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멸하는 축적

by 도우너

옷이 많이 없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옷이 있이면 며칠동안 계속 한 옷만 입는 편이다.

그래서인가 3년 전에 TOP10 에서 사서 주구장창 즐겨입던 청바지가 해져 구멍이 났다. 일부러 청바지에 구멍을 내고 찢기도 하니 찢어진 청바지인 샘 치고 입기엔 위치가 엉덩이라 팬티가 보인다. 그냥 버릴까하다가 너무 마음에 드는 착용감의 청바지여서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엉덩이가 반쯤 찢어진 청바지를 들고 수선집에 갔다. 사장님께서는 바지를 이리저리 살펴보시더니 그냥 버리는게 낫겠다고 하셨다. 버리는 선택지에 대한 고민을 나역시 하다가 수선하기로 마음을 먹고 찾아간 터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사장님께 진심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셨다. 수선집 사장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보다 옷의 수선에 대한 데이터도 훨씬 많을 뿐더러 옷에 관해서는 병원으로 따지면 전문의 아니던가. 사장님께서는 이 옷의 수술을 포기하시고 안락사를 결정하신 샘인데 생사의 기로에 놓인 옷을 두고 난 전문의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어떤 결정을 하기에 앞서 마음이 49대 51로 갈팡질팡할 때 확신에 찬 누군가의 조언이 내 마음을 1대 99로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이번이 그러했다.


수선집을 나와 찢어진 청바지를 가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미련없이 의류수거함에 청바지를 넣었다.

물론 시원섭섭했지만 시원함이 훨씬 컸다. 좋아하는 청바지를 하나 버렸을 뿐인데 뭔가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다.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청바지가 다신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버리고 나니 순식간이었다. 이제 나에게 더 잘 어울리는 청바지를 살 수도 있고, 새로운 스타일을 탐색해 볼 수도 있게되었다. 익숙한 것과 결별 하니 새로운 것과의 만남의 기회가 열렸다. 이 설렘이 좋았다. 사랑했지만 버려야하는 것들이 있는 법.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청바지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청바지 하나 버리고서 너무 상쾌해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는 건 내가 의식하지 못한 무언가가 더 있다는 뜻이다. 틈이 날 때마다 청바지 속에 숨겨진 감정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해진 청바지는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문득, 책상 위에 소복히 쌓여있는 몽당연필을 보며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길었던 연필이 더 이상 쓰지 못할 정도의 몽당이가 되었을 때도 나는 비슷한 쾌감을 느꼈다. 둘의 공통점을 이어보니 서서히 답이 드러났다.


집에서 엄마로서 집안일도 그렇고 책방에서 하는 일들도 단기간에 내 손에 잡히는 결과물들이 없다. 난 밤낮으로 열심히 살았는데 인풋 대비 아웃풋이 보이지 않는다. 살아가며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시간들을 인정받고 싶을 때, 축적된 결과물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땐 소멸된 결과물을 보는 것도 기쁨이 되는구나. 물체의 닳은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음을 증명하려 했던 마음. 해진 청바 지는 나에게 그냥 청바지가 아니라 몇 년간 그 옷 을 입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수천 번 반복한, 아무 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의 축적물이었다. 청바지와 나만 아는 땀의 시간, 연필과 나만 아는 생각의 시 간. 결국 헤진 청바지와 몽당연필은 나에게 노력의 훈장이었다. 몽당연필을 버리기 아쉬워서 유리병에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는데 그걸 보며 인정받은 기 분을 나는 즐겼구나... 나란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인정받고 싶어하는구나. 청바지 하나 버리고 다시 금 알게 된 내 모습이다.

keyword
이전 14화아줌마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