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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l Oct 23. 2022

부모의 지갑은 지키는 게 아니다.

돈 쓰는 즐거움.

아이들 두 번째 한약을 지으러 한의원엘 갔다. 진료를 보고 결제를 하려는데 카드를 내미는 순간 뭔가 살짝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 내가 번 돈을 내 아이한테 쓴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구나. 참 뿌듯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구나! 우리 남편, 우리 부모님도 모두 이런 느낌이셨겠구나!     


소아과에서 계산할 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한의원은 비교적 큰돈을 내어 그런지 내가 계산을 했다는 것이 왠지 뿌듯하고 나 스스로가 참 대견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우리 시어머니 생각이 났다. 칠순이 넘으신 우리 어머니는 농협에서 운영하는 시니어 카페 바리스타이다. 하루에 몇 시간 안 되게 일을 하시고 용돈 수준의 월급을 받으신다. 


어머니는 그 푼돈을 돈을 차곡차곡 모아 명절마다 우리 아이들 옷을 사주신다.      


어머니 댁을 가면 맛있는 밥을 한 상 가득 차려주시고는 바로 아이들 옷을 사러 나자고 하신다. 남편과 나는 어머니 돈 쓰시게 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에 매번 괜찮다고 사양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니~ 이러려고 버는 거지~ 우리 손자들 옷 사주려고~" 

하고 결국 옷을 사주시고 당신이 더 신나 하셨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아이들 새 옷을 사주실 때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셨는지를. 


당신이 버신 돈으로 바라만 보아도 웃음이 절로 나는 손주들에게 철에 맞는 예쁜 옷을 사주실 때의 그 뿌듯함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듯한 그 기분 좋은 느낌을 이제는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에는 어머니가 옷 사러 가자고 하시면 오래 사양하지 않고 얼른 감사하게 따라나선다. 그리고 이렇게 인사한다. 


"어머니~ 매번 이렇게 옷 사주 셔서 너무 귀하게 잘 입고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한동안 또 참 잘 입힐 것 같아요. 감사해요! "

     

실제로도 그렇다. 우리나 아이들이나 거의 필요한 수준의 옷만 가지고 있고 옷을 거의 사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가끔 어머니가 선물해주시는 옷은 정말 귀하다. 그리고 참 잘 입힌다.      


부모님 마음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이 바로 효도라 생각한다. 손주들 옷 사주고 싶어 하시는 걸 사양해서 어머니 지갑을 지켜드리는 것이 효도가 아니라 당신이 버신 돈으로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한발 비켜서 있는 것.  


새 옷을 사주고 뿌듯한 마음을 한 번 더 느끼실 수 있게 못 이기는 척하고 얼른 따라나서는 것. 그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기억하는 것. 이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한다. 

 

남편에게 이야기해주었더니 남편도 끄덕끄덕한다. 그래서 이제는 남편도 

"엄마~ 됐어~"라고 말하는 대신, 

"엄마~ 고마워요"라고 말한다.

      

그 쉬운 효도를 우리 엄마에겐 많이 하지 못한 것 같아 참 아쉽다.      


몇 해 전 엄마와 유원지에 갔을 때 엄마는 저 멀리 있는 아이들 장난감 파는 곳을 발견하고서는 아이들보다 먼저 비눗방울 총을 사자고 하셨다.      


"아니야~ 엄마~ 저거 집에 있어!"     


나는 그때 마트보다 몇 배 비싼 가격과 또 한두 번 쓰고 버려질 장난감 쓰레기만 보였다. 엄마의 마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딸은 엄마 앞에서 왜 그리 쉽게, 자주, 오지랖인지.)     


그렇게 나는 엄마 지갑에서 이 만원을 지키고 돈으로는 살 수도 없는 그 순간 엄마의 기쁨을 빼앗았다.  


그때 내가 "고마워요 엄마~"라고 했더라면... 아니 가만히라도 있었다면, 엄마는 아이들에게 비눗방울 총을 사주시고 내심 뿌듯하셨을 것이다. 


비눗방울로 신이 난 아이들보다 그 모습에 더 신이 나 한번 더 크게 웃으셨을 것이다. 그 기회를, 이젠 정말 다신 없을 그 기회를 나는 기회인 줄도 모르고 날려버렸다. 엄마의 지갑을 지켜드린다는 아주 짧고도 얕은 생각으로 말이다. 






내가 어릴 적에 엄마가 읽어줬던 동화책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어느 시골에 노모를 모시고 사는 효심이 깊은 아들이 있다고 하여 어떤 사람이 찾아갔다. 노모는 쭈그리고 않아 일하고 돌아온 아들의 발을 씻겨주고 있었다. 찾아간 이가 의아해하며 아들에게 물었다. 


당신은 소문난 효자라고 하던데 어떻게 어머니가 발을 씻겨주시는데 이렇게 가만히 앉아만 있는 거요? 

그가 답했다. 


"저는 단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을 하게 해 드릴 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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