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가볍게, 마음은 풍족하게
나는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건들이 매끄럽게 제자리를 맡아 있는 모습을 보면 산만하던 내 마음도 정돈되는 것 같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정리를 좋아하는 나도 두 번의 한국에서의 이사와 해외이사로 이어진 짐정리는 버거웠다. 서울집에서 친정으로, 다시 미국으로, 한국에서 돌아온 짐이 최종 미국집에 정리되기까지 총 4달이란 시간이 걸렸다. 4달 동안 가지고 있던 모든 자산을 해체하고 재배치하는 과정을 거치며 느꼈던 마음을 기록해 보고려 한다. 몸은 가볍게 마음은 풍족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기록해 보았다.
서울에서는 24평 20년 된 아파트에 세 식구가 살았다. 그러다 보니 수납공간이 부족해서 자연스럽게 최소한의 물건만 가지고 살았다. 미니멀리즘이라는 게 유행하기 전부터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딱 세 식구가 필요한 만큼 집 안에 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온 집안을 뒤엎어 짐정리를 하다 보니 삶의 군더더기들이 군데군데 흘러나왔다. 해외 이사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남편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비용 이상으로 오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만 고르고 버리고, 다시 정리하기를 반복했다. 한국에 보관할 짐, 미국에서 쓸 짐, 그리고 미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울 것 같은 것들을 새로 구매하여 넣은 짐.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하여 짐을 사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들게 미국에 왔는데 막상 미국집에 와보니 집은 텅 비어있었다. 한국에서 부친 이삿짐은 두세 달이나 있어야 미국에 도착한다고 했다. 짐이 도착하기 전에 최소한의 물건만 가지고 살다가, 두세 달 만에 미국집에 짐폭탄이 떨어졌다. 그야말로 폭격을 맞은 것 같았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스페니시 아저씨들이 신발 신은 발로 성큼성큼 집 안에 들어섰다. 곧 둘째 아기가 태어날 거라 물걸레 청소기로 수십 번을 돌려 깨끗하게 만든 바닥인데 단번에 집 안은 흙 묻은 신발로 더러워졌다. 태평양 바다를 건너 몇 달을 LA 해안에서 둥둥 떠있었을 우리 짐들은 그렇게 덩그러니 집에 놓였다.
인건비가 비싼 미국에서는 한국에서와 같은 포장 이사를 기대할 수 조차 없다. 부피가 큰 가구는 스페니시 아저씨들이 방마다 잘 옮겨주셨다. 이제 남은 건 엄청나게 쌓여 있는 짐박스 들이었다. 직접 상자 120여 개를 풀고 정리하는 대대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당시 나는 출산을 한 달 앞둔 만삭의 상태였다. 남편이 출근한 사이에 6살 아들은 상자 사이를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나는 짐을 푼다고 정신이 없었다. 상자에서 짐을 꺼낼 때마다 허리를 숙였다 펴야 했는데 배가 무겁다 보니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내가 왜 이렇게 많은 짐을 이고 지고 살았나, 박스를 풀 때마다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정리할 것'들을 보며 탄식을 뱉어냈다. 다 버리고 싶다는 마음을 꾹꾹 누르며 하나씩 박스를 풀어나갔다.
한국에서 이삿짐을 쌀 때 이미 많은 물건들을 정리해서 보냈지만, 박스를 풀다 보니 또 버릴 물건들이 계속 나왔다. 미국에 가면 없을 거라 생각했던 한국 조미료, 한국 학습지 등은 알고 보니 미국에 다 있었다. 내가 왜 이걸 미국까지 싸가지고 왔나 싶은 것들도 줄줄이 나왔다. 그 많은 짐을 어떻게 이 집에 다 욱여넣을까 걱정했지만 차근차근하다 보니 결국 다 정돈이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짐정리를 하고 나니 어느 정도 집의 구색이 갖춰졌다. 텅 빈 공간이 거실, 안방, 그리고 아이방 순서대로 그렇게 '사람이 사는 집'으로 만들어져 갔다.
