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고집 Aug 12. 2024

하고집, 북해도에서 발견되다.

홋카이도의 오타루, 삿포로 여행—

❊ 아래 글은 철저히 경험에 의존해 작성된 것으로, 실제 사실과 어긋나는 정보가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2023.02.07~02.12까지의 일본 홋카이도 여행기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저는 홋카이도 지방에서 오타루에서 2박을, 삿포로에서 3박을 보내고 왔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롯이 혼자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했는데요, 모든 일정을 나열하기보다는 인상적이었던 순간들을 위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 번째 순간,

23년 02월 08일, 오타루 거리에서.

당황은 자신감으로, 긴장은 곧 설렘으로 변한다. 

거리의 바닥은 모두 흰색 낙하물로 뒤덮여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다. 미끄러지지 않으려 발가락에 힘을 꾹 주며 걷는다. 특히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에 넘어지지 않도록 남은 발의 지탱에 집중한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든 보행자는 순백의 풍경에 곧장 매혹된다. 그의 꾐에 넘어가 시선을 완전히 옮겼을 때에는 이미 두 발이 통제에서 벗어난 뒤였다. 공중에서의 1초도 안 되는 시간은 몇 초로 부풀려져 가엾은 여행자의 부끄러움만 배가시킬 뿐이었다. 마침내!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지상과 육체는 충돌한다. 그리고 가엾은 이 여행자는 오뚝이처럼 일어나 묻은 눈도 털지 않고 그저 앞만을 향해 걸을 뿐이었다. 





두 번째 순간,

23년 02월 08일, 모스버거 2층 창가 자리에서. 

혼자 치킨 데리야키 햄버거 세트를 먹는다. 

주문을 하면서 추가한 이 조그만 플라스틱에 담긴 액체는 무엇일까. 시럽일까? 일본을 잘 아는 언니한테 이것의 정체를 묻는 dm을 남겼다. 내 옆 테이블에서는 두 명의 고등학생이 수학 숙제를 하는 듯하다. 감자튀김을 이따금씩 입에 넣으며 마주 앉은 채 눈은 문제에 고정시킨다. 내 눈은 투명한 창 너머 어딘가에 고정된다. 

하늘과 땅이 대비를 이루는 지금 이곳에서 나는 햄버거를 먹는다. 

마지막 한 입을 앞두고 radiohead의 high&dry가 가게에 흐른다. 완벽한 순간. 

당황하는 순간들은 점차 사라지고 서투른 일본어와 손짓 발짓은 자연스러워지는 하루. (용도를 몰랐던 물건은 설탕 같은 시럽이었다고 한다.)

https://youtu.be/7qFfFVSerQo

Radiohead- High and Dry





세 번째 순간,

23년 02월 09일, jr 열차 자유석에서.

오늘은 유난한 날이다. 

눈발이 거세다 못해 따갑다. 눈보라가 따갑게 치는 바람에 눈을 제대로 뜰 수조차 없다. 심지어 이상하게도 내가 가는 경로는 모두 눈보라에 맞서는 방향이다. 전진하는 나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간단히 제압하는 바람에 서둘러 가까운 곳으로 행선지를 수정한다. 거리의 사람들 모두 무형의 힘에 등 떠밀려 다니며 그들의 발가벗은 신체는 얼굴의 상체가 전부이다. 마스크의 덕택을 보는 유일한 순간일 수도 있겠다. 길을 힘들게 걷다가 잠시 공기의 흐름에 맞게 돌아선다. 이길 수 없을 땐 그에 순응해야 한다. 

오타루와 삿포로 사이의 jr 열차는 해안노선을 따라 운행한다. 이 노선은 몇십 분간 이어진다. 캡처한 지도에서 봐도 알 수 있듯이, 말만 해안노선인 것이 아니라 정말 바다와 가까이 붙어있다. 그래서 바다가 나오는 창 건너편 좌석에 앉으면 창틀에 파도치는 바다가 파노라마같이 그려진다. 맞은편 좌석에 사람들이 앉아있어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카메라는 절대 인간의 눈을 따라올 수가 없어서 제대로 찍었다고 한들 내가 그 순간 느낀 감정과 느낌을 결코 표현해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거센 날씨의 정점이라도 찍듯 바다는 보란 듯이 파도치며 거품을 일으킨다. 어느 때보다도 높이 치는 너울은 금방이라도 내가 들어있는 이 보잘것없는 열차를 집어삼킬 듯 표효한다. 이러한 몇십 분의 광경을 경험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핵심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예상치 못한, 그래서 더 귀중한 기억이다.





