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징표
가족들과 여름휴가로 베트남에 다녀왔다. 매일 호텔 앞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마사지나 네일아트 등 한국보다 저렴한 물가로 매일 즐길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좋았던 건 열대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중에서 망고스틴은 내가 어릴 때 동남아에서 처음 맛본 뒤 동남아에 올 때마다 매일 사 먹게 되는 과일이 됐다. 저녁이면 손에 망고스틴 한 봉지를 들고 호텔로 들어온다. 망고스틴은 잘못 까면 빨간 즙이 호텔 침대나 수건에 쉽게 물들을 수 있기 때문에 묻지 않게 잘 먹어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손으로 잘 까지는 것도 있는데 가끔 정말 단단한 껍질을 가진 것도 있다. 그걸 까겠다고 억지로 누르고, 껍질을 뜯다 보면 내 양손 엄지가 즙에 젖어들고 결국 다 까지 못하고 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때 물들어 버린 내 손톱은 한국에 돌아온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못생기고 얼룩덜룩하게 묻어버렸지만 문득 이것이 여름의 징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망고스틴은 끝내 못 먹는 일도 있는 것처럼, 내 여름이 내게 남기고 가는 게 물들어버린 손톱뿐이라고 해도 먹고 싶으면 까봐야지.
여름은 매년 돌아오지만 왜인지 매번 마지막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느 때보다 밀도가 높은, 마지막 여름방학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