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야 시작하는 부모님과 거리두기

2022년 11월 11일 새벽 4시 57분 ~ 2월 2일 오전 11시

by 엠마

이 글을 완성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괴로운 마음을 글로 정리하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도저히 참지 못해 11월 초 새벽에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급히 적고 임시저장 해뒀다. 하지만 그 불편한 감정의 진짜 민낯이 무엇이지 나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제멋대로 뱉어내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나버렸다.


또 왜 이 글을 완성하기 어려웠나 생각해 보면, 내 불편한 마음이 사실 남들 보기엔 한 줌도 되지 않아 꺼내기에는 부끄럽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완벽해 보이는 내 부모님에 대한 아주 사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남들 보기에 너무나 모범적인 가정에서 살아왔기에 어두운 기억을 굳이 들춰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이면 예전의 상처가 욱신거리듯, 나는 특정 포인트가 건드려지면 스스로를 과거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과거의 기억에 현재의 감정까지 더해져 과거를 더 극화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공개적인 플랫폼에 글로 적고 나면 내 과거가 좀 더 객관적으로 정리가 되진 않을까. 그러고 나면 나이 40이 될 때까지도 때때로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 하찮은 마음을 털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2022년 9월. 뱃속의 아이가 태어나기 한 달 남짓 시간이 남았을 때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님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시기로 했는데 나는 그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괴로워졌다. 부모님이 오시면 잠자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먹을거리, 또 미국 구경하러 다니실 곳들 알아보기 등. 나는 만삭인 상태에서도 내 뱃속의 아이보다는 계속 부모님이 오시면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다. 부모님은 태어날 아이와 나를 돌봐주러 오기로 하신 건데, 정작 나는 부모님 케어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예전에 서울집에 며칠 계실 때도 이런 적이 있었다. 부모님은 침대 프레임 없는 매트리스에서 주무셨는데 누웠다 일어나기 불편하다고 하셨었다. 매트리스에 민감하셔서 우리 집에서 제일 좋은 매트리스를 내드린 건데 말이다. 먹는 것도 체질식으로 한다고 다 따로 드셔서 굉장히 신경이 많이 쓰였었다. 미국에서는 그때 보다 더 상황이 힘들 텐데 괜찮을까 라는 물음이 계속 생겼다. 시차적응에도 시간이 필요할 테고 아기는 새벽에 깨서 울테고.. 부모님은 미국에 오셔서 여행도 다니고 싶으실 텐데 아기 때문에 나는 밖에 나갈 여유도 없을 것이 뻔했다. 나는 같이 있는 그 시간이 너무 괴로울 것만 같아서 미리 걱정만 산더미였다.


그러다 우연히, 미국에도 한인 산후도우미를 부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엄마한테 미국에 안 와도 된다고 연락을 했다. 내가 너무 힘들 때 오지 말고, 아기가 돌쯤 돼서 여유가 있을 때 여행하듯이 미국에 한번 오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그런데 엄마는 이런 기회에 자식들 챙겨주는 게 부모의 보람인데 못하게 하면 엄마 마음이 더 무겁다며 꼭 와야겠다고 했다. 사실 엄마는 나를 낳고 백일만에 일하러 갔었고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내가 첫째를 낳았을 때도 엄마는 계속 일을 하고 있었고, 갓난아기 돌봄에 있어서는 나보다 서툴렀다. 결국 나 혼자 아이를 다 봐야 할 것 같은데, 엄마는 잘할 수 있다고 아주 자신감 있게 말했다. 주변에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그래도 부모님이 오시면 심적으로 안정되지 않겠냐고 힘이 될 거라고들 했다. 아닌데... 아닌데... 그렇지 않은 부모 자식 관계도 있는데... 전혀 안정감이 들지 않는데...라는 생각에 더 슬퍼졌다. 하지만 굳이 오시겠다는 부모님을 계속 말리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미국으로 12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부모님께서 오셨다. 내가 처음 엄마에게 실망한 건 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모에게 전화를 하셨을 때였다. 엄마는 미국에 와보니 날씨가 너무 좋고, 우리 딸이 이 집에서 제일 좋은 안방을 내줘서 너무 편하게 잘 지내다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사실 부모님이 오시면 어떤 방에서 지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내가 신생아와 함께 방을 쓰고, 남편은 첫째 아들과 지내고 부모님께 안방을 드리기로 했다. 나는 당연히 부모님을 배려해서 그렇게 한 것이고 엄마가 그걸 고맙게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내 배려를 진심으로 고맙게 받아들이는 뉘앙스가 아니라 도착하자마자 이모에게 자랑하듯이 전화를 했다. 엄마가 왜 굳이 여길 오겠다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딸이 미국에 있다는 것이 엄마에게는 어느 정도 자랑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미국에서 딸이 출산한다고 하면 다들 도와주러 가냐고 했을 것이다. 남들 보기에 엄마가 타지에서 출산하는 딸을 도와주러 미국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게 실제 딸인 내가 오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 중요했나 보다. 엄마는 본인의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미국에 오신 걸까, 진심으로 나를 위해 미국에 오신 걸까.