그런데 아이방을 정리하면서 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버리면 그만인 내 물건들과 달리, 아이의 물건 정리는 조심스러웠다. 정리 전에 짐만 대충 넣어 둔 아이방을 쓱 둘러보았다. 곳곳에 나의 욕심이 보였다. 쌓여있는 학습지와 책에서는 공부에 대한 나의 욕심이, 정리되지 못한 옷에는 남에게 내 아이가 말끔해 보였으면 하는 나의 욕심이, 점점 늘어가는 장난감에는 혼자 좀 놀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보였다. 쌓아였는 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욕심들로 보이자, 이걸 좀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쓸 것 같지 않은 학습지와 잘 읽지 않는 책들은 모두 버리거나 창고 깊숙한 곳에 넣어버렸다. 읽지도 않을 전집을 나는 왜 그렇게 많이 샀었을까. 그건 다 내 욕심이었다. 매일 해야 하는 학습양을 확 줄이고 대신 혼자 책 읽기를 목표로 한글과 영어 리딩 공부는 꼭 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차피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 공부에만 너무 시간을 쓸 수 없을 것이었다. 이럴 때 보면 둘째를 낳은 것이 오히려 첫째에게는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둘째가 없었다면 나는 첫째 공부에 더 집착하고 오히려 아이가 공부에 거부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의 장난감들을 정리했다. 플라스틱 장난감은 사준 직후에만 잘 가지고 놀고, 금방 아이가 질려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장난감을 잘 사주지 않았는데, 주말부부를 하면서 혼자 노는 것이 애처로워 보여 하나씩 사주게 된 플라스틱 장난감들이 아주 많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팔 하나, 다리 하나 부러진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엄마의 손길과 아빠의 관심을 대체해 온 장난감들이 슬프게 보였다. 내가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자연물로 아이와 더 놀아주고, 오히려 책을 더 많이 읽어주었을 텐데.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었을 소중한 시간을 당장 돈으로 해결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을 내려두는 정리를 하고 나서 이제 채울 것들을 생각했다. 하얀 벽에는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가 그린 것들을 하나씩 붙여 두기로 했다. 사실 깔끔한 걸 좋아하는 내 성미에는 맞지 않은 일이다. 아이는 A4용지를 수북이 쌓아놓고 계속 그림을 생산해 낸다. 학교, 학원에서 활동하고 가져오는 각종 프린트, 그림들도 매일 쌓여있다. 나는 이것들을 며칠 모아두었다가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곤 했다. 그런데 이걸 아이가 모를 리 없다. "엄마! 또 버렸어??" 어느 날 아이가 갑자기 자기가 그렸던 그림을 찾으며 나에게 쏘아붙이며 말했다. 아이가 그린 그림을 쓰레기로 취급하는 엄마는 되지 않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랍 한 칸을 그림 모아두는 곳으로 정하고, 벽 한쪽 정도는 아이가 스스로 꾸미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서랍장 한 칸은 빈 상자를 두었다. 아이에게 여기에 쓰지 않을 것 같은 장난감, 책은 모아 두라고 했다. 오랫동안 외동으로 자라서 자기 물건을 타인에게 나누는 걸 어려워하는 아들에게 '나눔'의 의미를 알려주고 싶었다. 나중에 다른 친구에게 줄 물건을 두라고 했는데, 아직까진 빈 상자로 남아있다. 언젠가는 엄마의 뜻을 아들도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오겠지.
마지막으로 거실 한편에는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만들기 도구함, 그리고 만들기 재료들을 모아 둔 상자를 뒀다.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고 난 후에 아이는 꼭 그걸 그림으로 그리거나, 생각난 것을 만들고 싶어 했다. 자유롭게 상상을 펼치며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은 좋으나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하는 것은 싫었기에 타협점을 찾은 것이 이 모양이다. 좀 더 자유롭게 집안을 어지럽히며 놀면 아이가 더 좋아하겠지만 다 같이 사는 집이니 나도 최대한 양보한 것이다.
미국에는 가라지(garage: 차고) 문화가 발달해 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가라지에 각종 전자제품을 분해, 조립했다는 스티브 잡스, 가라지에 영화 스튜디오를 차렸던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말이다. 우리 아들이 이들처럼 천재는 아니지만 스스로의 역사를 쌓아갈 수 있게 공간을 내어주는 것은 중요할 것 같다. 이런 여유 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엄마의 욕심을 비워야겠지.
아들의 그림을 북북 찢어버린 종이더미 뒤에 남겨진 자리가 황폐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방치되지는 않도록 윤기 나게 쓸고 닦으며 빈 공간을 채워 나가고 싶다. 비우기는 버리기가 아니라, 제대로 채우는 데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