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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Jul 29. 2023

오늘도 거절을 실패합니다.   

<당신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하다>를 읽고

버네사본스의 <당신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해방북클럽의 두 번째 책, 버네사본스의 <당신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하다>를 읽었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겸손이 미덕이라고 배우고 자란 사람들을 위해 당신의 영향력을 더 발휘해라는 의도의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마케팅 시대에 나를 어필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에서 이런 종류의 책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영향력을 더 끼쳐라’고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영향력을 키우는 방법을 소개하는 대신,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깨닫고 제대로 활용하라고 말한다.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 과감해 지기를, 발산되지 않아야 하는 영향력에는 스스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일러준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고 이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체면이 중요한 사람, 거절이 어렵다  

 내가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거절' 대한 저자의 다양한 실험이다. 저자는 실험실에서 나가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황당한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부탁을 들어줬다. 부탁받았던 사람들을 인터뷰해 보니 'no'라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서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거절하기가 어려운데,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의 부탁이라면 더 거절하기 어렵지 않을까.


 나 역시 거절을 매우 어려워한다.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 무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 때문에 대부분의 부탁을 수용하는 편이다. 과거에는 거절을 잘하는 것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거절하는 것을 따라 해보려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었다. 나는 타인의 생각을 칼같이 잘라내고 내 것만 고수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도 받아들이고 절충안을 찾는 방식이 훨씬 편안하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누군가 나에게 부탁을 했을 때, 그것을 부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게 새로운 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미련해서 거절하지 못한다가 아니라, 이것도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도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부탁 덕분에 나 혼자는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해보며, 내 경계를 넓혀나갈 기회로 삼아왔다.


 그런데 사람들이 거절을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가 공적인 자리에서 내가 보이고 싶어 하는 ‘체면'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나를 되돌아봤다. 나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인가? 나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 걸까? 이대로 거절을 하지 못하며 사는 게 괜찮을까?


부탁은 거절하지 못하면서, 호의는 왜 거절할까?

 문제는 누군가가 나에게 부탁이 아니라, 호의를 베풀려고 할 때 발생한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뭔가를 주려고 할 때, 그 사람에게 민폐가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부터 한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탁은 거절하지 못하면서, 누군가에게 짐이 될 것 같은 호의는 왜 거절하고 싶을까. 상대방의 배려와 호의가 내 마음에 닿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괜찮아요"라는 말이 나오는 게 체면 때문이라면, 나는 바뀔 필요가 있다. 내가 모두에게 무난한 사람이고 싶어서, 혹은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타인의 호의까지 거절하고 산다면, 그것은 건강한 삶이 아닐 것이다.


 나는 부탁을 잘 들어주는 대신에 인간관계를 아주 좁혀서 살아왔다. 나에게 얼토당토않은 부탁을 하지 않을 사람, 당연히 나를 배려해 줄 사람하고만 깊은 관계를 맺고, 그 외의 사람은 마음에 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었다. 안전하게만 소통하려는 모습이 정말로 남들에게 좋아 보일까? 내가 그렇게 '체면'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남의 친절과 호의를 기쁘게 받아들일 줄 알고 나도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더 체면을 살리는 일일지 모른다.


 저자는 우리가 남에게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빠져나와서 우리의 행위가 남에게 미치는 영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제대로 느끼고 경험해보라 한다. 처음 책에서 이 부분을 읽었을 때는 굉장히 추상적인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일상의 사건들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글을 한번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 서술하는 것만큼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것도 찾기 어려우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독서모임 후 일주일 동안 내가 거절하는 것들, 거절에 실패하는 것들에 대해 기록해 보기 시작했다.


오늘도 거절을 실패합니다

#1. 아들 친구의 캠프 초대  

 엠마의 6살 아들은 대만계 미국인인 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농구 캠프에 초대했습니다. 초대받은 날은 원래 가야 하는 다른 캠프와 날짜가 겹칩니다. 엠마는 그 친구 부모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농구 캠프에 아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자기가 농구를 싫어하는데 왜 거길 가야 하냐고, 싫다고만 합니다.


#2. 트레이더 조 마트에서

  엠마는 집 근처 트레이더 조 마트에 갔습니다. 이것저것 필요한 음식 재료를 담다가, 아이스크림 코너 앞에 멈춰 섰습니다. 보라색 우베 아이스크림을 장바구니에 넣을까 말까 한참을 서있는데, 옆에 있던 마트 종업원이 그거 정말 맛있다고, 안 사가면 후회할 거라고 말합니다. 엠마는 그 추천을 거절하지 못하고, 고맙다고 말하며 결국 사가지고 갑니다.


#3. 커피 한잔 마시고 가라는 친절

 엠마의 아들이 친구에게 초대받아 친구 집에 놀러 갔습니다. 아들만 두고 나오려는데, 친구 어머니는 커피 한잔 마시고 가라며 엠마를 붙잡았습니다. 엠마는 일단 집에 들어갔지만 커피는 괜찮다며 빈손으로 와서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엠마의 아들은 과일이며, 음료수며 마음껏 집어 먹는데, 엠마는 불편한 듯 물 한잔 달라는 말도 조심스럽게 합니다.




 일주일 동안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던 경험을 적어보았다. 막상 기록하고 보니, 내가 받았던 제안들이 모두 상대방의 호의에서 시작된 것들이다. 농구 캠프에 초대받은 것도, 아이스크림을 추천받은 것도, 커피 한잔을 마시고 가라는 말도 모두 나에 대한 친절함이었는데, 나는 왜 부담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을까?


 반면에 아들은 중심축이 확실히 자신에게만 향해 있다. 자기가 싫은데 왜 캠프를 가야 하냐고 반문하고, 음료수를 주면 자기가 좋아하는 맛을 달라고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호의와 진심과 정성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민폐가 될지 모른다는 혹은 상대를 민망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나와는 너무나 다르다.


 다른 사람의 입장과 수고를 헤아리는 것만큼이나, 호의를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상대를 투명하게 바라보고, 나 역시 투명하게 대하는 것. 미안하다는 것보다는 고맙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내가 상대의 마음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을 준 사람에게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느낄 기회를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고마운 마음을 먼저 가지는 사소한 행동과 말 역시, 상대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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