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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Jul 11. 2023

아마존 쇼핑을 끊었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를 읽고

 

아마존 서비스에 중독된 이유

 미국은 어딜 가나 차를 타고 가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산호세는 교통량도 적고, 주차가 편하고, 운전자들도 여유가 있어서 운전하기 좋다고 하지만, 아직 나에겐 차를 타고 나간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갑자기 필요한 물건들이 많아지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차를 타고 마트에 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아마존' 서비스에 중독됐다. '중독‘이라고 표현할 만큼 아마존에서 지출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아마존에서 주문을 하면 식료품은 1-2시간 안에 집까지 배송이 되고, 아이 장난감, 책, 가구 등 온갖 물건들이 빠르면 당일에도 배송이 된다. 월정액이 있고, 배송비가 추가되고, 물건 값이 싸지도 않지만 차를 타고 나가는 번거로움, 기름값, 물건을 찾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저울질해보았다. 나는 아무래도 아마존으로 사는 게 더 이득이라고 결론지었다. 


계기는 <숲 속의 자본주의자>를 읽고 받은 충격

 해방북클럽의 첫 번째 책으로 박혜윤 작가의 <숲 속의 자본주의자>을 읽었다. 저자는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정기적인 소득 없이 책을 쓰고, 가끔 빵을 팔며 살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잘 모르겠다. 그렇게 살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적은 생활비로 스스로의 욕망에 항복하며 삶의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아니 이렇게 살 수 있다고? 이게 가능하다고?' 하는 탄식이 계속 나왔다. 미국 주재원 기간이 끝나면 물가 높기로 유명한 산호세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겠다며, 미국에서 계속 살려면 미국 중부 시골로 이사해야 하나 농담으로만 이야기했는데, 정말로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옆에 있던 남편에게 물었다.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존 없이 살 수 있겠어? 그런 시골에 가면 아마존 배송도 바로 안 될걸."  


 그래...? 그럼 아마존을 한번 써보지 말아 보자. 한 달은 너무 기니까, 일단 일주일만 써보지 않기로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100개가 넘는 위시리스트로 일렁이는 아마존 장바구니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고 있던 참이었다.






일주일 동안 아마존으로 물건을 사지 않았더니 생긴 변화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나는 10일째 아마존으로 아무 물건도 사지 않고 있다. 하루에 1-2개씩 아마존으로 자질구레한 물건을 사고, 아마존 배송 기사를 매일 만나고, 총소비의 60% 정도를 아마존으로 하던 내가 아마존 쇼핑을 딱 끊었다. 피부로 체감되는 변화 3가지를 공유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첫 번째, 핸드폰 스크린 타임이 줄었다. 아마존으로 쇼핑한다는 것은 핸드폰으로 물건을 사는 것만 포함되지 않는다. 물건을 검색하고, 주문하고, 배송이 언제 되는지 확인하고, 배송 완료된 후에 결제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까지 하다 보면 핸드폰 사용을 많이 하게 된다. 나는 특히 뭐가 사고 싶고, 필요할 때마다 아마존 앱을 켜고 장바구니를 채워 넣던 습관이 없어졌다.


 그동안 내 아마존 장바구니에는 물건들이 항상 꽉 차 있었다. 내가 뭘 사고 싶어서 이렇게 저장해 놨었나 쭉 훑어봤다. 늘어난 뱃살을 가려줄 원피스, 아이가 필요하다던 테이프,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생화 주스를 만드는 재료, 그리고 다수의 아이 책들... 이게 다 정말 내가 사고 싶어서 넣은 물건들일까? 순전히 내 욕망인 것인가? 타인의 시선에 의해 생겨난 욕망은 없나? 과욕을 부렸던 건 아닐까?


 <숲 속의 자본주의자>를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욕망'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 욕망을 줄여야 한다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와 불교 이론에 반대한다. 욕망을 무조건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고유한 욕망을 정확하고 정밀하게 파악하라고 한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싸도 갖지 않고, 아무리 사회적으로 칭송하는 가치라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추구하지 않을 때, 소비의 피곤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나는 남들과 비교해 내 아이의 어딘가 부족해 보일 때 그에 관련된 책과 육아서적을 습관적으로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다이어트가 필요한 내 몸을 볼 때마다, 덜 먹으면 되는데 다이어트 용품과 그걸 가려줄 물건들을 사고 싶어 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뭐였을까? 그리고 그건 정말 나다운 소비였나? 아마존 쇼핑을 멈춘 시간 동안 핸드폰 스크린 타임은 20%가 줄었고, 나의 물음은 그만큼 더 많아졌다. 


