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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너 May 25. 2022

자기중심적 사고(4)

고장 난 바이올린을 타면 깐따삐야에 간다_11

자기중심성 해체하기


지금까지 자기중심적 사고에 대해서 이야기해봤습니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유연해지기 위한 직접적, 간접적인 다양한 접근법들이 있겠습니다만 가장 직접적인 두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물론 하나에 대한 두 방향의 관점일 뿐 도달점은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말하면 거부감을 갖거나 의심하고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말하면 '그거 누가 몰라' 하며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결론만 알고 싶어 해서 결론을 말하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해가 쉽게 되고 잘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사고의 틀 안에 있는 이야기일 때입니다. 0과 1로 구성된 이진법의 세계에서 3, 4, 5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처럼요. 3, 4, 5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진법을 버려야합니다.

자기중심적 사고의 중심에는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자기'가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나', 영어로 표현하면 ego, self 정도가 되겠지요. 내 생각의 중심, 주체 역시 당연히 나 입니다. 한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굳건한 주체이자 중심이기에 그 주체가 하는 생각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잠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생각의 주체인 그 '나'란 이 대단한 무엇이 아닙니다. 별 게 아닙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버려도 그만입니다. 생각까지 갈 것도 없이 생각의 주체를 들여다 보면 그 주체가 실은 허수아비라는 겁니다. 하지만 인간들에게 '나'는 없으면 안되는 절대입니다. 여러가지 방식으로 '나'를 아주 특별하게 생각합니다. 긍정으로든 부정으로든 의미 부여를 하고, 내 기준으로 정한 행복은 추구하고, 불행은 피하려 악착같이 달리고 또 달립니다. 허수아비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고 못나면 얼마나 못났으며  잘나고 못나고도 큰 의미도 없습니다. 허수아비가 정한 행과 불행이 무슨 객관적 진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나'라는 단어는 그저 헛개비에 불과합니다. 허수아비를 주체라 믿고, 특별하고 중요하다고 믿으면 허수아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역시 중요해집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는 말처럼 생각한다는 것이 곧 내 존재의 확실성이라고 여깁니다. 또는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말을 몇 번 더 곱씹어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생각으로서 존재합니다. 주어인 '나' 역시 생각에 포함됩니다. 고로 '나' 역시 생각일 뿐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자기+중심적+사고'라는 주제에서 '자기'라는 것이 별게 아님을 알면 '중심'도 힘을 잃습니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사고', 즉 생각은 붙어있을 곳이 없기에 그저 일어났다 사라지는 파도처럼, 피었다 사라지는 연기처럼 바라볼 수 있어집니다. 이쯤에서 사람들은 갸우뚱하기 시작합니다. 서두에서 얘기했듯이 '나'를 버릴 수 있다는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생하게 느끼고 말하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별게 아니냐, 어떻게 내가 헛개비냐는 반문을 합니다. 그 반문 자체가 '나는 사실이다' '나는 중요하다' 라는 이진법 안에서만 생각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럼 오진법, 십진법을 배워야하는가? 가장 빠른 법은 이진법을 그냥, 바로 버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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