나는 제왕절개 후 3일 만에 집에 돌아왔다. 그리곤 본격적으로 새벽에 2-3시간마다 깨는 신생아 육아가 시작되었다. 자신 있게 미국까지 온 엄마는 아기를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 자세를 모르겠다 하고, 트림은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목욕은 언제 어떻게 하는지 신생아 돌봄에 어려워했다. 막상 엄마가 육아에 너무 능숙해서 나한테 지시하듯 이야기했다면 그 또한 힘들었을 테지만, 엄마에게 익숙하지 않은 육아를 맡기는 게 너무 불안하고 미안했다. 아빠는 시간 나면 안방에서 컴퓨터나 핸드폰을 보고 계셨는데 첫째 아들이 같이 놀자고 보채면 힘들어하셨다. 나는 엄마아빠를 편하게 쉬게 해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첫째 아들과 갓난아기 때문에 그렇게 마냥 할 수도 없는 상황들이 계속되자 심적으로 혼란스럽고 괴로웠다.


부모님은 본인들 라이프 스타일이 확실히 정립돼 있으신 분들이다. 새벽에 일어나고 운동하고 산책하고, 식사하고 각자 공부하는 시간을 미국에 와서도 고수하고 싶어 하셨다. 내가 새벽에 잠을 못 자면 새벽 수유는 한 타임 정도 도와줄 법도 한데 꼭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셨다. 저녁 식사 후에는 안방으로 두 분 다 들어가셨는데 첫째 아들이 같이 놀자고 해도 힘들어하며 잠깐 놀아주시다가 어떻게든 아이를 떼어놓으려고 하는 게 보였다. 첫째 아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놀고 싶어 하는데 그걸 약간 거부당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너무 괴로워져 내가 나서서 아들을 자기 방으로 끌고 들어가 버렸다. 할머니 할아버지 피곤하시다고.


내가 좀 더 확실하게 새벽 수유를 도와 달라, 첫째 아들과 저녁에 놀아 달라는 요구를 했어야 했을까? 그런데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그런 요구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인지 그 말이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나를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해 주셨지만, 전폭적으로 나를 믿고, 나를 위해 희생한다는 정서적 풍족함을 주시진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나 때문에 부모님이 불편해지시면 내가 먼저 그 상황이 혼란스럽고 괴로워서 그냥 내가 스스로 해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왜 이렇게 나를 제대로 도와주지 않는 걸까. 그리고 나는 왜 제대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마음속으로는 부모님을 향한 가시 돋친 말을 되뇌고 있다가, 막상 눈을 마주치면 날씨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시간들이 반복됐다.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괴로워진 나는 부모님께 산호세 인근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등으로 여행을 가보시라고 했다. 우리가 함께 모시고 가면 더욱 좋을 테지만 그럴 상황이 되지 않으니 부모님 두 분이라도 자유롭게 여행을 다녀오시는 게 서로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샌프란시스코로 일주일 떠났다가 일주일은 다시 우리 집에 머물고, 다시 서부 해안도로를 따라 로드트립을 열흘 정도 다녀오시는 여행을 하셨다. 여행을 갔다가 집에 다시 오셨을 때 부모님은 여행하는 동안 얼마나 행복했고 즐거웠는지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부모님을 여행 보내놓고선 다시 괴로워했다. 집에 틀어박혀 아이 둘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딸을 두고 두 분은 행복하시구나.. 하면서 말이다. 내가 부모님을 스스로 밀쳐내 버리고선 왜 다시 나는 외로워했을까.


나의 이런 이중적인 감정을 <사람풍경> 김형경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유아기에 제대로 된 애착 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은 전형적인 태도'라고. 유아기에 엄마의 보살핌과 정서적 공감이 결핍되어 있는 사람은 '서운함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투정하고 매달리는 대신 거리를 두고, 어느 순간 애정을 분노로 바꿔버리는(<사람풍경>, 김형경 중)' 사랑의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복잡한 내 마음을 그대로 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작가는 이런 경우 아기들의 내면에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엄마를 대신해서 이상적이고 미화된 엄마의 환상이 자리 잡게 된다고 한다. 어찌 보면 부모님이 어쨌든 미국까지 나를 보러 오신 것이고 본인들은 최선을 다해 나를 도와주고 계신 것인데, 나는 부모님이 자신들의 정돈된 일상을 포기하고 희생하면서까지 나를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적당히 도움 받고 적당히 스스로 하면서 육아를 하면 될 텐데 그게 아니라 내 환상 속에 부모님 상을 그려놓고선 헌신을 요구하는 마음이 오히려 나를 절망시킨 것이다.


