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몸에는 두 개의 문신이 있고,
올해 세 번째 문신을 새길 계획이 있었다.
첫 번째 문신은 1살 때부터 있던 왼쪽 팔 두 개의 반점 아래에 웃는 입모양을 작게 새겨,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하겠다는 나의 의지를 담았고, 두 번째 문신은 오른쪽 등에 있는 세 마리의 제비인데, 자유를 향한 나의 또 다른 의지를 담았다.
그리고 작은 동그라미 모양을 문신으로 새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갑작스럽게 임신을 하게 되었다. 임신 중에는 문신을 할 수 없기에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동그라미를 새기고 싶었던 이유는,
나는 나 자신이 어떤 목표점을 향해 가는 직선형 인간이 아니라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지만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가는 "동그라미형 인간"이라는 생각을 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원을 돌며 똑같은 하루를 보내도, 그 원은 같은 자리에 맴돌지 만은 않고 결국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어서, 처음과는 다른 내가 되어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이런 내 자신을 답답하게 여기지 않고, 인정하여 긍정하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문신으로 새기고 싶었다.
유아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라면 대부분 나와 비슷하겠지만, 나는 언제나 빈틈없는 일정에 매일 남을 챙겨야만 하는 to-do list에 치여 살고 있다. 출퇴근을 하는 것도 매우 효율 지향적이고 반복적이라, 바깥 풍경을 보며 여유롭게 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싶지만 정확한 시간에 출발하여 도착하는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고, 그 마저도 가장 효율적인 노선으로 1분, 2분 단위로 쪼개서 다니고 있다. 출근은 마포역 5-2번 출입구, 퇴근은 광화문역 5-3번으로 들어가야 가장 빠르게 회사와 집을 오갈 수 있고, 정해진 시간과 노선을 지키며 매일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가끔 너무 일이 지치거나, 아이 등원을 하는 게 힘들었던 날에는 5-3번이 아니라, 9-2번 정도로 조금은 더 일부러 멀리 걸어가서 퇴근하는 지하철을 탈 때도 있었다. 5-3번을 지나쳐 9-2번 열차로 걸어가는 동안에는 작은 죄책감이 들지만 조금이라도 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더 듣고 나름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가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스크림 한 개를 사 먹고 들어가는 때도 있었다. 집에서 내가 퇴근하길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과 아들이 있다는 죄책감에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이 녹아들어 2-3분 휴식을 취했다. 소소한 일탈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고, 이 동그라미를 유지하는 것이 내 인생의 전부였다.
이런 동그라미형 인간인 내가, 갑자기 올해 계획에 없던 둘째 임신을 하게 되었고 주재원이 된 남편을 따라 미국까지 가게 되었다. 태평양까지 뻗어가는 갑작스러운 직선 공격에 나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고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아직도 걱정 투성이다.
아마 나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와 같이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삐뚤빼뚤 여기저기 부딪히며 한국에서 보다 힘겹게 그려나가겠지. 하지만 결국엔 그 동그라미를 완성할 것이고 나는 비로소 행복해지리란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도전을 받아들일 수 있다. 앞으로 내가 이 공간에 쓰게 될 글은 동그라미형 인간의 미국 진출 고군분투기 정도 되려나.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후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때 나는 미국에서도 작은 동그마리를 완성하여 스스로 행복을 찾은 나 자신을 칭찬하며, 미뤄둔 나의 세 번째 문신을 오른쪽 팔 안쪽에 새길 것이다.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영원히 문신으로 새겨 나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적응하며 살지 않았나며.. 결국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