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우너 Dec 14. 2021

공간을 꾸린다는 것

 뭔가 있을 거 같지 않은 인적 드문 골목 어귀에 짠 하고 불을 밝히고 있는 작은 가게, 그 안에 주인장의 색깔이 담뿍 묻어나는 그런 공간을 발견하면 보물을 찾은 듯 설렌다. 대학 졸업하고 외국으로 배낭여행을 자주 다녔을 때, 일부러 여행안내책자를 들고 다니지 않았는데, 지도가 없으면 길을 자주 잃게 되고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보석 같은 공간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여행은 대부분 의도적으로 길을 잃는 행위의 반복이었다. 영국까지 가서 대영 박물관은 못 가봤지만 빈티지 장난감 가게, 작은 사진 갤러리, 헌책방들을 하루 종일 싸돌아다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가게들을 다니면서 언젠가 나도 이런 공간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그간 쌓인 부러움에 무모한 용기가 더해져 지금의 그림책방을 꾸리게 되었다. 별 준비 없이 용기와 환상만 가지고 말이다. 때론 철없는 환상이 철저한 준비보다 더 강한 추진력을 발동시키는 걸 보면 어떤 일들 도모할 때 '환상'은 꽤 중요한 준비물인 것 같다.

 

그런데 꿈꾸던 나만의 공간이 생기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으로 가득한 채워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공간으로 인해 좋았다가 싫었다가, 애증의 감정이 널을 뛴다. 옛날 드라마 중에서 <이 죽일 놈의 사랑>이라는 제목을 듣고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무슨 말인지 느낌 아니까. 내 땀과 눈물이 담긴 책방이라는 공간 역시 그렇다. 너무 사랑하지만 때론 '이 죽일 놈의 책방'이 된다.


먼저 책방이라는 내 공간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나열해보자면 무엇보다도 마음대로, 내 생각을 펼쳐볼 수 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책들을 마음껏 선택하고 소개할 수 있고 책과 관련한 다양한 모임들을 기획해 볼 수 있다. 모든 선택권이 나에게 있고 이 안에서는 자유롭게 펼쳐 볼 수 있다. (이건 반대로 말하면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말이기도...) 기획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내가 시간을 정하고 공간 사용의 제약 없이 하고 싶은 활동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다 같이 스피커 볼륨을 키워놓고 오디오북을 듣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한다. 크리스마스에는 큰 냄비에 함께 뱅쇼를 끓여서 먹기도 하고 어느 김장철에는 책방에서 흰쌀밥에 김치를 나누어 먹은 적도 있다.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의 원화전을 열기도 하고, 페미니즘 모임과 함께 사진전을 열기도 하고 때론 작은 콘서트장이 되기도 한다.  


몇 년 전, 책방 이전 공사를 하면서 기존에 하던 독서모임과 북토크를 한동안 외부에서 한 적이 있었다. 모임에 적합한 공간을 찾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대형 카페에서 독서모임을 해보니 빠른 비트의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책 읽기에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고, 우리만 쓰는 공간이 아니니 볼륨을 줄여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요즘 카페는 왜 이리 테이블이 낮고 의자가 불편한 건지. 그래서 다음엔 조용한 카페를 찾아갔는데 이번엔 목소리를 높여 토론하는 것이 눈치 보였다. 다 같이 웃음이 터질 때도 조용히 웃어야만 했다. 다음번엔 세미나룸을 빌리려고 알아보니 정해진 2시간을 지켜야 해서 시간을 넘길까 봐 초조하기도 했고 금액의 부담이 있었다. 그때 다시 한번 느꼈다. 누추하더라도 내 공간에서 복닥복닥 모여 모임을 했었던 게 참 행복이었구나...


