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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Jan 10. 2024

새벽 응급실에서 깨달은 것들

미국에서 처음 응급실에 간 날


"괜찮아. 우리 딸 괜찮아."

모두가 잠든 새벽 1시, 나는 캄캄한 고속도로를 거세게 달리는 차 안에서 발가벗은 한 살배기 딸을 끌어안고 이렇게 읊조렸다. 미국에서는 작은 사고라도 날까 봐 항상 조심스럽게 운전했는데 아이를 안고 앞자리에 앉힌 것도, 안전벨트를 메지 않은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어린 내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몸이 굳어버렸고 시선은 어디 먼 곳을 보는 양 멈춰있었다. 우리는 아이를 그대로 안아 들어 응급실로 향했다. 아이의 가슴에 손을 데 보았더니 가느다랗게 심장은 뛰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두고 죽음을 떠올렸다는 것만으로도 큰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안도했다. 아이는 살아있었다.


차를 운전하고 있던 남편이 물었다. "정말로 괜찮아?" 

나는 말했다. "아니, 안 괜찮아." 


하지만 나는 그때 어떤 기도라도 해야 한다고 느꼈다. 아이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괜찮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아이가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그런 단단한 마음은 나약한 인간에게서 나올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신을 떠올렸다. ‘아이가 둘이라 바쁘다는 핑계로 더 살뜰히 이 아기를 돌보지 못한 죄를 용서해 주세요. 아이가 열이 나는데도 잠이 온다고 순간 잠이 들어버린 어미의 어리석음을 사해주세요. 아이는 반드시 괜찮을 거라고 답해주세요.' 나는 기도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이를 안고 말했다. "우리 딸 괜찮아." 다행히 응급실에 닿기 전에 아이의 눈빛이 돌아왔다. 아이는 예전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작은 심호흡을 입 밖으로 내었다. 아이의 시선이 먼 곳으로만 향해 있을 때 그곳은 이 세상이 아닌 곳 같았는데, 아이가 드디어 내 품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나는 아이를 껴안고 다시 한번 기도했다. '감사합니다. 아이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응급실을 둘러보니 그 새벽에 아픈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건강한 편이었던 첫째는 이렇게 고열이 난 적이 없었기에 응급실을 와 본 것이 처음이었다.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나에게 몇 명이 말을 붙이고 싶어 하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같았으면 영어를 못하면서도, 웃을 상황이 아님에도 말 많은 캘리포니아 사람들의 장단에 맞춰줬겠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꽉 껴안고 아이가 정신을 잃었을 때 가 있는 것만 같았던 먼 곳을 똑같이 응시하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두 번째 아이기에 여유롭게 육아를 했었던 내가 얼마나 그동안 자만했었나 반성했다. 다시는 아이를 그 먼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가야 한다면 차라리 내가 가는 것이 낫겠다 생각하며 나는 그 시선에 머물러 있었다. 아이 역시 기운이 없었다. 아이는 이제 막 걷기 시작했다. 평소에 새로운 것들을 만지러 다니기 바쁜 아이가 가만히 있는 것이 너무 생소했다. 아이는 내 품에 안겨 곧 잠이 들었다. 남편은 집에 남아 있는 아들을 데리로 집으로 다시 출발했다. 7살 난 아들을 혼자 집에 두고 나올 만큼 그때 우리는 너무 경황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며칠을 더 고열에 시달렸다. 의사는 별 다른 병명을 말해주지도 않았고 그저 해열제만 처방해 줬다. 콧물, 기침 같은 감기 증상 하나 없이 열만 나는 답답한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몸에 열꽃이 피기 시작했다. 열이 많이 나던 이마와 가슴, 등 쪽으로 두드러기 같은 열꽃이 올라왔다. 병명을 알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했을 때, 보통 고열이 나다가 열꽃이 나면 열이 내리기 시작한다고 했다. 몸속에 가둬져 있던 열이 드디어 몸 밖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열꽃.‘ 이 아름답고도 무서운 이름을 누가 지었을까. 분명 아픈 아이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사람임이 틀림없다. 드디어 열이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그 섬뜩한 두드러기들이 아름다운 꽃처럼 느껴졌다. 나는 작고 여린 아기 몸에 올라온 붉은 두드러기를 보며 한 겨울 포인세티아를 떠올렸다.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하얀 눈밭의 포인세티아처럼 두드러기는 화려하게 피었다가 며칠 뒤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아이의 열도 모두 내렸다.


당시에 아이의 상태를 본 의사는 'Seizer'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열이 심하게 나면 어린아이들이 잠깐 정신을 잃는 것이라고 한다. 처음 본 부모들은 너무 놀랐겠지만 아이들이 고열이 날 때 생각보다 자주 겪는 일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잠시 지나면 아이들은 저절로 괜찮아진다고 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아이가 괜찮아진 것은 사실 내 기도 덕분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기도를 할 것이다. 잠시나마 아이의 죽음을 체험한 나는 절박한 순간에 나를 붙잡아 줄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영역에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을 때 나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바들바들 떨며 어린아이를 안고 기도했던 그날 밤은 아마 오래도록 기억이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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