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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Jul 22. 2023

3분 만에 친해지는 방법

엘살바도르 친구 이야기 2

 처음에 그녀는 '아들 친구의 엄마 A'였다. 아들이 반에서 가장 좋아하는 친구, 앤서니의 엄마. 앤서니는 엘살바도르에서 온 이민자 가정의 둘째 아들이다. 앤서니 엄마는 엘살바도르에서 8년 전 미국으로 이민 왔다. 그녀는 아시안과 대화를 해본 것이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한국과 중국을 구별하기 어려워하고, 북한과 남한이 다른 나라인 것도 잘 모른다. 하지만 아들끼리 친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약속을 잡고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몇 번의 플레이 데이트를 했고, 간간히 문자를 주고받았다. 나는 스페인어를 전혀 하지 못하고, 그녀도 한국어를 전혀 모른다. 게다가 우리는 둘 다 영어도 잘 못한다. 우리는 그 어떤 언어로도 서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나는 언어가 통하지 않기에, 오히려 신비로움과 호기심으로 그녀를 대하게 됐다.


 그녀 집에 초대받아 놀러 갔을 때였다. 나는 거실 한가운데에 커다란 바다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하얀 백사장에 야자수가 있고, 투명한 바닷물이 일렁이는 평범한 바다 모습이었지만, 그것이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림 맞은편에는 부엌과 식탁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매일 이 그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물었다. "너는 바다를 좋아하나 봐."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응. 하지만 미국의 바닷물은 내게 너무 차가워."


 그녀의 고향인 엘살바도르는 온화한 열대성 기후의 태평양 연안에 있는 나라로, 여기보다 훨씬 더운 날씨일 것이다. 나는 순간,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엘살바도르의 투명한 바다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했다. 매일 그녀가 식탁에 앉아, 이 거실에 걸려있는 그림을 바라보고 있을 것을 상상했다. 나는 그녀에게 "우리 바다에 같이 가자!"라고 당장이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린 두 아이가 있었고, 그렇게 말하기에 우리는 아직 충분히 친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몇 주 뒤,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우리 주말에 같이 바다에 가지 않을래?"

나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좋아!"

내가 먼저 바다에 가자고 제안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주말, 우리는 산타크루즈 해변에서 만났다. 아들과 남편, 그리고 먹을거리와 갈아입을 옷 등을 가득 담은 짐을 주렁주렁 매단 채였다. 한 여름 캘리포니아의 바다 햇빛은 부서듯이 뜨거웠다. 아이들은 금방 바다로 뛰어가서 놀기 시작했고, 남편들은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선 아이들이 노는 것을 돌봐 주었다. 그녀와 나는 아이들이 놀고 있는 바다를 바라보며 서로를 옆에 두고 앉았다.


 이 바다는 그녀 고향의 바다와 얼마나 비슷할까? 그때 그녀 집 거실에 놓여있던 바다 그림과 비슷할까? 어쩌면 그녀는 바다가 아니라, 바다에서 자유롭게 놀던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걸까? 마치 내가 작은 새 그림을 안방에 두고, 자유롭던 과거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바다에서 한참을 놀다 점심 먹을 시간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가장 잘 먹을 피자를 사 와서 먹였다. 역시 아이들은 모래가 가득 묻은 손으로 피자에 모래를 묻혀가며 맛있게도 피자를 먹었다. 배가 부르니 아이들은 다시 바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녀가 바다 옆에 있는 롤러코스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저거 좋아해?"

내가 답했다. "응, 나는 좋아해. 그런데 아들도 남편도 다 무서워해."

"그래? 우리 집도 똑같아. 나는 좋아하는데, 애들과 남편은 무서워해."

"오! 그러면 우리 같이 타러 가자!"

"좋아!"


 이번엔 내가 먼저 제안을 했고, 그녀는 바로 좋다고 했다. 우리는 바리바리 싸 온 짐과 아이들, 남편을 바다에 두고 엉덩이에 뭍은 모래를 훌훌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저 멀리 사람들의 환호성과 비명이 함께 들리는 롤러코스터 쪽으로 성큼성큼 같이 걸었다. 이제서야 우리가 제대로 된 여행을 즐기겠다는 듯이.


 롤러코스터를 타러 온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는 한참 줄을 서서 기다렸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는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요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고, 밤에 주로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녀는 단테의 <신곡, Devine comedy>을 가장 좋아한다고도 했다. <신곡>은 필독도서로 꼽히지만 그걸 실제로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제목만 숱하게 들어왔던 책 이름을 그녀 입에서 듣게 되자, 너무나 신기했다.  


 <신곡>에서 몽상가가 꿈꾸는 세계가 흥미롭다는 그녀. 그녀가 영어로 설명하지 못하는 본모습이 대체 무엇일까? 마치 내가 나 자신을 다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 역시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까? 내가 유아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면서 내 지적능력도 영어 실력에 맞춰버리게 돼 서러움을 느끼는 것처럼, 그녀 역시 단테의 예술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답답할까.


 드디어 롤러코스터에 올라탔다. 이렇게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녀도 나도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롤러코스터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 급하강을 할 때, 그녀가 내 팔을 휙 감더니 내 손을 갑자기 꼭 잡았다. 나는 엉겁결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3분 동안 그녀 손을 꼭 잡은 채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3분의 시간 동안 나는 갑자기 그녀와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누군가와 손을 잡고 롤러코스터를 탄 것은 중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나는 짧은 영어실력으로  그저 너무 재밌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재미' 그 이상의 해방감을 느꼈다. 누군가와 갑자기 친해지고 싶다면, 롤러코스터를 같이 타보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롤러코스터에서 내려 다시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녀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사실 나는 피자 싫어해."

나도 말했다. "맞아, 나도 피자 싫어해. 아이들이 잘 먹으니까 같이 먹은 것뿐이지."


 나는 그때 깨달았다. 우리는 피부색도 다르고 고향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친해질 수밖에 없는 공통점이 있었다. 낯선 미국에 온 이방인이라는 것, 아이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먼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가끔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싶어 한다는 것. 우리는 그 공통점으로 서로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이번 주 주말에 나는 '그녀의 아들' 생일 파티에 간다. 나는 그녀를 '아들 친구의 엄마 A'로 만났지만, 이제는 그녀가 내 친구가 되었다. 나는 생일파티의 주인공인 '그녀의 아들' 선물은 아직 사지 못했지만, 그녀에게 줄 선물은 미리 사두었다. 요즘 내가 푹 빠져있는 <h마트에서 울다>의 스페인어 버전 책이다. 음식을 통해 뿌리를 찾으려는 책의 저자를 보며, 엘 살바도르 음식을 그리워하는 그녀가 생각났다. 나는 이 책을 6년 동안 아들을 키우느라 고생한 그녀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


 아직 그녀의 마음까지는 모르겠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만큼 그녀도 나를 좋아할까? 그녀의 마음을 다 읽어 내기엔 물음표가 가득하고, 내 상상으로 어림짐작할 뿐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오랫동안 그녀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나의 첫 엘살바도르 친구, 내 친구 A 씨.



집에서 30분만 차를 타면 산타크루즈 해변이 나온다.



그날의 바다, 모래. 그녀 집에 있던 그림 속 모래와 이 모래가 비슷하기를...


 

산타크루즈 해변 아침. 아직 안개가 자욱하다. 하지만 낮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쨍쨍한 햇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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