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이 보입니다.

아주 가끔요!

by Miel

가끔, 상대방 마음이 보일때가 있다. 고요할 때, 무언 가에 휘둘리지 않을 때 그렇다. 상대는 표면적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그 이면이 들린다. 그날도 나는 고요했고 아무런 중요성이 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아이 둘 데리고 집 근처 이비인후과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큰아이는 앞서 걸었고, 작은아이는 나와 발 맞추어 걷고 있었다. 기온은 낮았지만 햇볕이 따뜻한 평화로운 오후였다. 뒤에서 누군가 급히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방해될까 싶어, 얼른 아이를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발소리는 이내 목소리로 바뀌었다.


“검은 잠바 입은 아이 엄마시죠?”


이 삼 십대로 보이는 외소한 남자였다. 긴 앞머리 사이로 부리부리한 눈이 보였다. 냉기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본인 패딩 지퍼도 채우지 않은 채, 급히 나를 쫓아온 듯 보였다. 그제야 큰아이 검은색 외투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가 누구이고 나를 왜 불러 세웠는지 알 수 있었다.


“아까 저기 찻길에서 보셨어요?, 빵빵 소리 들으셨어요?”

“아, 네. 봤어요. 멀어서 자세히는 아니지만, 소리도 듣고, 다 봤어요.”

“얼마나 위험했는지 아세요?”


사실, 그렇게 위험하진 않았다. 아파트 입구였다. 좌회전해서 들어가려면 차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아이를 충분히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좌회전하려는 순간, 아이가 획 지나가 놀랐을 것이다. 그 놀람은 바로 화로 바뀌었고, 순식간에 그를 집어삼켰다. 분노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그는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깨어 있었다. 고요했고 아무런 중요성도 일지 않았다. 그를 휘감고 있는 거친 에너지에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무심하게 한발 떨어져 상황을 찬찬히 지켜 볼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이 보였다. 그는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나 정말 많이 놀랐다고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머나, 많이 놀라셨군요. 죄송합니다. 얼마나 놀라셨으면 여기까지 오셨어요.”


나는 보이는 그대로 그의 감정을 읽고 인정해 주었다. 내 말투에 비아냥거림이나 빈정댐은 없었다. 차분했고 명료했다. 시간이 살짝 천천히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이런 내 반응에 조금 주춤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그 화가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를 구구절절 납득시키고 싶어했다. 묵묵히 들었고 끄덕이며 이해한다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하고싶은 말을 다 쏟아냈는지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그는 이번엔 타켓을 변경해 아이에게 화살을 돌렸다.


“너는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그러고 서 있니? 듣고 있는 거니?” 지안이는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발로 애먼 땅만 툭툭 찼다.


“아유, 1학년 남자아이라 그런지 어디로 튈지 모르겠어요. 항상 차 조심하라고 하는데… 제가 다시 잘 이야기할 게요. 미안합니다.”


그는 이번엔 민식이 법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어머니, 민식이 법 아세요?”


민식이 법은 모르겠고, 그가 아직 화가 덜 풀렸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가 민식이 법을 설명하도록 차분히 시간을 더 할애했다. “그러게요, 미안합니다.” 어떤 변명이나 방어도 하지 않았다. 모든 말을 들어주었다. 나는 화가 나지도, 화남을 참지도 않았다. 이상하리 만치 나는 초연했고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이제 정말 더는 할 말이 없어 보였다. 무슨 말을 해도 내가 끄덕이며 미안하다고만 하니 계속해서 허공에 대고 발을 차는 격이었다. 마침내 모든 불씨가 모두 수그러들었는지 그는 스스로 터벅터벅 되돌아갔다. 나는 얼른 지안이에게 다가갔다. 이젠 그 상황에 놀랐을 아이를 안아줄 차례였다.


그가 돌아간 후에도, 집으로 돌아와서도, 내 마음엔 별다른 동요가 일지 않았다. 지나가는 길에 예쁘게 핀 꽃 한송이 본 것과 크게 다름없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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