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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집 Aug 05. 2024

퀸스 갬빗 Queen's Gambit

월터 테비스의 책을 읽고…


샤이벌 아저씨께
이 동네에서 체스 토너먼트가 있어요. 우승 상금은 100달러가 넘고, 2등은 50달러 이상이에요. 다른 상금도 있어요. 참가하려면 5달러가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요. 
아저씨가 저한테 보내 주시면, 제가 우승을 하든 다른 상을 받든 무조건 10달러를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엘리자베스 하먼




Queen's Gambit. 여왕의 수(數)란 흰색이 하나의 폰을 희생하여 중앙 공격 주도권을 얻는 전략을 말한다.

모험적이고 위험성이 따르는 이 전력은 주인공 베스 하먼을 대변한다.


결국 "우승"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쥔 베스 하먼. 그런 그 역시 다른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자아내는 시절이 있었다. 그녀는 온전한 행복을 누려야 할 유년 시절, 고아였다. 그것은 하먼이 겪는 혼돈의 시작점이 된다. 


하나의 폰을 내주어야 하는 "퀸스 갬빗" 전략처럼 하먼 역시 뜻하지 않은 상실을 겪는다.

상실 때문일까. 작품 전반에 걸쳐 베스에게 '화'는 꼬리표가 되어 떨어지지 않는다.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내면의 감정 때문에 그녀는 도움이 되는 동료를 잃고, 깊은 관계의 친구도 잃고, 체스 연맹의 신뢰를 저버린다. 그러는 술독에 빠진다. 


또 시선이 가는 부분은 신경 안정제를 남용하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그 시기 초기에는 신경안정제를 어린아이에게도 처방전 없이 투여할 수 있었다. 이후 해당 약에 대한 정책이 바뀌어 금지되었다. 하지만 그 시기 동안 중독되어 어린아이인 베스가 약통에서 약을 퍼먹는 장면은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다. 그 문제의 초록색 약은 훗날 술과 함께 주인공의 건강한 자립을 막는 방해물이 된다. 


체스는 오프닝(OPENINGS), 미들게임(MIDDLE GAME), 엔드게임(END GAME)의 순서로 진행된다. 삶의 순서도 체스와 비슷하다. 19살 베스의 승리를 비추며 끝난 이야기는 베스가 방금 막 삶의 오프닝을 끝냈음을 공표한다. 그에 반해 엔드게임은 보르고프의 길이다. 베스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검은 옷을 한 남자의 체스까지 마침내 정복하고, 그에게 따뜻한 축하를 받아낸다. 그 과정에서 '화'라는 꼬리표를 지우고 정말 오롯이 그녀 자체로 우뚝 서게 된다. 이제는 스피드 체스처럼 수를 마구 둘 차례이다. 보르고프는 '열패'라는 다음 단계의 열쇠를 받고 앞으로 엔드게임을 준비할 것이다. 엔드게임의 대가답게.


작품은 체스를 이용해 자신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베스 하먼을 보여준다. 때로는 수들이 펼치는 아름다움에 자신이 정복당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체스는 여전히 그녀가 정복할 수 있는 유일한 세상이다.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었지만 눈앞에 예순네 개의 칸이 나타났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들쭉날쭉한 흑과 백 폰의 윤곽선도 그려졌다. 그 윤곽선은 베스가 수를 둘 때마다 자라는, 게임이라는 나무의 가지를 따라 그려졌고 가지의 변형에 맞춰 계속 흐르고 움직였다. 나뭇가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베스는 몇 번 수를 두며 그 나뭇가지에서 뻗어 나온 가능성을 따라갔다. 머릿속에서 그린 전체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원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2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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