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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Aug 12. 2023

자폐의 쓸모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을 읽고

"자폐아는 부모 스스로 포기하고 죽게 내버려 둬야 한다."


 주호민 작가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주호민 작가는 자폐 증상이 있는 자신의 아들이 교사로부터 학대를 받았다며 해당 교사를 고소했다. 주호민 작가의 아들은 수업 중 여학생 앞에서 바지를 내려 분리 조치됐고 이후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증거를 수집해 교사를 고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주 작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덩달아 자폐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가 온라인상에 회자되고 있다.


 나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잘 모른다. 친구나 가족 중에 자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인지 자폐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다. 그래서 미디어에 비치는 자폐인들의 모습을 보며 그저 그러겠거니 짐작을 하는 정도의 수준에 머물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대로 짐작해 버리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러던 중, 해방북클럽의 세 번째 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카밀라 팡은 8살 때 자폐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28살에 ADHD를 진단받은 과학자이다. 작가는 인간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과학'을 도구로 인간 설명 안내서를 만들었다. 작가는 자폐를 가지고 있기에 오히려 사회에서 통용되는 편견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이걸 감히 ‘자폐의 쓸모’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그만큼 작가의 독특한 정신세계가 나의 마음을 다독여 줬고, 구체적인 해결책까지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를 투명하게 만들면, 두려움을 다룰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빛과 굴절' 개념으로 '두려움을 다루는 법'을 설명한 것이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생각과 공포가 눈부신 빛처럼 달려드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이 장애를 가진 사람은 다양한 감정과 불안, 충동, 자극을 분리할 능력이 선천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열하는 백열등 불빛을 직사광선으로 공격 받듯이 밀려오는 두려움에 괴로워하다가, ‘빛의 굴절' 원리를 통해, 빛을 분리하고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프리즘으로 빛을 굴절시켜 보면 여러 색으로 나누어지듯, 자신을 프리즘처럼 투명하게 만들면 자신에게 한 덩어리로 덮쳐오는 불안과 공포를 개별적으로 나눌 수 있다. 감정을 쪼개기 위해서는 내가 그 감정이 무언인지 인지하고 있는 '메타감정'이 있어야 한다. 내가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야 메타감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 감정을 타인에게 투명하게 내보일 수 있어야 한다.


 나 역시 평소에 걱정도 많고 두려운 것이 많은 편이다. 시작하기 전에 돌다리만 계속 두드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생각해 보니, 나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남편에게 조차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내가 꽁꽁 싸매고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 두려움의 원천을 스스로는 인지하고 있지만 타인에게 말로 꺼내놓을 수 있을 만큼 투명하게는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의 감정을 다루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닐까? 불투명한 채로 두려움을 잠깐씩 밀쳐내고만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나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은 하루아침에 될 문제는 아니다. 평생 이런 모습으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단, 책에서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종종 보았다는 프리즘을 나도 하나 사보았다. 오전 10시, 거실 창으로 해가 들어오면 책상 위에 비친 오브제에서 무지개 빛이 나온다. 나는 집에서 종종 천장이 비친 무지개 빛을 바라보며 내가 투명하게 변하는 상상을 했다. 내 두려움들도 이렇게 아름답게 부서질 날이 오기를. 


상자 밖에서 생각하면,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머신러닝을 통해 ‘상자 밖에서 생각하는 법’을 알려준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자라온 사회, 문화적 배경에 따라 이미 내재화된 편견으로 데이트를 분류하려고 한다. 하지만 실제 데이터는 정해진 답도 없고 분류되지도 않는다. 모든 알고리즘은 인위적이다. 실제 데이터들은 유기적인 자연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인간이 의사결정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상자 안에 생각을 가두고 정돈된 형태로 만들려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나무적인 생각은 통제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가지를 뻗어낸다. 하지만 크게 보면 평균적인 나무 형태를 벗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이처럼 ‘해야 한다’라는 상자 안에서의 강박에서 벗어나, 나무처럼 자유롭게 생각을 뻣어나가보라고 한다.


최근 내가 사로잡혀 있던 상자 속 생각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 ‘는 것이었다. 하루종일 아이 둘 케어를 하다 보면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새벽 밖에 없다. 그 시간에 영어공부도 하고 운동도 해야 하는데,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있으면 그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았다. 특히 남편이 출장을 가거나 늦게 집에 오는 날이면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육체노동이 더 많다 보니 피곤에 못 이긴 것이다.


또 남편이 출장을 가서 집을 비우면 아침에 일어나도 운동하러 밖에 나가질 못하니, 이 루틴을 지키지 못한다는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과연 이게 무엇을 위한 스스로의 약속인 걸까?

나는 저자의 말처럼 상자 속 생각들을 나무처럼 다시 그려 보았다. 아침에 꼭 일찍 일어나야 하나? 다른 방법은 없을까? 내가 왜 운동과 영어를 해야 하나?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만약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후에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생각하게 됐다. 아침에 달리기를 못했거나, 남편이 출장일 때는 둘째 아이를 러닝 스트롤러에 태우고 같이 뛸 수도 있는 것이다. 


 영어공부를 아침에 못했다면 낮에 오디오북을 들을 수도 있고, 첫째 아들과 도서관에 가서 영어동화책을 읽으며 공부할 수도 있다. 내가 정한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영어공부라는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데 내가 왜 형식에 매달려 있었을까. 나를 옥죄고 있던 상자를 직접 손으로 그려보고, 다시 나무로 풀어헤쳐보면서 나는 해결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 방법론은 앞으로도 많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실패하는 실험을 즐기라!

과학과 삶이 우리에게 주는 공통의 메시지는 “실패하는 실험을 즐기라”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는 양자택일적으로 구분되지 않고, 실패를 통해 더 큰 성공에 다다를 수 있다. 자폐와 정상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듯, 나 또한 자폐스펙트럼 장애인과 똑같은 두려움과 강박이 있듯이 말이다.


 작가는 누구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한다. 다만 내가 자폐에 대해 제대로 알지고 못하면서, 사과해야 한다고 다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자. 이 노력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복잡한 일에 더 능숙해”지고자 하는 노력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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