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은 미니멀 라이프

3인 가족에게 꼭 필요한 물건은 무엇일까?

by 엠마

미국에 오기 한 달 전, 서울 집의 짐을 선박으로 미리 보냈다. 보통 그 짐을 다시 받기까지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코로나19와 선박회사 파업 등으로 인해 언제 받을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고 했다. 3달 혹은 그 이상도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일주일 먼저 미국에 와있던 남편은 텅 빈 집에서 매트 두 개, 이불 한 세트, 그리고 각종 일회용품들로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미국에서 쓸 물건들을 미리 주문할 수도 있다는 팁들을 각종 커뮤니티에서 보기는 했었지만, 어차피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에서 짐이 다 올 텐데 당장 필요하지 않으면 중복된 물건을 사는 것도 낭비로 느껴졌다. 그래서 언제 서울 짐이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말로 우리 가족이 필요한 물건들만 골라 생활해야 하는 의도치 않은 미니멀 라이프가 시작됐다.


텅 비어있는 집에서 "집다운 집"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해 준 물건은 "4인용 식탁"이다. 한국에서 24평 작은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식탁을 둘 자리가 마땅치 않아 거실에 식탁 겸 다용도 테이블을 두고 썼는데 미국에 서는 한국보다 큰 공간이 주어졌기에 식탁을 하나 새로 사도 될 것 같았다.


다만 비싼 것을 사기에는 부담이라 가성비 좋은 이케아에서 구입하기로 하고 검색을 시작했다. 몇 개 아이템을 찍어둔 후에 이케아 매장에 도착해서 물건을 찾으려고 하는데, 미국에 오자마자 계속된 마트 투어 강행군에 지친 아들은 짜증을 많이 내기 시작했고, 아들을 달래면서 물건도 찾아야 하고, 낯선 이케아 주문 시스템에 어리둥절하기도 했던 나도 급격히 지쳐갔다. 어플에는 분명히 있다고 한 가구들이 매장에 아무리 찾아도 없어 혼란스럽고, 생각보다 비싼 가구들 가격에 놀라고 있을 때, 매장 복도에서 우연히 이 작은 4인용 식탁을 발견했다. 일단 가격이 내가 찾아봤던 것보다 훨씬 저렴했고, 보는 순간 꼭 우리 집에 맞을 것 같았다.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원목으로 만들어져 따뜻한 느낌이 들고, 네모 반듯한 모양을 가진 평범한 식탁. 나는 특히 어느 방향에서도 손을 뻗으면 반대편이 닿을 듯한 콤팩트한 크기가 마음에 들었다. 어린아이들과 식사를 하다 보면 각종 챙겨줄 일이 많이 생기는데 식탁이 너무 크면 불편할 것 같았다. 고민했던 아이템들을 모두 버려두고, 당장 이걸로 사자고 남편에게 말하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가족이 모두 힘을 모아 직접 조립까지 하고 나니, 더욱 애정이 생긴 우리 가족의 첫 가구는 그 후로 집 안의 중심이 되었다. 식탁이 없을 때는 박스 위에 레토르트 음식을 올려놓고 먹어 처량한 기분이 들었는데, 아무리 소박한 음식이라도 식탁에 모여 앉아 나눠 먹으니 그제야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후로 작은 4인용 식탁은 어스름한 저녁 작은 식탁에 모여 앉아, 낮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 고군분투한 서로의 노고를 도닥여주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이곳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함께 읽은 후에 캄캄한 밤이 되어 주방 불까지 마지막으로 끌 때면, 식탁 아래에 네모 반듯한 의자들이 서로 맞닿아 있는 모습이 꼭 우리 가족을 보는 것 같았다. 가족의 중심은 식사이고, 공간이 작을수록 나눌 수 있는 마음들은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여기에 와서 배우고 있다.


남편과 아들이 힘을 합쳐 식탁을 조립했다.


작은 식탁은 식사를 하는 곳, 공부를 하는 곳, 책을 읽는 곳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당장의 의식주를 해결할 각종 생활용품들 외에 가장 먼저 구매한 사치품은 작은 주전자였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뜨거운 물을 끓여서 차가운 물과 섞어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물 한잔을 마시면서 잠든 몸을 깨우곤 했는데, 미국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생각해 보니 컵도 전기포트도 없는 것이다. 아침에 따뜻한 물 마시지 않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주전자를 쓸 사람도 나 밖에 없기에 이걸 살까 말까 며칠을 고민했다.


결국 동그란 모양에 작고 귀여운 스텐 주전자 하나를 샀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뜨거운 물을 끓이는 순간, 180도 바뀌어 버린 미국에서의 생활..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미국에서의 첫 주 생활에 이 물 한잔이 큰 위안이 될 것이란 걸 느꼈다.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고, 집 안에 창문을 열면서 환기를 시키고, 짧은 스트레칭. 이 소소한 루틴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여기에 그냥 물이 아니라 차가 더해지고, 집 안에 가구들까지 다 들어오면 더 행복해지겠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둘째가 태어나고 나면 이 일상도 다 무너지고 무너지려나 하는 걱정이 엄습하기도 한다. 일상의 루틴을 지켜나간 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단조로워 보이지만, 그 루틴을 스스로 결정하고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자유이기도 한 것이다. 둘째가 태어나면 또 다른 급격한 변화가 나에게 찾아오겠지만, 나만의 아침 루틴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해지고 편안한 마음이 들겠지? 그런 의미에서 고민 끝에 구매한 주전자는 한 달째 [참 잘 산 물건 1위]에 들어가는 아이템이다.


처음으로 맹물 대신 아침에 차 한잔 마셨던 날의 감동을 꽤나 오랫동안 못 잊을 듯하다.


서울 짐이 오지 않은 채로 지낸 지 벌써 한 달째이다. 제로 베이스에서 우리 가족의 공간을 새로 만들어 가는 경험은 돈 주고도 하지 못할 값진 시간이다. 우리 가족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강제적인 미니멀 라이프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데, 짐이 도착하고 나면 짐 정리로 한번 카오스를 겪을 듯 하지만, 이렇게 단단해진 내 중심으로 다시 천천히 정돈해 나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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