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LA로 로드트립을 다녀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나는 다음 여행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년 말 라스베이거스, 그리고 LA까지 우리는 도시만 여행한 것 같다며, 다음에는 자연으로 가보자 했다. 미국에 오면 다들 그랜드캐년은 가본다 하는데 우리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그랜드캐년에 갈 수 있을까? 가고 싶다면 갈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게 있을까? 차멀미가 심한 7살 첫째 아들과 수시로 엄마 손이 필요한 이제 6개월 된 딸. 이들과 어떻게 산속 깊은 자연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차에서의 이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까지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고, 그 후에는 캠핑카를 타보자 생각했다. 치매 걸린 부인과 함께 1년 동안 캠핑카 여행을 다녀온 노부부의 사진을 모은 <게르트너 부부의 여행> 사진집을 보고 캠핑카 여행은 버킷리스트가 되었었다. 멀미가 심하지만 차에서 그림 그리고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다니면 첫째 아들도 즐거워할 것 같았다. 차 안에서 기저귀 갈고 수유할 공간도 충분할 테니 둘째 딸도 돌보면서 다닐 수 있지 않을까? 라스베이거스에서 사람 많은 식당에서 수유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마음먹기가 어렵지 준비는 간단했다. 호기롭게 국립국원 1년 패스를 구입하고, 캠핑카를 렌트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그랜드캐년-앤텔로프캐년-자이언캐년으로 단출하게 일정을 짜고 캠프사이트까지 예약했다. 어린아이들과 다닐 테니 큰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하루에 2-3시간 운전하고 캠프사이트에서 주로 놀자고 생각했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보고, 새벽 숲 속 향기를 맡으면 일어나는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았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박근영 감독의 <정말 먼 곳> 영화를 봤다. 영화도 좋았지만,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시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에게 정말 먼 곳이란 어디일까? 나는 눈앞에 놓인 길만 쳐다보며 아등바등 사느라 정말 먼 곳을 상상이나 해봤던가? 그 생각이 사치라고 치부할 만큼 나는 너무 그동안 고리타분 재미없게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 시를 읽는 동안 절벽 아래를 바라보며 홀로 서 있는 여인이 계속 보였다. 그 여인의 표정이 궁금했다. 나는 아마 이 여행을 통해 그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캠핑카를 타고 하는 여행은 불편할 것이다. 아이를 돌보고 밥을 차리고 지리멸렬한 일상이 또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는 마법 같은 정말 먼 곳으로 가보자.
<정말 먼 곳>, 박은지
멀다를 비싸다로 이해하곤 했다
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만큼 최대한
먼 곳으로 떠나기도 했지만
정말 먼 곳은 상상도 어려웠다
그 절벽은 매일 허물어지고 있어서
언제 사라질지 몰라 빨리 가봐야 해
정말 먼 곳은 매일 허물어지고 있었다
돌이 떨어지고 흙이 바스러지고
뿌리는 튀어나오고 견디지 못한 풀들은
툭 툭 바다로 떨어지고
매일 무언가 사라지는 소리는
파도에 파묻혀 들리지 않을 거야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면 불안해졌다
우리가 상상을 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상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었고
거짓에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다
정말 먼 곳을 상상하는 사이 정말 가까운 곳은
매일 넘어지고 있었다 정말 가까운 곳은
상상을 벗어났다 우리는
돌부리에 걸리고 흙을 잃었으며 뿌리를 의심했다
견디는 일은 떨어지는 일이었다
떨어지는 소리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며 정말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그래야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