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
가뭄으로 재난지역이 선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리사무소에서 문자가 왔다. '강릉시의 제한급수 시행으로 인해 우리 아파트도 불가피하게 단수를 실시합니다. 급수시간은 오전 6-8시, 오후 6-8시 (2시간)입니다.'
큰일 났다. 눈뜨니 7시 반. 물 쓸 수 있는 시간 30분. 빠른 걸음으로 식탁과 싱크대를 오간다. 블루베리를 씻어 요거트 위에 담고 땅콩을 한 움큼 올린다. 어제 쑤어둔 죽을 얼른 전자레인지에 데워 꺼낸다. 아이들 아침 먹는 동안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냄비와 국자, 수저, 그릇을 씻는다. 10분 남았다.
"지안아, 몇 시야? 5분 전에 말해줘! 엄마 머리 감아야 해~"
"응~ 근데 엄마, 나 복숭아 먹고 싶은데..."
"복숭아? 알았어 알았어."
설거지하던 장갑을 그대로 벗어놓고 냉장고 서랍에서 복숭아 하나를 꺼낸다.
"형아, 그러다 엄마 머리 못 감아~"
"아니야, 아니야, 엄마 할 수 있어! 5분 전에만 말해줘"
시간이 촉박해도 서두르면 복숭아 한쪽 먹일 수 있다.
시간과 복숭아를 동시에 쪼개 접시에 담아내고는 몇 걸음 안 되는 욕실로 냅다 뛴다.
"엄마! 집에서 뛰지 말라며~!' 작은 아이가 나를 타박하며 히죽 인다.
린스는 사치. 샴푸만 재빠르게 문지르고 두어 번 헹군다. '설마, 벌써 끊기는 건 아니겠지? 조금만, 조금만 더'를 속으로 외치며 재빠르게 세수까지 마무리한다. 머리감은 물이 걸레 담긴 대야에 고인다. 머리에 수건을 대강 두르곤 금세 의기양양하게 등장한다.
"하! 머리 감기~ 성공!"
가뭄, 재난, 비상사태 등의 근심스러운 말들이 안팎으로 오간 지 오래다. 슬슬 아이들의 마음이 걱정된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과 태도로 상황을 읽는다. 어차피 마주해야 할 일, 불평대신 유희를 택해본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귀도처럼.
가뭄을 홀로코스트에 비할 수는 없지만, 아이를 향한 부모 마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가장 불운했던 시대 한복판에서 인생이 아름답다 말한다. 저수지가 말라도, 단수가 되어도, 아이와 함께하는 나의 오늘 또한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5분 전.
"지안아, 복숭아 얼른 씻어줄게!"
굵은 복숭아 한알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씻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구호를 외친다.
"(물) 끊겨라! 끊겨라!"
"야! 너네 누구 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