네 번째 순간, 

23년 02월 09일, 힘들게 찾아간 게스트하우스에서.

5-4-3-2-1 기법: 볼 수 있는 것 5가지, 느낄 수 있는 것 4가지, 들을 수 있는 것 3가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 2가지, 맛볼 수 있는 것 1가지.

--> 즉각적인 감각 체험에 정신을 집중하게 함으로써 부정적인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심리적 기법이다. 

출처: 뉴필로소퍼 2023 21호

내가 볼 수 있는 것:

1. 북극마냥 휘몰아치는 눈보라 / 2. 펭귄처럼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 / 3. 오타루역 열차를 기다리며 줄 선 사람들 / 4. 말 걸고 싶게 만드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 5. 아이패드가 알맞게 세워지는 게스트하우스의 창틀 


내가 느낄 수 있는 것:

1. 편의점에서 파는 적색 멜론이 굉장히 맛있다는 것 / 2. 웬만한 곳의 직원분들 전부가 정말 친절하시다는 것 / 3. 지하도에서 오도리역 대신 버스마에 역으로 나오면 숙소와 더 가깝다는 것 / 4. 나는 짐을 캐리어에서 꺼내 배치해 놓아야 안정감이 든다는 것 


내가 들을 수 있는 것:

1. 오타루역에서 내 질문에 대답해 주시던 할머니의 느린 음성 / 2. 도넛가게 창문을 거세게 때리던 눈보라의 소리 / 3. 맥도널드에서 숙제하며 배가 아프도록 웃던 일본 여고생들의 웃음소리


내가 냄새 맡을 수 있는 것:

1. 도넛가게 점원분의 옷에 밴 도넛 냄새 / 2. 공중화장실의 진오물 악취


내가 맛볼 수 있는 것:

1. 치킨이 들어간 수프 카레... 하지만 단연 적색 멜론이 최고긴 하다.








왼쪽은 오타루의 기타이치홀, 오른쪽은 세 번 방문했던 삿포로의 NELD COFFEE CLUB.
창틀 앞 스툴에 앉아 그린 "Sapporo, 2023". 재료는 모두 central 문구점에서 구입.
게스트하우스 방명록에 적어둔 나의 메모.



여행 내내 니체의 책을 읽다 보니 잠시동안 차라투스트라의 말투로 이야기하는 버릇이 생겼다; ^^; 

상공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으며 뒤로 기대어 있으니 바다는 인간 살의 주름 같고 대지는 인간의 혈관과 같이 보였다. 무수히 미미한 인간들과 그의 산물은 혈액이 되어 혈관 사이사이를 스스로 운반하지 않는가! (차라투스트라 빙의) 

결국 이토록 광대한 세상에서 나의 몇 년 혹은 몇 개월의 실패나 방황은 자잘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돌아가는 길이든,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쓴 길이든, 내가 선택했다면 책임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기묘한 생명으로 충만한 인간은 선택과 경험으로 완성된다. 돌아가는 길에서 더 많은 경험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기에 그 모든 선택에 정답은 없다. 

내 앞에 주어진 풍경과 머물고 있는 현재의 순간에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더욱 자신감을 갖고 무엇이든 해내야겠다는 포부와 함께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북해도 여행기를 이만 보내주며,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해요!

여행 때 유독 많이 들었던 노래를 추천드리며 갈게요! 


https://youtu.be/8Leu1GVRhSo

Dance with me  나와 함께 춤 춰요

Life is a dream 삶은 하나의 꿈이죠

We can take the reigns 우리가 이끌 수 있어요


Oh, see the moon 오, 저 달을 봐요

Nothing to fear 두려울 게 없어요

Wait for me and I'll be there 날 기다려줘요 내가 갈게요


Follow me 날 따라와요

Into the clouds 구름 속으로

Lift upon the breeze 산들바람을 타고 올라가요


Oh, those days are gone 오, 그런 날들은 다 지나갔지만

But we can remember  우리는 기억할 수 있어요

You are my memory 당신이 내 기억이에요


We all want to be seen by another 우린 모두 누군가가 봐주길 바라죠

For all we hope to be  우리가 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We never know the way we'll be brought together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될 지 전혀 알 수가 없죠

But when we are, it sets us free 하지만 우리가 함께하게 된다면, 비로소 자유로워져요

I'll wait for you 당신을 기다릴게요

작가의 이전글 안녕하세요, 하고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