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고 싶은 날

by 엠마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

아침부터 세 시간 걸려 도착한 눈 밭을 눈 앞에 두고, 집에 가겠다고 떼 쓰는 아들을 보며 내가 한 말이다. 한숨처럼 뱉어낸 그 말을 듣고 남편은 기가 막힌 듯 되돌이표처럼 또 한숨을 쉬었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은 한겨울에도 눈 보기가 어려운 산호세. 눈에서 놀고 싶다는 아들의 말 한마디에 온 가족이 출동해서 세 시간 거리에 있는 타호 근처까지 왔다. 그런데 구불구불한 산 길을 타고 올라왔더니 차 안에서 아들 멀미가 심해졌다. 차 타고 오는 내내 힘들다고 하더니, 막상 도착해서는 아애 차 밖으로 나가려고 하질 않았다.


나는 멀미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들을 보니, 그냥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쉽게 들었다. 아이가 힘들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겨울옷 새로 꺼내서 세탁해서 입히고, 방수장갑도 새로 사고, 놀기 좋은 곳 검색해서 미리 찾아보고, 여기에서 먹을 간식을 새벽부터 준비하고... 나의 노고와 상관없이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맞춰준 나의 육아 역사가 너무 길어서 일까. 이 정도 포기 쯤은 별 거 아니었다.


하지만, 세 시간 동안 힘들게 운전해서 온 남편은 기가 막혔나 보다. 남편은 아이가 멀미가 심해서 그런 것 같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아들 멀미가 괜찮아지길... 뒷자석을 젖히고 아들이 차 안에 누워있는 사이, 우리는 앞자리에 앉아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 눈 밭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뒹굴며 노는 소리가 여기 주차장까지 들렸다.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남편을 보니, 오히려 너무 쉽게 포기하는 나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여기 오기 전 날, 나는 저녁 9시에 온라인으로 하는 요가 수업을 못하겠다고 선생님께 말했었다. 둘째 아이를 8시 반에서 9시 사이에 재우고 요가수업을 하려고 했었는데, 꼭 요가 수업하는 날이면 아이가 늦게 자고 떼를 썼다. 남편이 달래도 소용이 없고 꼭 내 손길을 타야 잠이 드는 녀석... 나는 그 울음 소리를 견디지 못해 결국 온라인 수업을 포기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온라인 요가 수업을 새벽 4시 반으로 옮겨서 해보려고 했으나, 지난 주부터 둘째가 갑자기 딱 이 시간에 깨어나 울기 시작해서 수업을 못하겠다고 선생님께 또 문자를 보낸 직후이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두고 요가원으로 나가서 두시간, 세시간 수련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한시간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겠다는 것인데 이게 이렇게 어려울 일일까.


오늘 오후에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몇몇 지인들과 트레킹을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것도 다 포기하고 싶다. 거기 가서 아이가 협조적으로 유모차에 잘 앉아 있을지,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게 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멀미로 누워있는 첫째 아이를 뒤에 두고, 망연자실하게 앞자리에 앉아있었을 때 처럼 그냥 가만히 혼자 있고 싶다. 차라리 집에 혼자 있는게 낫겠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게 낫겠다, 이게 다 내 욕심이지 싶은 마음. 이런 게 너무 익숙하다.


눈 밭을 눈 앞에 두고 포기했던 날, 아들은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기적처럼 컨디션이 나아졌다. 잠깐 차 밖에 나가서 찬 바람을 쐬었더니 괜찮아졌나 보다. 그렇게 우리는 눈에서 눈사람도 만들고, 눈썰매도 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만약에 바로 포기하고 집에 갔더라면 그런 재밌는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거다.


모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들지만, 그럼에도 조금 기다리다 보면 서로의 바람을 조금씩 이룰 수 있는 날이 오게 될까? 이번 주 새벽 4시 반 요가 수업은 취소했지만, 나는 다음 주에 다시 도전해 볼 것이다. 요가 수업이 도전까지 해야 할 일일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내 일정을 모두 아이들에게 맞춰야 한다는 것이 서럽지만. 무엇하나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하루하루가 힘겹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 발 내 딛어볼까? 이렇게 느려진 나를 이 사회에서, 세상에서 받아 줄지는 모르겠다만... 일단은 내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가볼테다. 포기하고 싶을 땐 포기하고, 다시 하고 싶을 땐 해보고. 그렇게 말이다.






남편과 아들이 만든 눈사람
남편이 누운 자리. 이 날 눈에서 정말 놀고 싶었던 건 아들이 아니라 남편이었는지도!
아들,정말 신나보인다! 엄마는 이걸 보러 온 거 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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