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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l Jul 03. 2024

꼬마 탐정단이 나타나긴 했는데...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보이지 않는다. 반납일이 내일이라는 알람 문자가 오고 나서야 일주일 전에 그 책을 빌렸다는 걸 기억했다. 궁금하고 읽고 싶었던 책이라 빌려오자마자 하루 만에 후루룩 읽고는 어딘가에 잘 둔 것 같은데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그 어딘가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책을 보고 둘만한 곳은, 안방, 아이들 방,  아니면 주방 정도인데 있을만한 곳을 아무리 찾고 또 찾아도 책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가끔 물건을 잃어버리면 나는 그 물건이 어디 숨어서 마치 나와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건은 어디론가 꼭꼭 숨어서 혹시라도 내가 다가오나 멀어지나 숨죽여 숨어있고 도통 행방을 모르는 나는 하루종일 그 물건을 찾아 헤맨다. 내가 책이라면 어디 숨어서 지켜볼까 하고 입장을 바꿔 생각도 해보지만 아, 오늘은 그래도 모르겠다. 이놈의 책은 발도 없으니 못 찾겠다 꾀꼬리를 아무리 외쳐봐야 깨금발로 나오지도 않는다. 하.. 어쩌나, 내일 반납일인데... 


보이지 않는 책과 씨름하는 사이 꼬마들이 하원했다. 저녁을 먹으며 잃어버린 책 이야기를 꺼냈더니 엄마에게 늘 진심인 아들 둘은 눈을 반짝이며 자기들이 찾아주겠노라고 큰소리쳤다. 오늘 하루종일 집을 서너 번도 더 뒤집어도 나오지 않은 책을 아이들이 찾을 리 만무하다. 귀여운 꼬마들의 마음이 고마워 그러라고 두었다. 기대도 하지 않는 나와는 반대로 꽤 진지하게 접근한다. 


어디서 본건 있다. 장난감 돋보기를 눈에 대고는 탐정으로 변신하여 나타났다. 돋보기를 들지 않은 한 손에는 이면지와 볼펜을 들고서 먼저 나를 심문하기 시작하는데 제법 탐정 같은 질문을 쏟아낸다. "책을 어디서 잃어버리셨나요? 마지막으로 책을 보신곳이 어디인가요? 어떻게 생긴 책인가요? 어디서 빌렸나요? 얼마나 큰 가요? 근데 그 책이 재밌나요?" 책을 찾는데 필요한가 싶은 질문도 있었지만 귀여워서 출동하신 탐정님들께 성실히 답변했다. 


의뢰인 심문을 마친 돋보기 탐정단은 본격적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돋보기를 내려놓고 찾는 것이 더 편하고 빨라 보이지만 탐정의 생명인 돋보기를 꼬마들은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책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야 나올 텐데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곳 -본인들 서랍, 가방, 빨래 등을 뒤적였다. 두 녀석 탐정놀이 하는 동안 편하게 설거지를 했다. 한참 후, 뭔가 둘 이 내 등 뒤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나기에 뒤를 돌아보았더니, 이 녀석들 찾으라는 책은 안 찾고 간식을 찾아냈다. 


평소 같았으면 엄마~ 이거 먹어도 돼? 아잉~ 먹고 싶은데~ 칭얼거렸을 녀석들 탐정이 되고서는 전혀 다른 화법을 구사한다.  "엄마! 내가 이거 먹고 힘내서 책 찾을까요? " 어머어머! 내가 졌다. 귀여워서 졌다. 일곱 살이 나를 이렇게 논리적으로 설득하다니!  그냥 "이거 먹어도 돼요? " 가 아니라 간식을 먹고 힘내서 더 열심히 찾아보겠단다. 어떻게 안된다고 말을 할 수가 있는가. 얼떨결에 "오케이!  하지만 과자 드시고 책 꼭 찾아주셔야 해요!" 했다. "네~ 그럼요~" 하고 여유롭게 대답한 탐정단은 과자를 들고 건넌방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뭔가 슬쩍 미심쩍었지만 정말 귀여워서 다 프리패스다.  


한참을 방에서 나오지 않기에 들어가 보니 과자는 이미 다 먹었고 기분이 좋아진 둘은 뒹굴뒹굴 거리며 놀고 있었다. "아니, 탐정님들, 과자 다 드셨으면 책 찾아주셔야죠!, 이렇게 누워계시면 어떻게요?" 과자도 다 먹었겠다, 탐정놀이도 이제 시들해졌겠다, 피곤도 하겠다, 볼일 다 본 탐정 두 분은 아쉬울 것 하나 없는 표정이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다른 건 어른뿐 아니라 아이도 똑같다고 증명이라도 하듯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아니... 엄마...책은 읽어버린 사람이 찾아야지요..."


하! 당했다. 꼬마탐정이 아니라 꼬마 먹튀다! "어머, 탐정님들~ 먹튀시네요!" 했더니 못 알아듣고 물어본다. 엄마 먹튀가 뭐야? 그마저도 귀엽다. 애초에 기대도 안 했기에 화가 나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그저 재미있는 것을 찾아내 반짝이는 눈으로 신나게 놀고, 원하는 것은 당연하듯 얻어내고,  안 되는 건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지나친다. 그렇게, 가볍게 산다! 내가 바라고 추구하던 삶을 그렇게 가뿐하게 내 앞에서 살아내고 있었다.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이서 보고 배우라고.  



다음 날, 아이들 등원 후 이면지에 눌러쓴 탐정 보고서를 발견했다. 이제 막 한글을 배우고 계시는 7살 탐정님께서 쓰신 기록이다. 어제 탐정놀이의 핵심이자 결론이다. "(책이) 가방엔 없다" 아주 명쾌하고 정확하다. 정말 가방엔 없었으니. 심각하게 고민하며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썼을 꼬마탐정을 생각하니 어제 먹튀가 생각나기도 하고 틀린 글자가 귀여워 얼굴에 또 한 번 엄마미소가 환하게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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