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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l Jan 27. 2023

어머니를 본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시는 우리 시부모님이지만

조금씩 몸이 약해지시는 모습이

요즘 들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멀다는 핑계로 일 년에 몇 번 못 뵈니

볼 때마다 부모님의 시간이 성큼성큼 지나고 있음을

확연히 느낀다.      


우리 어머니는,

모일 때마다 아들, 딸, 사위, 손자, 손녀,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다 기억해 두셨다가는

종류별로 내놓으신다.

놓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상위엔 늘 음식이 가득하다.


정작 당신은 별로 좋아하지도 드시지도 않는 음식들을

오직 자식들 먹이려고 며칠 전부터 만들기 시작하신다.

시누들은 엄마 힘드니 음식 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한평생 이어온 사랑의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가 않다.  

    

당신 몸이 몹시 약해지시고 나서야

어머니는 두 손을 드셨다.

처음으로 시누들에게

올해는 명절에 오지 말 것을 부탁하셨다.

차마 우리에겐 오지 말라는 말을 못 하겠다며

며칠을 망설이다 전화하셨다.      


귀여운 꼬마들이 있어 받은 특혜이리라.

특혜를 받은 꼬마들은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먹고 뛰고 뒹굴며 평소처럼 놀았다.

아이들은 고유의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함으로써

할머니께 할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을 해드렸다.

고단하고 수척한 얼굴의 어머니는 환히 웃으셨다.

아이들 덕분에. 다행히.      


명절 내내 어머니를 보는 마음이 차분했다.

비교적 조용한 명절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처럼 아이들 좋아하는 반찬을 또 한가득 싸주셨다.

차 트렁크가 꽉 찰 정도로 이것저것 내어 주시면서도

늘 더 못 준 걸 아쉬워하신다.      


조용한 점심

나 혼자 식탁에서 어머니의 반찬과 마주 앉았다.

미역볶음, 멸치조림, 땅콩 볶음, 우엉조림...

하나 둘 소박한 반찬들을 꺼내고 밥을 펐다.


따뜻 한 물에 밥을 말아 한입 훅 떠먹는데

무엇인지 모를 불쑥 올라오는 감정과 함께

뜨거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또 한 번 어미를 잃을지 모른다는 무의식 속 불안인지

고생스러운 긴 생을 살아오신 노모에 대한 연민인지

머리로는 잘 헤아려지지 않는다.      


자꾸 목이매 더는 먹지 못하고

가만히 반찬만 한참 바라본다.

손주 주신다고 며칠 동안 하나하나

정성스레 만드셨을 어머니를 바라본다.      


고맙고,

감사하고,

안쓰럽고,

가엽다.      


쏟아부어주시는 당신의 기도와 사랑이

너무 벅차 나는 잠깐 정신이 아찔하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어머니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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