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여행] 1. 움직이는 집을 빌리다

by 엠마

7살 아들은 스타워즈의 광팬이다. 우리가 떠날 미국 서부 캠핑카 여행을, 아들에게는 스타워즈의 배경인 타투인에 움직이는 집을 타고 다닐 것이라고 했다. 아들은 이번 여행에 스타워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다스몰을 데리고 가겠다 했다. 막상 당일에 자기 가방에 스스로 챙기질 않아 내가 챙겨주긴 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아들에게 굳이 다스몰을 챙겨준 건, 아들이 나처럼 이번 여행을 많이 기대하길 바라서 일 지도 모른다.

산호세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늠름하게 서있는 다스몰. 너도 설레니?


산호세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는 비행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걱정했던 둘째 딸은 다행히 비행기가 뜨면서 수유를 시작해 기내에서 내내 잘 있었다. 태어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미국에서 와서 벌써 세 번째 비행기를 탔다. 아이도 나름 여행에 익숙해진 걸까. 나 역시 복잡한 상황에서 여러 일을 동시에 차분하게 일처리 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다.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도착해서는 생각보다 빠르게 일이 진행됐다. 비행기는 연착 없이 제시간에 도착했고, 짐도 금방 나왔다. 캐리어 하나가 바퀴가 말썽이라 6달러를 주고 공항 카트를 빌렸다. 공항에서만 잠깐 쓸 거라 돈이 아깝기는 했지만, 최대한 여행 시작 전에 힘을 아끼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 작년 라스베이거스에 여행 왔을 때는 공항에서부터 이미 지쳐서 아들이 짜증을 많이 내는 바람에 서로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다. 6달러로 아마 600달러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다.

앞에 둘째를 안고, 뒤로는 배낭을 메고, 카트를 끌고 가는 남편의 무거운 뒷모습. 그래도 아들이 같이 카트를 밀어준다.



공항에서 우버를 타고 캠핑카 렌트해 주는 곳으로 갔다. 15분 정도 가까운 거리에 렌트 사무실이 있었다. 첫 번째 타임으로 예약해 둔 덕분에 빨리 차를 빌릴 수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캠핑카 문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공간이 넓었다. 수납공간도 충분했다. 우리가 가져온 짐을 다 넣고도 여유공간이 있었다. 차가 오래되고 낡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미국에 와서 워낙 안 좋은 환경을 많이 만나서 기대감이 낮아서 일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다섯 밤을 보낼 생각을 하니 절로 기분이 들떴다.

아들에게는 기다리는 1분이 천년이다. 렌터카를 기다리면서.
처음 렌터카에 들어가는 순간, 남편.




렌터카를 빌린 후 월마트에 미리 온라인으로 장을 봐둔 물건을 찾으러 갔다. 마트에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는 길에 미리 어플로 장을 봐두었다. 미국 마트는 코로나 이후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픽업 서비스가 편리하게 되어있다. 최대한 외식을 하지 않고 캠핑카에서 직접 요리해서 먹을 것이니 요리 재료도 충분히 구매했다. 물건을 가득 싣고 바로 첫 번째 캠핑장으로 향했다. 첫날 오래 운전하면 피곤할 것 같아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가까운 캠프사이트로 예약했다. 30분 정도 캠핑카를 타고 이동했다.


지면에서 높은 차를 타고 이동하니 평소와 똑같은 캘리포니아 길인데도 달라 보인다. 캠핑카 프레임 안에서 보이는 밖 풍경이 모두 그림이다. 덜컹거리는 차도 재밌고 구불거리는 길도 신난다. 도시를 뒤로 하고 사막으로, 사막으로 달렸다.


첫날 간 캠프사이트는 'Willow beach marina'이다. 이름처럼 근처에 작은 beach가 있는 조용한 곳이었다. 아쉽게도 아직 추운 계절이라 물놀이는 할 수 없었지만 근처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아들은 캠핑카를 주차하자마자 옆에 보이는 언덕으로 기어올라갔다. 이 나이 때 남자아이들은 작은 바위만 봐도 올라가려고 하는데, 저 높은 언덕을 두고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나는 그저 신난 아들의 뒷모습만 쫒았다.


근처 산책길에 들어서는데 빨간 멈춤 사인이 보였다. 잠깐 여기에 멈춰 서서, 흘러가는 시간을 즐기라는 전광판으로 읽혔다. 쾌청한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설레는 마음을 부추긴다.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고요한 이곳에서 충분히 쉬자, 그랬다.



길을 걷는데 이번엔 무심히 쌓여있는 돌 세 개가 보였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도 세 개만 쌓이면, 그걸 쌓아 올린 사람의 손길이 보인다. 하나만 있거나, 두 개만 있었어도 그냥 지나칠 텐데 세 개가 되니 사진으로 담을 만한 그림이 되었다. 나의 일상도 돌 세 개만 쌓아보자. 매일 아침에 운동, 일기 쓰기, 영어공부 하기... 볼품없이 굴러다니는 시간도 이렇게 쌓다 보면 예술이 될 수 있다.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살에 선인장에도 꽃이 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목련, 매화, 벚꽃이 줄지어 피어 봄을 알렸었는데, 여기서는 선인장 꽃들이 그러고 있다. 메마른 흙에서도 피어나는 꽃을 보며, 나는 한국에서와 같이 봄의 기운을 얻는다. 끝없이 이어진 길을 걸으며 잠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시간이 선물처럼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첫날밤 여행의 가벼운 흥분으로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평소 집에는 7시만 넘으면 취침 모드로 넘어가는데, 오늘은 남편도 나도 슬쩍 늦장을 부리고 싶었다. 좀 천천히 하지 뭐 하는 여유를 부리는 새, 피곤해진 둘째 딸이 엄청난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잠이 와서 화가 난 둘째를 안고 서둘러 저녁 일상을 마무리했다. 저녁상을 치우고 두 아이를 씻기고 우리도 씻고, 침구를 정리하고 정신없이 저녁 시간이 지나갔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 살금살금 문을 열고 밖에 나와봤다. 저 서쪽 산 너머로 라스베이거스의 불빛이 넘실거렸다. 번쩍거리는 불빛에서 라스베이거스의 담배, 술냄새가 나는 듯했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불빛을 뒤로하고,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계속 사막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내일 가게 될 그랜드캐년을 기대하면 그렇게 첫날밤, 고요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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