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의기억 Jul 20. 2023

깨진 이를 들고 치과에 갔다

아픈 건 아픈 거다

카페에서 글을 쓰면서 샌드위치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우물우물 빵을 먹고 있는데 무언가 딱딱한 것이 같이 씹혔다. 먹던 것을 뱉어 확인하자마자 아차, 싶었다. 작년에 충치치료를 하며 씌운 것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하던 것을 정리하고 부리나케 치과로 향했다. 결혼을 하며 새로 이사 온 동네라 아는 곳은 없었고 남편이 얼마 전 검진 겸 스케일링을 하러 다녀왔던 곳이 생각났다. 치과는 카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실은 며칠 전 딱딱한 음식을 씹다 이에 통증을 느꼈었다. 별 것 아니겠지, 통증이 또 오면 그때 병원에 가봐야지, 하고 미뤘다. 그렇게 미뤄 병을 얻었으면서 또 같은 일을 반복한 것이다.


언젠가 학부시절 교양수업 시간에 들은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몸 안의 피를 전부 바꾸지 않는 이상.


암진단을 받고 난 뒤 생활습관이나 태도를 바꾸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런 의지가 조금씩 흐려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를 바꾸는 것은 어렵고 다시 돌아오는 관성은 두렵다. 생각해 보니 요즘 운동도 좀 게을리했고 빵도 자주 먹은 듯하다.

수술 후 선생님이 가리지 말고 먹고 싶은 것 다 먹으세요, 라고 말하셨지만 아마 이런 걸 먹으라고 한 건 아니겠지…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이건 좀 심했어,라는 스스로의 자기반성과 함께 치과로 향했다.


초진이라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연락처 등을 적어 넣었다. 데스크에서 접수를 봐주시는 분이 입을 한 번 아, 벌려 보라고 해 아, 하고 벌렸더니 아프지 않았느냐며 놀랐다. 꽤 뒤에까지 치아가 깊숙하게 깨져 있다고 했다. 깨진 부분을 티슈에 싸서 갔는데 꺼내지는 않았다.


따로 드시는 약물은 없으시고요?

병원에 가면 으레 듣는 말이었는데 암환자가 되고 난 뒤에는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방사선이나 항암을 하고 있지 않으니 말할 필요는 없겠지?(없다) 싶으면서도 혹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면 어떡하지?라는 작은 불안 속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없다고 대답은 했는데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러는 사이 엑스레이를 찍었고 진료의자에 앉아 선생님을 기다렸다. 곧 내 옆으로 온 선생님이 화면에 띄운 엑스레이를 보며 현재 내 치아의 상태와 치료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기존에 떼웠던 보철물이 떨어졌고 충치가 신경과 너무 가깝게 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신경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신경치료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굉장히 아프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아 바로 긴장이 되었다. 그러다가도 복강경 수술도 했는데 이쯤이야! 하면서 용기를 내보았다. 그러나 그런 용기가 무색하게 치료 도중 손을 번쩍번쩍 들며 아프다고 엄살을 피워야만 했다(시리긴 했다). 몸에 힘을 풀라는 얘기도 여러 번 들었고 보조해 주시는 치위생사 선생님이 조용히 손을 꼭 잡아주기도 했다. 치료가 끝나고 나니 4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다음 주 2차 신경치료를 예약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아픈 건 아픈 거다.


내가 암이라고 했을 때 친구 중 하나가 “너는 앞으로 더 단단한 사람이 될 것 같아”라고 했다. 그때 나는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아직은 먼 것 같다. 과거에 더 아팠던 경험이 있든 없든. 아픈 건 아픈거다.

작가의 이전글 암밍아웃에 대하여(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