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빗줄기를 내려놓듯
고요한 빗소리는 없다는 점에서 빗소리는 음악성을 지닌다. 창문 옆에 가만히 기대어 앉아있다 보면 창에 부딪히는 빗줄기의 진동이 전달되어 오고, 그렇게 빗줄기는 그들만의 리듬을 형성하며 음악을 들려준다.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빗소리는 구름이 만든 노래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열아홉 여름, 그날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입시를 코앞에 둔 나는 서울의 학원에 가는 길이었고, 언제나처럼 버스 오른쪽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만 그날은 노래 대신 빗소리만 듣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는 것도, 쥐고 싶은 것도 많아서 삶이 버거울 때, 내 작은 그릇만 탓하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언젠가부터 쉬지 않고 내리기 시작한 이 비는 도대체 나에게 무얼 말하려고 이러는지 생각했었다. 더 이상 하늘에 공격할 마음도 반항할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던 내가 그 여름, 습한 버스 안에서 생각해 낸 답은 내려놓으라는 것이었다.
구름이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으니 이 땅이 숨을 쉰다. 생명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가벼워진 몸으로 다시 바람을 타고 나아갈 수 있다. 구름이 빗줄기를 내려놓듯 너도 마음에 쥐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숨 쉴 수 없었다. 나는 물론 나를 둘러싸는 모든 공간이 숨 막히는 세상이었다. 노래를 만드는 이가 가져야 할 마음 그 반대의 무언가를 잔뜩 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나도 모르게 어깨에 먹구름을 지고 산다. 얼마나 무거워졌는지 깨달을 때면 어김없이 비가 먼저 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꼭, 창밖에도 비가 오고 있었다.
나의 몫이 아닌 것.
모두 쥐고 갈 수는 없는 노릇.
놓아주고 덜어내야만 숨을 쉴 수 있다. 커갈 수 있다.
그렇게 구름은 비를 놓아줌으로써 소리를 완성한다.
작품을 완성하는 것도, 내 삶도 다를 것이 없다는 걸.
사월의 봄비가 또 한 번 일러주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