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마지막 준비
걱정은 충분히 많이 했다.
한국에 집 정리, 이사, 월세로 집 내놓기, 미국에 집 렌트, 보험, 대출 정리, 영어 준비, 미국 출산 준비 등 하기 싫고 힘든 일들 먼저 처리하면서, 미국에 가고 싶다는 설렘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이제 정말로 미국 떠나기 일주일 전, 마지막만큼은 여유롭게 마음 정리하는데 쓰고 싶었다. 실제 생활 준비는 어느 정도 마쳤기에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미국에 즐겁게 적응할 모드로 들어갈 때이다. 그래서 내가 마지막 일주일 동안 했던 즐거운 일들 리스트를 정리해 본다.
첫 번째, 브런치를 시작했다.
브런치는 작가 신청을 해야 하고 한 번에 잘 승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여 쉽게 도전을 못했었다. 남편과 결혼하면서 서울을 떠나 5년 간 경남 진주에서 살았었는데, 그때도 기록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마음들을 잘 남겨두었으면 좋았을걸이란 후회가 남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국 현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한 경험들을 글로 남겨서, 평생 이 시간을 좋은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두 번째, 카메라를 구입했다.
미국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회사 주변 사람들에게 했을 때, 몇몇 분들이 사진을 잘 찍어서 남겨두면 좋을 거란 이야기를 해주셨다. 본인들도 미국 또는 유럽 등지에 머물 기회가 있었을 때 그때 찍었던 사진과 추억들이 평생 가더라며, 좋은 추억 많이 쌓고 오라는 소중한 말씀들이었다.
이미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지만,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단렌즈 똑딱이 카메라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0만 원 이하 예산으로 고민 끝에 #리코 GR3를 구매했다. 아래 사진들은 모두 이 카메라로 찍은 것.
택시를 타고 출퇴근했다.
지난 6월, 서울시에서 임산부들을 대상으로 교통비 70만 원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원래는 내년까지도 쓸 수 있는 지원금이지만, 나는 미국 가기 전 2-3주 동안 그 70만 원을 다 써야 한다는 미션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마침 날씨가 한창 더워져서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배 무게 때문에 출퇴근이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호화롭게 택시를 타고 출퇴근하기로 했다.
이 전에는 운동하는 거라 생각하며 지하철-버스를 타고 출근했는데 막상 에어컨 바람 쐬면서 편하게 출근하니 참 좋았다. 출퇴근 시간도 줄어들어서 9시 갓 넘으면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막상 일찍 가도 일을 좀 더 빨리 시작할 뿐이었지만, 출근길에 음료 한잔을 사가는 여유를 즐긴 때도 있었다.
민소매 옷을 샀다.
여행 기분 내기에 옷 사기만큼 좋은 게 없는 거 같다. 한국에서는 입기 꺼려지는 원색깔에 민소매인 여름옷을 몇 벌 구매했다.
신입사원 교육받을 때 사무실 기본 에티켓 중에 "여름에 민소매 옷을 입지 말라"는 게 있었는데, 그걸 꼭 지켜야 하는 건 아니지만 모범생 DNA 가 있는 나는 회사에서 민소매를 입어본 적이 없다. 회사에서 입질 않으니 굳이 여름에 민소매 옷을 입은 적도 없는데, 이번에 작정하고 두세 벌을 구매했다. 오른쪽 등에 있는 세 마리 제비 문신이 자유롭게 뜨거운 미국 햇살을 받기를 기대해 본다.
핸드폰 케이스를 바꿨다.
마지막 출근 날, 노트북까지 반납하고 허전한 마음을 부여잡고선 인사동에 가서 새 핸드폰 케이스를 샀다. 오른쪽이 원래 쓰던 케이스이고, 왼쪽이 새로 산 케이스이다. 그동안 매일 들고 다니는 핸드폰 케이스를 취향대로 쓰며 기분 전환하고 싶은 때가 많았지만, 일부러 교통카드와 사원증을 한 번에 넣어 쓸 수 있게 효율성만 생각한 케이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나름의 일상 속 절제였다고 할까.
이번에 새로 산 왼쪽 케이스는 그냥 예뻐 보이는 마음만 생각했다. 아주 제멋대로 다리를 뻗어 웃고 있는 강아지의 표정이 앞으로 내가 지어 보이고 싶은 얼굴이다. 이렇게 양쪽에 비교해서 두고 보니, 정말 미국과 한국에서의 마음가짐이 확연히 비교된다.
그리고 아래는 마지막 서울에서의 밤을 찍은 풍경들.
앞으로 약 2년간은 이런 서울의 불야성을 느끼기 어렵겠지. 그간 바쁘게 일상을 보내느라 100% 서울을 즐기지 못했지만, 여행자의 마음으로 보니 서울이 참 아름다운 도시임이 새삼 느껴진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주일을 보내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씁쓸한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솔직히 엉엉 울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슬프기도 하지만 나는 배 속에 아기도 있기에, 앞으로도 지켜내야 할 것들이 많기에 끝까지 행복할 것을 선택할 것이다.
안녕,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