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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너 Apr 24. 2022

책을 읽는다는 것

책을 좋아하다 보니 책방을 하고, 책방을 하다보니 초록동색이라고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만나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방 속에는 읽든, 읽지 않든 간에 책 한 권은 꼭 들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낀다. 20대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내가 따르던 선배들, 지금도 여전히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모두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책방에는 오는 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좋아한다'고 자처한다. 신간에 대한 정보가 그 누구보다 빠른 사람, 거리를 가리지 않고 책과 관련된 행사에 쫒아다는 사람, 책장이 터저나갈 정도로 책을 소유하는 사람, 책을 좋아해도 도서관에서만 빌려 보는 사람, 일주일에 여러 개의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사람, 책을 사서 꽂아놓기만 하는 사람,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 책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일을 하지만 누구보다 많이 읽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책을 좋아하는 형식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으니까.

 

책방을 하면서, 책을 사면서, 동시에 팔면서. 책을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제서야 새삼스럽게 던지게 된 질문이 있다.  "책을 좋아한다는 것은 과연 무얼까?"라는 아주 본질적인 의문이자 자아비판. 책을 좋아하는 행위가 순간 순간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지만 책을 통해 나(혹은 그)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변화하고자 하는가? 변화할 것인가? 이 지점을 스스로 묻는 날이 되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꼭 변화를 동반해야하는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변화가 필수는 아니다. 그리고 사람이 내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하지만 예수의 삶을, 부처의 정신을 닮아가려는 몸부림없이, 종교생활 이전과 이후의 삶에 아무런 변화없이 그저 타성에 젖어 열심히 교회와 절을 오고가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종교의 의미를 발견하지는 않는다. 마친가지로 책을 많이 본 사람이라 역시 다르구나 싶을 정도로 지혜롭고 성숙하고 말의 깊이와 울림을 가진 이가 있는 반면, 책을 많이 읽음에도 불구하고 껍데기에 머무는 삶도 있는데 책 읽는 삶의 의미를 우리는 전자에게서 발견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의 가치는 단순히 책 읽는 행위를 넘어,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의 너머에 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과 다가가보지 못했던 생각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더 내려가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건 내 세계를 확장하고 싶다는 욕구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세계를 확장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경계를 발견하고 허물어야 가능한 일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화석처럼 굳은  경계가 바로 허물어지지 않는다. 책은 경계를 발견하는데 엄청난 도움을 주지만 그것을 허물어 나의 삶이 성숙하고 확장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홍은전의 책 <그냥 사람>에 "세상을 아는 가장 안전한 방식이 독서"라는 부분에서 밑줄 긋기 싫을만큼 뜨끔했었다. 김치 담그는 법을 유튜브에서 수백번 보아도 내가 직접 해보지 않은 이상 김치를 담을 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자전거 타는 법을 책으로 아무리 봐도 실제로 타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눈물을 훔치며 로맨스 소설에 빠져들어도 현실의 내 사랑로맨틱하지 않다. 결정적으로 재테크 책을 많이 읽는다고 다 부자가 되는 건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 가만히 앉아서 편안하게 책을 읽으며 안전함에 익숙해지고 그것만으로 세상을 안다고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무수히 알을 쪼은 적이 있는지 나에게 먼저 묻는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갑자기 정치인들이 이해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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