나는 왜 유아기에 제대로 된 애착관계를 맺지 못했을까? 밖에서 보면 나는 화목한 가정에서 잘 자란 딸이다. 부모님은 술, 도박, 사치와는 거리가 이 애 멀고 평생을 성실하게 나와 남동생을 키우신 분들이다. 부모님은 교육에 관심이 많으셔서 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뿐 아니라 여러 가지 악기, 미술, 운동을 두루 배웠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릴 때부터 나 자신에게 정서적인 구멍이 있다고 매 순간 느껴왔다. 너무나 정상적이고 완벽해 보이는 부모님이기에 나 역시 이런 나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라서 이런 걸까, 속 좁은 사람이라 그런 걸까 자책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원정미 작가의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의 책에서 '모르고 지나친 어린 시절 정서적 부재 체크리스트'라는 심리테스트를 해보고, 내 마음에 공허감과 상처가 남아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체크리스트에서 2-3가지 이상 해당한다면 어린 시절의 정서적 부재가 있었다는 것이라는데 나는 11개 중 8개나 해당되었기 때문이다.


아래는 그 11개의 리스트 항목이다.

부모는 내가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심리적으로 안정된 어른이 아니다.

부모가 자주 욱하거나 나에게 무관심했다.

주변에 감정적으로 의지할 만한 어른이 없었다.

부모의 부부싸움이 잦고 갈등이 심했다.

가정에서 서로를 향한 비난, 비교, 욕설 등 언어폭력이 심했다.

가정에 큰 불화는 없었으니 소통이 적고 웃을 일이 없는 냉랭한 분위기였다.

가족끼리 자연스러운 스킨십이나 칭찬, 격려가 없었다.

나를 행한 부모의 기대가 높고 통제가 심했다.

부모님은 늘 바쁘고 피곤했다.

자주 이사를 하고 전학을 다녀서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다.

부모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실수와 실패가 용납되지 않았다.


나는 어린 시절 제대로 내가 원하는 것을 말로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딸이었다. 어릴 때 엄마가 백화점에 데려가서 옷을 골라보라고 하면 내가 원하는 옷도 말을 못 해서 엄마가 결국 폭발해 화를 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때 엄마는 초등학교 저학년생인 나에게 돈을 주곤 알아서 택시 타고 집에 오라고 그냥 혼자 가버렸었다. 또 엄마와 옷가게에 함께 갔는데 내가 원하는 옷이 있었는데 엄마가 비싸다고 사주지 않을 것 같다는 어린 마음에 옷을 몰래 내 가방에 넣었다가 도둑으로 몰렸던 경험도 있다. 이런 내 성격은 타고난 소심한 성향도 문제였겠지만,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적인 태도로 받아주시는 분들이 아니었다. 잘못을 지적하고 야단치는 방식으로 일관했던 부모님의 교육법은 나를 더 소심하게 만들었다.


어릴 때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타는 것이 무서워서 못 타고 있으니 엄마가 그냥 나를 내버려 두고 가버렸던 기억. 무슨 잘못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무척 화가 나서 내 옷을 다 벗겨버리고선 손바닥으로 나를 때렸던 기억. 어릴 때부터 침구를 반듯하게 정리하는 걸 좋아했던 나에게 이런 건 강박이라며 일부러 이불을 흩트려버리고선 거기에서 나를 자게 했던 엄마의 모습 등, 명확하게 사건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거부당하고 무시당했던 감정적 파편들이 내게 남아있다. 트라우마라고 하면 재난이나 사건 같은 큰 일회성 사건만 떠올리지만, 오랜 시간 지속되는 정서적 부재 또한 학대만큼 파괴적인 영향을 준다. 나 또한 내가 트라우마를 가진 줄 모르고 성장했다. 그러나 내가 자녀를 키우면서부터 과거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때 가끔 그 기억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곤 한다.


