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민 작가님의 <거리와 뿌리> 웨비나 후기
Prologue : 아름다운 새를 카메라에 담고 싶다면
해질 무렵 하늘에 새 두 마리가 나타났다. 새들은 선선한 바람을 가르며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그 새들이 아름다워서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새들은 내 카메라 앵글 안에 있다가, 곧 빠져나갔다. 나는 카메라를 움직여 새를 다시 앵글 안에 넣었지만, 새는 다시 빠져나가길 반복했다. 그러다 새는 화면 밖으로 영영 날아가버렸다. 나는 새가 까만 점이 되어 결국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서 텅 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다시 그 영상을 재생해 보았다. 새를 쫓는 그 영상은 화면이 수시로 흔들려서 산만했다. 앵글에서 벗어나려는 새와 그걸 애써 담으려는 카메라의 시선이 다투고 있었다. 새와 가까워지고 싶었던 나는 바삐 새만 따라다녔다. 카메라의 눈으로 보니 알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억지스러웠고, 어지러웠으며, 결국 새를 놓쳤고, 마지막엔 외로웠다. 아름다운 새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면, 그저 좀 더 멀찍이서 지켜보면 되는 것이었다. 가까이 있다고 덜 외로운 것이 아니었다. 나에겐 거리가 필요했다.
아이 티를 벗고 소년이 되고 있는 아들도 자꾸 내 앵글을 벗어난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아들 앞에 지키고 서있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나의 불안한 마음에만 매몰된다. 끝내 나의 손길을 거부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외로워졌다. 나는 아들과 함께 현명하게 성장하기 위해, 어떤 마음으로 아들과 거리를 유지해야 할까? 그리고 그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의 실마리를 <아이라는 숲>의 저자 이지민 작가님의 웨비나를 들으며 찾을 수 있었다. 작가님은 '거리, 뿌리, 그리고 이름'이라는 3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아이와 부모가 함께 멀리, 오래 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웨비나 요약
웨비나는 해외이주 여성들의 정체성 확립을 돕기 위한 비영리단체인 테이크루트를 통해 열렸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1. 거리
- 작가님은 어떤 대상에 대해 가장 넓은 관점을 가지려면 멀리 떨어져서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한국에서는 '우리'라는 말을 말을 많이 쓰듯이,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유지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는데, 엄마는 엄마의 삶을, 아이는 아이의 삶을 살아야 한다. 식물들도 잘 자라려면 바람이 통해야 하듯이, 아름다운 음악에 쉼표가 필수 이듯이 아이와 부모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하다.
- 또한, 엄마가 아이의 매니저로 살지 말고, 내 삶의 주연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작가님은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과 독일에서 생활하셨는데, 한국과 비교해 훨씬 아이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육아방식을 접하며 이런 점을 느끼셨다고 한다. 엄마의 세계가 커질수록 아이의 세상이 커지는 것이니, 아이를 키우려면 엄마부터 커져야 하는 것이다.
2. 뿌리
- 웨비나 대상이 '해외 이주 여성'이다 보니, 뿌리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하게 다뤄주셨다. 해외에서 산다는 것은 뿌리를 새로운 곳에 옮겨 심어야 하는 일이다. 작가님은 이 뿌리 뽑힘을 거리 확보의 축복으로 여길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한국에서만 살았다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었는지 알 수 없었겠지만, 미국에 와서야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시간이 생긴 것처럼, 나는 뿌리 뽑힘이 축복이라는 말에 깊이 동감했다.
- 작가님은 경계에 서 있는 자만이 양쪽을 살필 수 있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이민 1세대, 1.5세대와 같이 한국 와 미국 문화를 공유하며 사는 분들을 많이 만나는 요즘,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디 한 곳에 100% 발 붙일 수 없다는 것은 불안할 수 있지만, 그렇기에 양쪽을 다 살필 수 있는 독창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은 불안함과 동시에 축복이다.
3. 이름
- 작가님은 이름을 바로 세운다는 '정명'이라는 말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내가 현재 어떤 이름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싶은지, 어떤 이름으로는 불리고 싶지 않은지 생각해 보면 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 그래서 아이에게도 이름을 바르게 가르쳐주는 일이 중요하다. 사람을 함부로 깜둥이로, 원숭이로 부르지 않는 것, 또는 단어에 오랜 시간 스며든 편견의 부스러기들을 쓸어내려는 삶의 태도를 알려줘야 한다. 그러면 아이는 이름에 관한 질문을 전 생애 걸쳐 품고 자라게 된다.
4. 글쓰기
- 작가님은 글쓰기야 말로 자신과의 거리를 확보하고, 나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며, 이름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일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글을 쓰면서 나의 정체성, 이름이 더 뚜렷해진다. 글쓰기는 내가 존재했던 흔적이며 이 세상에 나를 쌓아두는 일이다. <파친코>, <H마트에서 울다>와 같은 책을 보면 그 쌓아둠이 어떻게 빛나는 글감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 글을 쓸 때는 형식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떻게 하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타인의 저작권을 쉽게 생각한다든지, 누군가를 저격하는 글을 쓴다는지 하는 것은 글을 오래 쓸 수 없게 한다고 한다. 기본을 지키고, 경계에서 바라보도록 노력하면 정명을 실천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다.
오래 남을 문장들
작가님은 웨비나에서 다양한 책과 그림에서 거리와 뿌리에 대한 문구들을 소개해 주셨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기록해 둔다.
1. <토비야와 천사>
대천사 라파엘이 토비야의 길잡이가 되어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다. 천사는 토비야 앞의 돌을 치워주지 않고, 함께 옆에서 걸어간다. 아이 앞의 돌을 하나씩 치워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지만 그 돌을 그대로 두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이 그림을 보면 아이가 스스로 연습할 수 있도록 옆을 지켜주는 사랑이 느껴진다.
2. 아이가 커갈수록 부모는 신호등에서 가로등으로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더라도 경계설정은 꼭 필요하다. 자전거를 탈 때도 헬멧을 꼭 써야 한다는 규칙을 지키게 하고, 그 후에는 아이가 넘어지면서 배울 수 있도록 독려해 주면 된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가 안된다, 된다를 명확하게 짚어주는 신호등 같은 역할을 하지만, 커갈수록 멀리서 빛을 밝혀주는 가로등 같은 역할만 하면 된다.
3. 솜털 같은 뿌리라도 열심히 내려보자
작가님의 책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에서 한 구절도 기억에 남는다. 솜털 같은 뿌리라도 꾸준하게 열심히 내려보면 그게 모여 어떤 구슬이 만들어진다. 구슬들을 어떻게 꾀어나갈지는 저절로 길이 나오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잔뿌리 하나라도 내린다는 심정으로 살아내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점에 깊이 공감했다.
작가님의 생각이 더 궁금하다면, 브런치에서도 활발하게 글을 올리고 계시니 아래 링크에서도 더 확인할 수 있다. :)
https://brunch.co.kr/@jinmin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