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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Jun 11. 2023

[캠핑카 여행] 5. 절벽 아래의 세상

자이언 캐년  

우리는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자이언 캐년으로 향했다. 자이언 캐년으로 가는 길은 여행 중 다녔던 길 중에서 가장 험난했다. 절벽을 따라 구불구불하고 좁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특히 자이언 캐년으로 진입하기 직전에 통과해야 하는 터널이 하이라이트였다. 정확한 터널 명칭은 'The Zion-mount Carmel Tunnel'로, 1930년 대에 만들어진 국립공원 중 가장 긴 터널이라고 한다. 1.7km에 달하는 엄청난 길이의 터널인데 아주 좁고 낮아서 차가 한 대씩 줄을 서서 들어갔다. 천장이 낮고 좁은 길을 큰 캠핑카로 달려야 하니 굉장히 무서웠다. 다행히 그때 아이들이 자고 있어서 무사히 지났지만, 만약 깨어있었다면 무섭다고 난리였을 것이다.


터널을 지나고 나자 사진으로 보던 금강산 같은 풍경이 나타났다. 그랜드캐년의에서는 절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느낌이었다면, 자이언 캐년으로 가는 길은 그 절벽 속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았다. 뾰족뾰족 불규칙하게 솟아있는 절벽에 1차선 도로로 겨우 차 한 대 다닐 길이 나있었다. 아슬아슬하게 그 길을 따라 산맥을 오르내리며 자이언 캐년 속으로 들어갔다.


캠핑 사이트에 차를 주차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이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산맥 속에 폭 쌓여 있는 듯한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절벽 위에서 아래를 볼 때는 모두 사막으로만 보였는데, 절벽 아래에 가까이 와보니 그곳에는 생각지도 못한 자연이 생동하고 있었다. 작년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서, 곳곳에 홍수 주의보가 내려졌을 만큼 물이 많았다. 절벽 사이로 흘러내리는 폭포 수와 물줄기를 따라 생동하는 나무, 풀, 꽃의 어우러짐이 아름다웠다.


캠핑 사이트에 있는 사람들도 한층 여유 있어 보였다. 한국에서는 먹으러 캠핑을 간다고 할 만큼 캠핑장에서 고기 굽고, 각종 술 마시는 캠퍼들이 많은데, 우리는 이번 캠핑카 여행동안 이상하게 고기 굽는 사람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다. 이게 미국 캠핑 문화인 건가 싶었는데, 자이언 캐년에서 처음으로 고기 굽는 사람들을 봤다. 여러 지인들이 각자 캠핑카를 가지고 와 모여서 노는 무리도 많았다. 사람들은 밤에 한 캠핑카에 모두 모여 각종 보드, 카드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낮에 기타를 들고 만나 연주를 하기도 했다. 음악과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인생이 풍요로워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 각자 삶을 즐기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우리는 자이언 캐년 트레킹을 가보기로 했다. 국립공원 안은 셔틀버스로 코스가 잘 짜여 있어서 힘들지 않게 갈 수 있는 초보 트레킹 코스가 많았다. 우리는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반나절 코스로 자연을 누벼보기로 했다. 길은 아주 평탄해서 유모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는 둘째가 너무 어려서 아기띠를 메고 다녔지만 그리 힘들지 않았다.


트레킹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셔틀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아주 큰 나무였다. 잔디밭에 긴 줄기를 늘어뜨린 채 서 있는 그 나무는 넓은 그늘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절로 모이게 했다. 그 나무 아래에 사람들은 샌드위치, 물, 음료를 들고 휴식을 취했다. 우리도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도 없이 그냥 앉아 쉬었다. 나는 거기에 앉아 살랑 거리는 바람을 느끼며 둘째 모유수유도 했다.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이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젖을 먹는 둘째를 보며 편안했다. 이런 나무 한그루가 있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편안할 수 있는지... 나도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자이언 캐년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라스베이거스를 거쳐 다시 산호세로 돌아왔다. 첫째 아들은 집에 와서도 한참 동안이나 캠핑카 여행을 이야기했다. 서툰 솜씨로 캠핑카 여행에 대해 짧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계속 이야기했다. 어른들이 인상 깊었던 만큼 아이도 이번 여행이 뜻깊었나 보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미국에서 반드시 한 번은 더 캠핑카 여행을 하자 했다. 캠핑카 여행은 몸이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꽉 차서 돌아온 것 같다. 마음이 허한 어느 날, 우리는 또 그렇게 새로운 길을 따라 떠나리라.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캠핑장.
이번 여행 기간 내내 나와 함께 했던 수유 쿠션. 이 큰 걸 여기까지 가져왔었다.
캠핑장 세탁실 앞 풍경. 이런 곳이라면 빨래하는 것도 즐겁겠다.
절벽 사이로 세차게 흐르는 폭포
자이언 캐년 트레킹 길
바닥은 고운 모래로 되어 있어 걷기 좋았다. 아들은 모래에 꼭 자기 이름을 써놓는다.
아기띠를 메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
아기띠 안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는 둘째와 남편.
7살 아들이 걷기에도 충분히 편안한 길이었다.
바위틈에 자란 풀들.
절벽 아래는 이런 푸르름이 있었다.
잔디밭과 큰 나무 그늘 아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나무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 같다. 고마운 나무.
밑동만 남은 나무에서도 새 가지가 자라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아들은 계속 그림을 그리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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