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를 울린 한마디

40시간 정전을 버티며

by 엠마

결국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시작은 문자 한 통이었다. '밤새 괜찮았어요?'라는 미국 지인 분의 한마디. 남편이 일주일 출장으로 집을 비운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지난밤엔 역대급 폭풍으로 산호세 지역 전체가 정전이 됐다. 나는 6개월 된 딸과 7살 아들을 데리고 칠흑 같은 어둠과 추위 속에서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날씨 좋은 캘리포니아라는 말이 무색하게 요즘 날씨가 이상했다. 3월이면 끝난다던 우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거센 바람으로 정전도 잦았다. 두세 시간 이면 복구되던 때와 달리 이번 정전은 24시간이 지나도록 복구가 되지 않고 있었다.


히터를 틀지 않으면 밤공기는 매섭게 차가웠다. 미국은 한국처럼 온돌 바닥이 아니라 히터로 공기를 데운다. 정전으로 히터가 돌아가지 않자 온 집안이 냉골이었다. 차가워진 공기에 어린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릴까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바싹 긴장한 상태로 밤을 보냈다.


지인 분은 밤새 어린아이들과 내가 무사했는지 진심으로 걱정하셨다. 그리고 오늘밤은 꼭 자기 집에서 자라고 하셨다. 나는 덜컥, 그 손을 잡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 둘째가 뒤집기를 시작하면서 밤에 자주 깨 울곤 한다. 그 댁에 가면 민폐가 심할 것이었다.


한편, 나는 뻔뻔해지고 싶었다. 며칠 전 넷플릭스에서 본 <더 글로리>의 박연진처럼 폐 끼치고도 뻔뻔하게 고개 들며 또각또각 걸어가고 싶었다. 그녀는 고약한 과거의 악행이 밝혀졌음에도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썩소를 날리지 않았나.


하지만 낯선 집 거실에서 아이 둘을 껴안고 숨죽이며 잠을 청할 생각을 생각을 하니, 절로 고개가 가로저어진다. 끝내 그분의 손을 잡지 못한 건, 고군분투하는 쌩 육아의 현장과 지리멸렬한 내 모습을 애써 들키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밤새 이어진 정전에 황망한 정신을 겨우 붙잡고, 아침 일찍 첫째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난 직후였다. 부감 갖지 말고 언제든 연락 주라는 따뜻한 문자에 차마 답을 하지 못한 채,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계속 한밤중에 깨는 아기 때문에 잠을 못 자서 인 지, 못다 한 문자 답장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운전을 하면서도 자꾸 딴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차사고 라도 나면 나는 결국 그분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 상황이 나의 최악일 것이다. 사고가 나면 보험사와 상대방에게 나의 상황을 영어로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약 40년 간 한국어로 나의 자존감을 쌓아왔다. 하지만 미국에 오니 모든 것이 거품이다. 내가 한국에서 무엇을 했든, 어떤 인정을 받았든 과거는 다 지워졌다. 미국인 눈에 나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위험할 수도 있는 외국인일 뿐이다. 지금 내 영어 말하기 수준은 4,5살 정도, 그나마 나은 읽기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이다. 나는 내 영어 실력에 사유 능력까지 꿰맞춰버렸다. 자존감이 사라지니 못난 자존심만 자꾸 뾰족해진다.




그 전날 태풍이 부는 날 아침에도 영어 때문에 자존감이 무너졌었다. 그날 나는 거센 바람을 뚫고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있었다. 나는 둘째를 품에 안고, 바람 때문에 비가 전혀 막아지지 않는 우산을 겨우 든 채, 첫째와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밤새 깨다 말다 한 둘째가 겨우 차에서 잠들었기에 다시 깨우고 싶지 않았지만 차에 혼자 둘 수는 없었다.


그런데 내 앞에 주차한 어떤 학부모가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나는 또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 흑인 악센트는 더욱 알아듣기가 어렵다. 아이가 너무 추워 보인다고, 차에 두고 있으면 자기가 보고 있겠다고 말한 것 같다. 나는 바람이 거세서 차가 더 위험할 수 있다, 춥더라도 잠깐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겨우 'It's okay'.


나는 미국에 와서 영어를 잘 못 알아들을 때, 얼굴에 미소를 띠며 'It's okay'라고 말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러면 대부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말을 할 때 대게 나는 'It's okay' 하지 않다. 사실 'It's okay'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괜찮지 않은 나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고 싶다. 하지만 그 절박한 마음에 비해 내 영어실력은 너무 천진난만하다.




다행히 사고를 내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안부 문자를 보낸 지인 분에게 정말 괜찮다고, 댁에서 잠을 자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답장을 보냈다. 자존심 때문에 선의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만약 이러다 아이가 감기에라도 걸린다면 나는 내 자존심 때문에 아이를 아프게 했다는 사실로 괴로우리라. 나는 내 자식보다 알량한 내 자존심이 더 중요한 걸까. 소파에 털썩 앉아 끝내 어깨를 들썩이고 말았다.


다음 날 새벽 3시. 40시간 만에 전기가 들어왔다. 온 집안이 일순간 밝아졌다. 냉장고 돌아가는 웅웅 거리는 소리가 벌새의 날갯짓처럼 반가웠다. 전자기기들이 돌아가는 소음 속에서 집 안의 온기가 돌아왔다. 그날 아침부터 거짓말처럼 날씨가 다시 좋아졌다. 쨍쨍한 햇빛 아래,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꺼놓았던 핸드폰을 충전하고 전원을 켰다. 학교에서 여러 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오늘이 학교에 대한 설문조사 마지막 날이니 꼭 참여해 달라는 문자였다. 평소라면 영어로 된 문자를 한국어로 자동 번역해 읽었겠지만, 이번엔 영문 그대로 읽었다. 문장 하나하나 똑바로 읽고 되뇌었다. 문자 마지막에는 교육청에서 제시하는 3가지 교육 목표가 쓰여 있었다.


'본 학군은 학습 격차를 해소하면서 모든 학생의 성공 수준을 높입니다. 직원, 학생, 학부모 및 지역사회와의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보장합니다. 모든 교육과정과 활동에서 성별, 인종, 국적, 태어난 나라, 종교, 젠더로 인해 차별받는 것을 금지합니다.' 나에게 하는 말 같다. 나는 교육으로 언어를 되찾아야 한다. 나를 새로운 언어로 제대로 설명하여, 인종국적 차별 없이 커뮤니케이션하고 성공 수준을 높이고 싶다.


잘 알아듣지 못해, 혹은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 못다 했던 말들이 생기면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영어로 다시 써보고 그 문장들을 외운다. 다시 그 상황이 왔을 때는 똑바로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이렇게 되찾은 언어로 자존감의 성을 재건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나를 염려하는 마음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것이다.


차 사고가 나더라도 스스로 영어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분의 손을 섣불리 잡았다가 계속 부탁만 하는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내가 타인에게 폐를 끼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어야, 친절한 사람들의 마음을 오롯이 받고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그분은 내가 보답하길 바라고 도움을 주려고 하신 게 아닐 거다. 그럼에도 나 역시, 도움에 보답하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무거울테다. 이런 내가 답답하지만 어쩌겠나. 이게 나 인걸. 뾰족한 자존심을 앞세우고 무너진 자존감을 애써 감추고 있는 나 자신을 다독여 본다. 내 방식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해 보기로. 그렇게 위축된 나 자신의 구김을 조금씩 펴내고 싶다.






정전 이틀 째. 가스버너에 모카포트로 뽑은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붙잡았다. 핸드폰 전원이 없어, 오래된 아이폰으로 겨우 남겨둔, 유일한 정전 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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