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빠의 아내인 그녀, 그러니까 나의 새언니는 나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어리다. 새언니 새언니 하고 불러서 그런지, 어떤 때는 그녀가 마치 진짜 나의 언니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아주 가끔씩 정말로 문득, 그녀와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하게 되는데 그녀와 얘기를 하고 나면 늘 무언가를 다른 시선으로 생각해 보거나 깨닫게 된다는 점이 참 좋았다. 그녀는 나에게 종종 책을 추천해 주기도 했는데, 몇 해 전 그녀가 추천해 준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은 나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나는 그 책을 계기로 그녀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 잔잔한 안부인사를 나누던 중 그녀가 나에게 법륜스님의 행복학교에 입학할 것을 추천해 주었다. 그녀가 작년에 수업을 들어 봤는데, 괜찮은 것 같다며 링크를 보내 주었다. 그녀는 '너무 좋으니 꼭 해봐라'가 아니라, 늘 '그냥 한번 들여다보라'는 정도로만 제안을 건네는데, 부담을 주지 않아서인지 이상하게 그녀의 제안은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은경 선생님 유튜브를 보며 나도 아이들처럼 3월에 무언가 시작하려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행복학교 입학일은 3월 7일이었다. 엄마가 늘 들으시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익숙했던 터라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한번 해보지 뭐.' 하면서 등록을 해 버렸다. 종교는 없지만 분명 배울 점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얼른 얘기했다.
"엄마 너희처럼 학교 다니게 됐어. 행복학교.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가르쳐 주는가 봐. 엄마 잘 배워서 너희한테 알려줄게."
"거기 매일 가?"
"아니 줌수업처럼 하는 건데, 일주일에 한 번 해"
아이들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행복학교 입학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막내가 넷플릭스로 영어영상을 보겠다고 했다. TV는 빔프로젝터에 연결되어 있었다. 낮에는 빔으로 TV를 볼 수 없어서, 일반 TV 연결을 해야 하는데. 평소 식이씨가 척척 다 해줬으니 빔으로 영상을 보다가 TV를 보려면 어떻게 연결하는지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기계사용설명서의 깨알 같은 글씨는 보기만 해도 노안이 심해지고 두통이 오는데. 삼식시는 낚시하러 밖에 나갔는데.
마흔셋인 나는 그러니까, 혼자서 TV를 켤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기계치라도 TV연결 이거 하나 못할까. 그럴리는 없지. 나도 혼자 할 수 있어' 하며 이래저래 전선들을 뽑았다가 꽂았다가를 여러 번.
"아 그냥 TV로만 보면 될 걸. 뭘 자꾸 복잡한 기계를 사가지고. 이거 뭐 어떻게 하는 거야. 뭘 빼고 뭘 꽂아야 되는거야. 리모컨은 또 왜이렇게 많아."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막내가 옆에 있는 걸 깜빡하고서 말이다. 번뜩 정신을 차린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요리조리 전선을 꽂아보며 결국 TV 켜기에 성공했다.
"아들 엄마 드디어 해냈어. 처음엔 좀 짜증 났는데 하다 보니까 되네! 우리 아들 덕분에 엄마가 혼자서 TV를 켤 수 있게 됐어. 아들이 그냥 패드로 봤으면 엄마 이거 어떻게 켜는지몰랐을 거야. 고마워."
아들 앞에서 짜증을 낸 게 신경 쓰였던 나는 오버하며 구구절절 이야기했다.
가만 듣고 있던 아들이 시크하게 얘기한다.
"엄마 그 학교 안 가도 될 것 같은데? "
생각지 못한 얘기에 놀란 내가 되묻는다.
"응? 무슨 학교? 아, 행복학교? 왜?"
아들이 나를 보며 말한다.
"엄마 이미 행복한 것 같은데?"
행복학교 입학얘기에 관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나는 아들의 말에 도무지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어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행복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날, 막내 덕분에 나는 어렴풋이 행복의 실체에 대해 가만 생각해보게 됐다.