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없는 나무

by 엠마

미국에 이사 온 지도 7개월이 넘었다. 집이 어느 정도 정돈되고 날씨도 따뜻해졌다. 생활이 안정되니 집에서 식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건지 집 앞에 마트만 가도 각종 씨앗과 화분들이 줄지어 나와있다. 나 좀 키워달라고 파릇파릇한 새순들이 내 발길을 세운다.


한국에서는 식물들을 많이 키웠었다. 따뜻한 봄 날씨에 새 잎이 봉긋 나오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큰 지 알고 있다. 미국은 뒷마당도 넓게 있겠다 이참에 화분도 사고 텃밭도 일궈보면 좋겠다는 의욕이 불쑥불쑥 솟아난다. 파도 심고 깻잎도 심고 무럭무럭 자라는 식물들을 키우면 생활이 더 활기 있어지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하지만 여태 고민만 하고 결국 하나도 사지 못했다. 나는 2년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뿌리 있는 식물을 사면 이후에 그 식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식물도 생명인지라 정주고 마음주며 키우게 되는데 한국으로 돌아갈 때 모두 처분해야 할 날을 생각하니 함부로 식물을 살 수가 없었다.


나중에 처분할 마음의 번거로움이 싫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다, 결국 집에 드는 건 생화 몇 송이. 생화를 집에 두면, 순간 그 공간이 마법처럼 빛난다. 하지만 뿌리 없이 꺾인 꽃은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일주일이 넘어가면 시들시들해지고 만다. 결국 쓰레기통으로 던져지는 꽃을 보니 마음이 쓸쓸하다.


뿌리를 내린 식물을 살 수도 없고, 뿌리 없는 꽃을 샀다가 결국 쓸쓸해지고 마는 것이 마치 미국에서 적응하고자 하는 내 마음 같다. 나는 영원히 이곳에 정착해 사는 것이 아니다. 몇 년 후 다시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 여기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상황 때문에 마음을 다 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마음을 닫지도 못하고 어물쩍 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


여기에 정착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곧 떠날 주재원 가족이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엔 아주 멀리에서 살고 있는 닿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들에게 나는 영원히 이방인인 것 같아 다가서기가 두려운 생각이 먼저 들 때가 있다. 차라리 여기에서 오래도록 살 계획이라면 어떻게든 뿌리를 내려 적응하려고 노력하겠지만, 또 몇 년 후에 떠나야 하니 그럴 수도 없다. 그렇다고 그냥 시간을 흘러 보내기엔 여기에서 만난 너무 멋진 사람들이 많다. 나는 붕 떠있는 틈 사이에서 현재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만약 나 혼자 미국에 온 거라면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겠다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며 여기저기 인간관계에 지친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지금 내 아이는 7살, 사회성이 발달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고립되는 건 또 아닌 것 같다. 어찌 보면 아이의 존재가 오히려 나를 제대로 살 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게 언제부터였을까. 처음으로 내 뿌리가 뭉텅 잘려나갔다고 느낀 건, 결혼하면서 남편 따라 서울에서 진주로 갔을 때였다. 지하철이 없는 곳에서 살아본 것도 처음이었고, 지역색이 짙은 맘카페로 대표되는 폐쇄적인 도시 분위기도 처음이었다. 그곳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를 꾸역꾸역 하며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는 행복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매일 노력하며 살았다.


산호세에서 사는 것은 가끔 진주에서의 시간을 떠오르게 한다. 외딴곳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상황도 비슷하고, 지하철이 없이 도시와 떨어져 한적하다는 것도 비슷하다. 돌아보면 진주에서 남은 건 그때

만났던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다. 서울에서 왔다고 배척하고 은근히 따돌린 사람도 있었지만, 소중한 시간을 함께 나눴던 사람도 있다. 나는 산호세에서 뿌리를 내리진 못하더라도, 진주에서 처럼 평생

갈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어디서나 좋은 사람은 분명 있을 테니까.


인적이 드문 산 깊은 곳. 깊은 뿌리가 단단히 땅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아내며 굳건하게 서있는 나무. 내 뿌리가 어디쯤 있는 건지, 자라고나 있는 건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언젠가 깊은 뿌리가 되어 흘러내리는 모래알, 부러진 가지쯤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의연해 지기를 바란다.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위안을 줄 수 있는 그런 튼튼한 뿌리가 되기를.



줄기가 다 잘린 나무에서도 꽃이 핀다.
선인장에도 꽃이 피다니, 캘리포니아의 햇살에 반짝이는 꽃들.
꽃을 키우진 못해도 즐길 순 있다. 산책길에 만난 꽃들.
레몬 나무가 가로수로 참 많은 산호세.
꽃이 그리운 날, 집에 꽃을 한 다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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