하지만 내 공간에 대한 소중함도 잠시, 이 죽일 놈으로 변하는 것 또한 순식간이다. 공간을 오픈하는 건, 어쨌든 자영업의 세계이기에 영업시간을 정해야 하고 영업시간이 있다는 건 내가 그 시간 동안 거기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회사 생활이었다면 사장님께 어떤 핑계(?)를 대고 외근이라도 다녀올 수 있겠지만 사장도 나요 직원도 나인 곳에서 나는 외출을 할 수가 없다.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슬픈 사장님, 잘리고 싶어도 잘릴 수 없는 슬픈 직원, 그게 모두 나인걸 어떡하냐. 불특정 다수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이 만들어지니 꼼짝없이 공간에 발이 묶이게 되었다. 불가피한 볼 일이 있어 외출한 날은 어김없이 책방 앞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이때의 심정이란.....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항상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손님이건 지인이건 미리 연락을 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불쑥불쑥 찾아온다. 결국 한가한 시간이라도 내 시간에 대한 통제력이 점점 없어진다. 또한 오는 분들 역시 내 마음과 맞는 사람들만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상황들을 맞닥뜨리며 겪는 감정 소모도 적지 않다. 집안 살림도 제대로 못하는데 책방에서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의 유지 보수, 각종 수리, 주차문제, 청소 등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비용으로 다 나간다. (얼마 전 냉난방기가 고장 나 수리비를 23만 원 냈고, 누가 책방 앞 화분을 깨고 가서 2만 원 주고 새 화분을 샀다) 사람들은 책방에 손님이 없으면 조용히 책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전혀 그러지 못한다. 내 눈에는 여기저기 해야 할 일들이 자꾸 보이니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다. 결국 난 그토록 꿈꾸던 내 공간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고 덕분에 그동안 보아왔던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사장님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땐 파트너의 좋은 점만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안보이던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실은 그 단점들이란 내가 꽂혔던 장점의 뒷면이었을 뿐이다. 공간을 꾸리며 여실히 알게 되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는 걸. 나만의 공간으로 인해 좋은 점들은 내일은 나쁜 점으로 변했다가 또 다음 날엔 다시 좋은 점으로 바뀐다는 것. 사람이 내공이 쌓이고 점점 더 유연해진다는 건 결국 이 양면을 모두 수용하게 된다는 이야기 아닐까. 


처음에 딱 10평의 공간에서 책방을 시작해서 3년을 있었고 지금은 더 넓어진 23평 정도의 공간으로 옮겨 책방을 한지 또 3년이 지났다. 여전히 어떤 날은 책방을 엄청 사랑했다가 어떤 날은 엄청 미워하면서, 내년에는 꼭 문 닫아야지 하다가 아니야 죽을 때까지 해야지 하면서, 마음속으로 책방을 몇 번이나 죽였다 살렸다 하면서 책방 문을 연다. 하지만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렇게 죽였다 살리는 과정이 나와 책방을 더 단단하게 해주는 담금질이었다는 걸. 그래서 이 죽일 놈의 책방은 죽이기가 쉽지 않다.


------완결


<김영하 여행의 이유에서>

의무공간에 대한 부분

집에서 글을 책을 읽고 글을 써야지 마음먹으면 늘 그렇듯 갑자기 청소가 하고싶어지는 것이다.

일단 청소기를 돌리고 식탁 정리를 하고 빨래 돌리고 빨래 널고 한숨 돌리면 밥하고

글을 쓸 시간이 분명 있었지만

책방에서는? 책방도 나에겐 집 처럼 의무공간이 된지 오래다. 책방에 출근하면 바로 커피한잔 마시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주방을 정리하고 이것 저것 정리하고 앉아서 둘러보면 마음에 안드는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유리창에 손자국 같은거. 아  맞다. 화장실에 휴지 갈아야지.

그렇게 하고 책상에 앉으면 손님이 오네. 손님이 가고 나면 또 정리하고 이러다 보면 하루가 간다.

글은 한번도 제대로 못쓰고 6년이 흘렀다. 언젠가는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김영하의 <오래된 여행>에 보면 책에 글을 쓰기 위해서 호텔로 간다.

집은 의무 공간

호텔에는 상처로....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독서모임 정말 좋은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