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평범한 엄마 A의 퍼스널브랜딩

퍼스널 브랜딩을 못한 긴 변명

by 엠마

본 글은 테이크루트와 함께하는 바라다 글쓰기 부트캠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바라다 글쓰기 부트캠프는 미국 서부 기준으로 새벽 5시-7시에 온라인으로 만나 글쓰기 시간을 가지는 모임입니다. 이번 달에는 수익화 글쓰기의 토대가 되는 퍼스널 브랜딩에 대한 주제로 글을 써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회사 상품의 마케팅은 고민해 봤어도, 제 자신에 대한 마케팅은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위한 마케팅인지, 마케팅을 왜 해야 하는 것인지부터 시작해 물음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브런치에 썼던 글과 반복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퍼스널 브랜딩을 놓치고 산 긴 변명 같기도 합니다. 그저 지금 제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을 정리해 써보았습니다.




요가 동작 중에 ‘욷티타 하스타 파당구쉬타’라는 자세가 있다. 한 다리로 서서 다른 쪽 다리의 엄지발가락을 들고, 손을 다리를 당기고 발은 손을 차내서 힘의 균형을 만드는 어려운 자세이다. 나는 처음 요가를 시작했을 때부터 이 자세를 쉽게 해냈다. 유연성과 힘 모두 부족하지만, 균형감각이 필요한 자세는 의외로 쉽게 해냈다. 요가 선생님은 내가 발란스가 좋은 몸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요가 수련을 계속하면서 발란스가 좋은 몸이라는 건 또 다른 의미로 팔다리가 짧다는 것이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중심부가 길어서 발란스는 잘 잡지만, 어디론가 뻗어내는 자세는 어려웠던 것이다. 두 번의 출산 후 점점 둥그러져 가는 나의 체형도 한몫했을 거다.


되돌아보면 나는 내 삶도 항상 둥그런 모양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어디 하나 모난 구석 없이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 믿었다. 동그라미는 한 중심점으로부터 거리가 같은 수많은 점들의 집합이다. 나는 육아, 회사, 자기 계발, 남편, 부모님 등의 수많은 점을 팽팽하게 당겨 동그란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아침저녁 마포역과 광화문역을 오가며 남편 없는 육아와 회사일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새벽 요가와 저녁 독서를 꼭 하면서 어떤 것 하나 놓칠 수 없다며 꼭 붙잡고 살았다.


그러다 갑자기 안간힘을 쓰며 잡고 있던 점 하나를 놓치고 말았다.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었던 것이다. 계획하지 않았던 둘째 임신으로 인해 육아휴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 아들을 낳고 2년 육아휴직 후 다시 복직하여 겨우 안정된 회사 생활이었다. 고생하여 '내 자리'로 만든 곳을 벗어나야 한다니,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고민 끝에 이 기회에 미국으로 가자 하여 남편 미국 주재원에 따라나섰다.


나는 회사에서 유무선 결합 요금제 만드는 일을 했다. 핸드폰, 인터넷, tv, 전화 등 각 상품을 번들 하여 고객에게 할인을 제공하면서도, 회사에는 수익을 가져다줘야 한다. 이미 세상에 나와있는 수많은 결합 요금제와 비슷하면서도 새로워야 하고, 가입하기 쉬우면서도 해지하기는 적당히 어려워야 한다. 고객과 회사의 그 오묘한 저울질 속에 통신사 요금제가 만들어진다. 한번 균형이 잡히면 회사는 수익을 내기 위해 그 수레바퀴를 세차게 굴린다. 나 역시 그 수레바퀴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게 돕는 톱니 중 하나였다. 그런데 '미국 주재원의 부인'이라는 수동형 명사로 내 인생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거세게 굴러가던 수레바퀴 아래로 내려온 것이 내 인생에 어떤 변곡점을 가져다줄까. 내가 안간힘을 쓰며 그리고 있던 동그라미들이 사실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작은 네모판 위에 올려진 팽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템포 쉬면서 멀리서 바라보니 동그란 형체는 보이지 않고, 작은 점일 뿐이다. 나는 회사에서 승진만 바라보며, 나 자신을 한정된 영역 안으로 경계 지어 버렸던 건 아닐까.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던 줄이 탁 하고 끊어져 버린 것 같은 지금, 나는 무척 불안하면서도 자유롭다.


치열하게 회사와 집을 오가며 묵묵히 버텨내는 것이 답이라 생각했다. 나 이외의 것들은 모두 구속하고 압박하려는 타자라고 생각했고, 그 속에서 나는 나 자신임을 잃지 않기 위해 버텨낸다 생각했다. 그러나 나를 압박시키는 불편한 것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이다. 사실 나를 짓누르는 것은 없었고 그 무엇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작은 점이다. 그 작은 점들의 궤적이 모여 내 우주를 창조해 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새벽 요가를 한다. 1분 명상을 하고, 기본 수리야나마스카라를 8번 반복한 후에, 가장 못하는 자세부터 반복해 연습해 본다. 평생 균형을 잡으며 살아왔기에 어느 것 하나 특출하게 내세울 것은 없지만, 그 발란스 감각만큼은 내 퍼스널 브랜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나는 점 하나가 사라진 찌그러진 동그라미이지만, 중심축은 여전히 나로 잡혀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가운데에 세워 놓을 수 있다. 안 되는 뻗어내는 동작을 반복해 연습해 보면서 나도 어디로 갈지 모를 그 미지의 세계를 응시해 본다.




같이 글을 쓰는 모임의 회원 중 한 분 께서, 제 글을 보고는 달항아리처럼 완벽한 동그라미 보다 찌그러진 동그라미가 더 아름답다고 응원해 주셨어요. 김환기 화백의 <달항아리> 그림을 찾아보았어요. 좌우대칭 어긋나 있지만 어리숙한 곡선이 마음에 위안을 줍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좋아하는 작품 중에 김환기 화백의 <우주>도 떠오르네요. 광활한 우주에 찍힌 하나의 점과 같은 제 하루하루를 되돌아봅니다. 점 들이 둥그런 원 모양으로 소용돌이치고 있고, 그것들이 모여 우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 작품들 속 푸른 색깔이 차갑지 않고, 오히려 깊은 바닷속 심연처럼 고요하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김환기, 항아리 (환기 미술관 홈페이지 발췌)


김환기, 우주 (환기미술관 홈페이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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