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마트에서 생긴 일
미국에 와서 참 마트를 많이 다닌다. 여기는 무얼 하나 사려고 해도 편의점이 없고 다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인종이 다양한 만큼 마트 종류도 다양하다. 한국마트, 일본마트, 중국마트, 인도마트... 국적별로 마트가 있고 종합마트부터 유기농 식재료, 건축용품, 자동차 용품 등 전문적인 마트까지 마트만 구경해도 일주일은 훌쩍 지날 정도다. 처음에는 미국 마트가 신기해서 이곳저곳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살 것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이사 온 초반에는 거의 매일 마트를 다녔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간 마트는 한국의 이마트와 비슷한 '타깃'이라는 마트이다. 집과도 가장 가깝고 거의 대부분의 필요한 물건들이 다 있는 곳이다. 여기는 여러 지점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이라 손님들이 항상 많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셀프 계산이 더 익숙해져서일까? 셀프 계산대는 10개 정도 운영하고 있지만 캐셔는 꼭 한 명 밖에 없다. 그래서 보통 계산하려고 기다리는 줄이 더 짧은 셀프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셀프 계산대에 계산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나는 당시 만삭의 상태라서 오래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캐셔에게 계산하려고 줄을 섰다. 나는 마트에서 웬만하면 캐셔에게 가기가 싫었다. 왜냐면 미국에서는 마트 캐셔들이 습관적으로 손님에게 말을 건다. 흔히 스몰토크 문화라고 하는데, 나는 그게 너무 불편했다. 항상 밝은 듯 웃으며 과장된 칭찬을 하는 캐셔들이 좀 거북스럽다고 할까. 나는 무표정하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것이 익숙한, 그야말로 서울 사람이었다. 저기 가면 또 말을 많이 시킬 텐데 뭐라고 하지...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내가 계산하려고 가지고 간 물건은 첫째 아들의 잠옷이었다. 지난밤에 아들은 잠잘 때 입는 옷이 깔끄럽다며 까탈을 부렸다. 아들 녀석 때문에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억지로 간 마트였다. 마트에서 빨리 계산하고, 첫째 아들 하교 시간에 맞춰서 학교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계와 잠옷을 번갈아 보며 초조하게 줄을 서고 있다가 겨우 내 차례가 되었다. 몇 마디 기계적으로 스몰토크에 답하곤 계산하려고 옷을 바로 내밀었는데, 갑자기 캐셔가 뭐라 뭐라 못 알아듣게 영어로 더 말하기 시작했다.
뭐지? 내가 못 알아듣겠다는 듯이 "What?" 하고 말하자 대충 손짓을 섞어가며 하는 말은 옷에 태그가 없어서 계산을 할 수 없다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또 엄청 빠르게 영어로 말을 하고선 그냥 내 뒤에 손님 계산을 받는 것이다. 나는 그때 "시간이 없으니 그럼 계산을 안 하고 가겠다"라고 분명히 말을 했다. 그런데 그 캐셔는 내 영어 표현이 이상해서였는지, 목소리가 작아서 안 들렸는지 내 카드를 돌려주지 않았다. 더 크게 말하거나 카드를 달라고 하면 됐을 텐데, 나는 내 영어를 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에 기가 죽어서 그냥 그렇게 서서 마냥 기다렸다.
미국은 참 작은 일 하나도 기다리는 게 일상이다. 빨리빨리 일 처리를 해주지 않고 마냥 기다리게 만든다. 잡담 한마디 더 할 시간에 그냥 빨리 움직여 주면 안 될까? 몇 분이 지났을까. 관리자인 것 같은 사람이 캐셔에게 왔다. 그리고 캐셔가 상황을 설명하자 바코드 판을 꺼내더니 그걸 찍고는 가버렸다. 그 캐셔는 나에게 영어로 뭐라고 설명을 했지만 나는 또 알아듣지 못했다. 다시 물어보면 되는데, 영어로 뭐라 할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는 얼마가 결제됐는지 확인도 못하고 그냥 영수증을 받아 들었다. 캐셔는 끝까지 친절하게 "Good bye, take care."라고 했지만 나는 전혀 Good 하지 않았다. 영수증을 빨리 낚아채는 걸로 나의 불편함을 옹졸하게 전하곤, 빠르게 마트를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와 영수증을 보니 잠옷은 10달러로 결제되어 있었다. 대체 이 잠옷은 원래 얼마일까? 나는 실제 옷 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한 걸까? 왜 나한테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고 무슨 바코드인지도 모르는 가격표로 계산해 버린 걸까? 나를 대체 뭐로 본 걸까! 그냥 yes라고 밖에 말을 할 수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다. 사실 큰돈도 아닐 텐데 나는 남편에게 창피해서 말도 못 하고 끙끙 댔다.
참다못한 나는 다음 날 다시 그 마트로 갔다. 그 잠옷의 가격표를 봐야만 마음이 괜찮아질 것 같았다. 잠옷을 골랐던 매장으로 가서 태그를 찾았다. 태그에 적힌 가격은 45달러. 아마 그 관리자는 가격표가 없으니 가장 저렴한 가격표 또는 매뉴얼에 있는 가격표를 찍어서 계산해줬나 보다. 그 캐셔는 나에게 호의를 베푼다 생각하고 끝까지 인사를 해줬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쌩하게 영수증을 낚아채 버리고 쌀쌀맞게 뒤돌아 섰던 것이다.
가격을 안 뒤에도 나는 그때 나를 그렇게 세워 놓았던 캐셔에게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키가 2미터도 넘게 크고 배도 아주 많이 나온 그 백인 캐셔에게 내가 당시 위압감을 느껴서일까. 아니면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나 자신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일까. 왜 나를 이렇게 세워 놓느냐, 제대로 이해하게 설명을 하라고 말을 하면 됐을 텐데. 아마 나는 가격표 보다 더 많은 돈을 결제했더라도 제대로 따지지 못했을 것이다. 차라리 진상 손님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영어를 못하면 진상도 부릴 수가 없구나. 그 사실이 서글퍼서 진상을 부리고 싶어 진다.
미국에 온 뒤에 나는 사건을 일으키기 싫어서 행동이 더 조심스러워졌다. 혹시라도 차 사고라도 나면 영어로 소통을 해야 할 텐데 제대로 다 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 때문에 스스로 움츠러든다. 마트에서의 일과 같이 나 혼자 창피한 일이라면 차라리 괜찮다. 그런데 만약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언어 때문에 자식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나 자신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언어가 문제이다. 해답은 영어공부인데 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로 나아가고 있는가? 어떤 상황, 어떤 장소에서든 나 자신을 설명할 수는 있도록 자신감을 키우고 싶다. 진상도 아무나 부리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