미국에 오기 직전에 아빠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참에 회사를 그만두고 가정주부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그랬더니 아빠는 '집에만 있으면 가정생활이 아주 완벽하게 될 것 같지? 완벽해질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하셨다. 그 '완벽'이라는 단어와 싸늘했던 뒷모습이 내 가슴이 비수로 박혀서 아직도 가끔 그 말이 나를 아프게 한다. 가정주부로서 완벽하고 싶어 고군분투할 내 모습도 너무 정확하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완벽해지지 못할 것도 너무 정확한 표현이다. 오히려 그래서 아빠의 말이 아프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맞는 말도 친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아빠도, 나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래는 내가 11월 초 새벽에 일어나서 쓴 글이다. LA로 여행 가셨다가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오신 부모님은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셨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듣기 싫었다. 그리고 엄마가 육아를 좀 도와주려고 하면 자꾸 짜증이 나다가도, 저녁에 아기 재운다고 힘든데 안방에서 부모님 코고는 소리가 들리면 너무 화가 났다. 그날도 새벽 3시쯤 수유를 하고 그대로 잠이 들지 못한 채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지금 감정을 써보자 하고 써내려 간 것이 아래 전문이다.


나는 오늘도 혼자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나는 왜 기댈 곳이 하나도 없을까라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자리에 누워 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기댈 곳이 없어서 슬프다는 마음은, 사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는 것이구나. 기대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없다면 차라리 더 낫지 않았을까.

나는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인간이고, 부모와 자식, 부부.. 모두 결국 타인이다.
그런데 나는 부모와 나를 계속 연결 지어 기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게 좌절되니 자꾸 마음이 아픈 것이다.

나 스스로 먼저 행복해져야지, 남(부모)과 비교해서 생각하다 보니 불행해진다. 나 혼자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래야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 그만 울고 행복해져야 할 때이다.


그렇다. 나는 외로웠던 것이다. 부모에게 전적으로 와락 안기지 못하고 스스로 거리를 두면서 나는 고립되어 갔다. 나는 부모로부터 매우 독립적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누구도 믿지 못하는 불신이 있었다. 원정미 작가는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책에서 회피적 성향인 사람은 '홀로 안전하게 살아갈지는 몰라도 내면이 성장하거나 성숙하지는 못한다'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는 독립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지만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 마음속에 나만의 성을 만든다'는 작가의 표현이 정확히 나를 향해 말하는 것 같았다.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으면서도 불신하는 이중적인 마음이 나의 성장과 성숙을 막고 스스로 고립시키게 했다. 그리고 그 고립의 끝에는 외로움이 있었다.


나는 위에 글을 쓰고 새벽 6시에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아기가 집에 있었기에 출산 후에 나 혼자서는 처음 나간 것이었다. 새벽 공기를 맞으며 내 두 발로 땅을 밀어내어 뛰어오르는 기분이 너무나 행복했다. 누가 나에게 출산 후에 나가지 말라, 운동하지 말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나는 스스로를 집 안에 메어두고 육아와 부정적인 감정에 갇혀있었던 것이다. 내 감정의 근원이 '외로움'이라는 걸 깨닫고 나자,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선택을 스스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걸 깨달은 후부터는 새벽에 운동도 다시 하고 책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또 내가 행복하지는 것 중에 하나가 '글쓰기'이기에 무거웠던 마음을 이 글에 모두 내려놓고,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이곳에 글을 쓰고 싶다.


아침 달리기를 하고 집에 돌아오던 길에 찍은 가을 하늘. 오래도록 그때의 기분을 기억하고 싶다.



부모님은 예정일 보다 빠르게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내가 자꾸 여행 가라고 하고, 같이 있는 동안에도 완전히 숨길 수 없는 딸의 쌀쌀맞은 태도에 불편하셨을 테다. 아마 서운하셨을 수도 있겠다. 내가 차라리 터놓고 복잡한 마음을 이야기 했다면 부모님도 나를 이해하셨을 텐데, 나는 어릴적 그랬듯이 또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한국에 가신 지 벌써 3달이 되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부모는 그들의 방식대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 본인이 경험하고 체득한 방식으로 나를 키웠다. 맞벌이를 하면서 본인들 자기 계발도 하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두 아이를 키우는 삶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나 역시 한 줌도 되지 않아 남보이기 부끄러워 꺼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작고 하찮은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을 잘 다독여서 건강한 어른이 되고 싶다. 다른 사람과 건강하게 소통하며 누군가를 도와주기도 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도움 받을 상황이 많이 생긴다. 한국이었다면 끝까지 사양하고, 다시 고마움을 갚기 위해 마음을 많이 썼을 텐데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도움을 기꺼이 받기도 하고, 내가 도울 상황이 생기면 돕기도 하면서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진정한 독립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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