두 번째, 택배 박스가 줄었다. 미국에서는 재활용 쓰레기를 큰 플라스틱 통에 담아두면 1주일에 한 번씩 시에서 차가 와서 수거해 준다. 아마존 쇼핑을 자주 하다 보니 택배 박스, 비닐이 많아서 항상 이 통이 가득 차 있었다. 지난주에는 이 통이 텅텅 비어있었다. 택배 박스가 없어서 이다. 수거통이 일주일 동안 비어있자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주말에는 시간 여유도 있어서 집 안을 한번 정리했다. 수거통이 비어 있으니, 버릴 물건이 있다면 이 참에 정리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안방의 창고부터 뒤졌다. 내가 '추억의 상자'라고 부르는, 차마 버리지 못해 모아둔 물건들이 모여 있는 박스를 꺼냈다. 거기에는 내가 예전부터 사용하던 핸드폰 10여 개들, 각종 편지 등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있었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의 저자는 '버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물건을 버리는 것은 나의 역사를 버리는 일이니 슬픈 일이지만, 슬퍼지는 것을 즐겨야 버릴 수 있다고.  저자는 오랫동안 들고 다니던 피아노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그걸 가지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닫고 깨끗하게 팔아버렸다.   


 나도 택배 박스가 줄어든 자리에, 묵은 감성을 털어내기로 했다. 추억의 상자에 넣어놓고 잘 꺼내지도 않던 물건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슬픔을 즐기기로 했다. 더 이상 충전도 되지 않는 오래된 핸드폰들과 3년 간 보관만 해 온 옷들, 모자들, 이젠 버려도 될 것 같은 오래된 명함들을 정리했다.


세 번째, 물건을 쟁여놓지 않게 되었다. 아마존으로 물건을 사다 보면 아무래도 대용량으로 사게 된다. 필요한 것은 아이 과자 1개인데, 10개 세트로 사면 더 저렴하고 1개씩은 온라인으로 잘 팔지 않다 보니 대용량으로 사게 되었다. 그만큼 집 안에 물건이 가득 차게 되고, 또 그걸 정리하느라 에너지를 쏟게 된다.


 아직 10일밖에 되지 않아 정확한 산정은 어렵지만, 아마존으로 사지 않는 만큼 오프라인 마트에서 물건을 사니 소비 금액이 크게 줄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쓸데없이 많은 양을 사지는 않게 되니 그것만으로도 일단 의미가 있지 않을까. 


 물건을 쟁여놓는 것은 어찌 보면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불식 간에 떨어질까 봐 쟁여놓는 화장지, 물티슈, 여러 가지 맛으로 구비해 둔 아이 과자, 언젠가 쓰겠지 하고 사 둔 교구들...  당장 쓰지 않더라도 부족할 때 당황스러울까 하는 걱정으로 물건을 껴안고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정말로 필요한 만큼만 사서 쓰면 되는데 물건에 치여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의미는 마음먹으면 끊을 수 있다는 감각  

 이번 경험은 결국, 남편에게 '이거 봐, 나 할 수 있잖아. 아마존 없이도 살 수 있어!'라는 말을 하기 위함이었을까? 남편은 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사람이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의 저자는 스스로를 긍정하는 자존감보다는, 나를 존중해 주는 타인의 말을 믿는다고 한다. 나 역시 남편이 나를 긍정해 줄 때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내가 하는 것은 뭐든지 잘했어, 대단해라고 말해주는 남편이 있기에 내가 결혼 후에 좀 더 안정적인 사람이 된 것도 있다. 


 아마존 쇼핑을 끊은 지 일주일이 됐을 때 내가 남편에게 성공했다고 말하자, 남편은 자기가 그런 말을 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제안한 사람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데, 누구도 시키지 않은 미션을 스스로 정하고 완수한 나는 아무 의미 없는 짓을 한 걸까? 


 남편이 흘려지나 가며 한 말 한마디에도 내가 마음먹으면 변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겪고 나면, 내가 다른 변화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뭔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사라지면서 내가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의 재발견이 이번 미션의 가장 큰 의미이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나는 일주일을 지나 3일을 더 추가해 10일 동안 아마존을 쓰지 않고 있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에서 저자는 '변화는 뭔가에 의존하는 느낌이 사라지면서 삶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해지는 일'이라고 한다. 내가 변화를 원한다면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진짜 찾기 위해, 해방북클럽으로 만난 책들을 읽으며 나 자신을 하나씩 떠나보내는 혼자만의 미션을 계속해보려 한다. 



장바구니에 딱 100개 물건이 들어있다. 다 사지 않을 물건인데 차곡차곡 쌓여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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