지? 처음에는 그 중국 친구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점차 중국 대륙에 적응을 하면서, 여기저기 장거리 여행을 다니다 보니 그 친구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북경에서 상해로 17시간을 입석으로 가기도 하고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야간 침대버스를 타고 밤에 출발해서 아침에 도착하는 여행을 일상적으로 하다 보니 4시간 거리는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국은 한반도 땅 크기의 46배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저와 중국 친구는 당연히 거리의 스케일이 달랐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기준들은 상대적입니다. 보편과 상식의 범주 또한 상대적입니다. 반대로 그 중국 친구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칠 줄 안다는 것에, 집에 피아노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 너무 놀라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물었습니다. 우리 집에도 피아노가 있다고 하자 저를 엄청난 부자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한 번쯤은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고 얘기했더니 왜 다니냐고 또 물었습니다. 저의 초라한 대답은 "그냥.... 다들 다녀..."였습니다. 한국 도시 초등학생들에게 피아노 학원은 '보편적인' 것이라면 중국 시골 출신인 그 친구에게는 그 '보편'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환경, 경험, 생각을 중심으로 사물을 바라봅니다. input 값(환경, 경험)이 동일하지 않으니 output값(생각, 행동)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나를 기준으로 도움을 주면 좋은 사람, 피해를 주면 나쁜 사람, 나를 기준으로 나보다 돈이 많으면 부자, 없으면 가난한 사람, 정치적으로도 나를 기준으로 왼쪽 오른쪽이냐에 따라 진보와 보수가 나뉩니다. 이곳에서는 비도덕적인 행동이 저곳에서는 일반적인 행동이 되기도 하고, 이곳에서는 불법이 저곳에서는 합법이기도 합니다. 내 보기에 천하의 나쁜 놈이 누군가에는 착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엄청난 부자라고 생각하던 사람도 삼성 이재용 앞에 가면 동네에서 돈 좀 있는 놈이 됩니다. 나를 중심으로 할 때만 대단한 무엇이 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일들이 됩니다.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한 아주 좁고 얕은 보편과 상식을 일반화하고 사실이라고 여기고 '옳다' 혹은 '맞다'라고 생각하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많은 괴로움과 싸움이 시작됩니다.


요즘 1987~88년에 방영하던 <아기공룡 둘리>를 유튜브에서 다시 보고 있습니다. 어릴 적 볼 때는 놓쳤던 멋진 대사들과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둘리와 도우너 편에 서서 보았기에 고길동은 무례하고 나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제가 그 나이 즈음이 되어 보니 고길동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습니다. 둘리의 김수정 작가의 "둘리보다 고길동이 불쌍해지면, 너도 어른이 되는 거란다."는 말이 참 와닿습니다. 스머프에서 심술궂은 악당인 줄만 알았던 가가멜도 왜 그리 외로워 보이는지요. 나이 들면서 가장 좋은 점은 이렇게 자기중심성에서 조금씩 벗어나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는 지혜가 생긴다는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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